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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Jan 20. 2021

진작 고쳐 놓을걸

소 잃고 외양간 고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다
 
독립기념일 연휴였다. 집에서 쉬고 있는데 경보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알람이 울렸으니 회사로 가 보라는 것이다. 깜짝 놀라 늦은 밤 회사에 당도하니 경찰 두 명이 서치라이트를 비추고 게이트 앞에 서 있다. 혹시 안에 있을 도둑을 경계하느라 경찰이 총을 들고 앞장을 서고 남편이 뒤를 따라가니 이미 유리문은 박살이 나 있다. 캐시 박스는 열려 있고 도둑들은 도망한 뒤였다.
 
모든 물건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흩어져있다. 거스름돈을 위한 손 금고에는 많지 않은 잔돈이 들어있었기에 큰 손해는 아니었다. 동전을 모아둔 작은 항아리는 통째 집어갔으나 그도 무겁기만 하지 500불 미만의 돈이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경찰의 뒤를 조심스레 따라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내 정신은 온통 다른 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나만의 비밀 장소에  숨겨놓은 돈이 있었는데 그것의 안부가 가장 궁금했다. 그런데 나의 책상 윗 서랍이 열려있는 게 아닌가? 가슴이 덜컹했다.  그 아래쪽 서랍에 화장도구를 넣어두고 화장품으로 위장(?)을 해둔 허접쓰레기 밑에 나의 비자금이 있던 탓이다.
 
이 비자금으로 말할작시면, 공금횡령이라 할 수 있고 삥땅이라고 할 수도 있는 불순한 돈이다. 비속하게 말하면 ‘쌔빈 돈’인데 원래의 돈주인이 우리 가정이므로 사실 내 돈이나 마찬가지이다. 남편을 속였다는 의미에서 정직하지 못한 돈이라 할 것이다.
 
남편의 본업인 건설회사 말고 부업으로 시작한 비즈니스이다. 작은 돈이 오가는 현금거래 사업이다. 야구연습장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이슬비에 옷 적시듯 푼돈을 오랫동안 모은 것으로 매일 세어보고 흐뭇해하던 오롯한 나만의 돈이다.
 
얼른 아랫 서랍을 열어 돈 주머니를 꺼내니 매일 만져보던 감촉이 그대로 전해온다. “Thank God!”  영어가 절로 나오며 안도하였다. 양주를 담던 벨벳 주머니에 나를 위한 헌금이라 생각하며 모은 것으로 가끔 친정집에 선물을 보내거나 책을 사보거나 하는 지극히 개인 용도로 자유롭게 쓰던 터였다. 휘유~ 안심을 하고 있는데 경찰이 묻는다.
“그 자루에 든 게 뭐냐?”
“내 돈이다. 다행히 도둑이 이건 안 건드렸네~”
“얼마냐?”
“그걸 말해야 하냐?”
“분실하지 않은 돈도 얼마라고 나의 리포트에 기록해야 한다.”
 
난감했다. 몰래 숨겨두었던 돈의 정체가 다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남편과 경찰이 보는 앞에서 돈을 세었다.  “7천 불($7000) 맞는다.” “오우케이” 경찰이 받아 적는다. 남편은 말없이 쳐다보다가 한마디 거든다. “잘하는 짓이다.” 남편은 푼돈이 목돈이 되어 돌아온 셈이니 내심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탄로 난 돈으로 깨진 유리문 갈아 끼우고 유리문에 쇠창살 덧문 달고 사무실과 담 주위에 돌아가며 철조망을 치는데 그 7천 불 다 썼다. 외양간 수리비로 쓴 셈이다. “거봐 그 돈 없었으면 어쩔 뻔했는지. 마누라의 선견지명이 놀랍지 않냐?”는 둥 떠들며 민망함을 커버하였지만 너무 아깝고 분하다.
 
세상에 비밀은 없고 부정은 언제든지 탄로 나게 되어있다. 컴퓨터에 데이터를 기록하는 남편에게 오늘의 매상을 말하면 다 안다는 듯 "맞게 말한 거야?" 하며 재차 물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제 발이 저려 공연히 화를 내는 요즈음이다. 남편은 집안의 소도둑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사는 재미 반감되었다.


이정아/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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