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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Feb 11. 2021

아버지의 안부

연하장과 편지


우리 집 거실 벽에는 '잠자는 아기, 책 보는 아빠, 기도하는 엄마에게 하늘의 은총이 있기를' 하는 글이 액자에 끼워져 붙어있는지 오래이다. 친정아버지가 1986년도 새해 연하장으로 보낸 것이다. 화선지에 아버지의 붓글씨로 쓴 것이어서 액자에 끼워 둔 채 35년이 되었다. 1985년에 유학생 남편을 따라 이곳에 와서 아이를 낳았으니 그 당시 우리 가족에겐 적당한 안부였으리라. 나는 그걸 우리 집의 가훈 마냥 여기고 살았다.
 
이제는 그 내용이 바뀌어 ' 잠자는 엄마, 책 보는 아들, 기도하는 아빠'가 되었으나 아버지가 소천하고 안 계시니 그냥 두고 아버지 생각이 날 때마다 보고 있다. 아버지는 새해가 되면 연하장을 그렇게 만들어 보내셨고 틈틈이 편지도 보내주셨다. 얇은 습자지에 거미 같은 글씨로 써서 보낸 편지를 여러 통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서 내가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는 '청춘극장'을 쓴 김내성 씨와 '실낙원'등을 쓴 정비석 씨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버지가 아리랑 잡지의 편집장으로 계실 때 기고 작가 이기도 해서 가끔 당구장이나 대포 집을 동행하시곤 했다고 한다. 김내성 씨는 젊은이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메모를 철저히 하셨다고 한다. 자기 세대와는 다른 젊은이의 대화가 글 쓰는데 필요하다며. 또한 정비석 씨는 글을 쓰고 나서 아내나 아이들에게 꼭 소리 내어 읽어보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글의 흐름이 매끄러운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 당시 잘 나가는 작가였던 두 분은 철저한 작가정신이 있었기에 성공하지 않았는가 하셨다. 아버지가 그 편지를 통해 내게 글 쓰는 이의 자세를 알려 주신 것이다.


새로 집을 이사했을 땐 '좋은 이웃이 되어라'는 편지도 주셨고,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을 땐 '아버지도 정들었던 신문사를 옮길 때 너처럼 서운했었다' 고 위로의 편지를 보내 주시기도 했다. 내가 국제 PEN 회원이 되었을 때는, 글 쓰는 이에게 중요한 것은 쉬지 않고 열심히 쓰는 것이지 단체의 회원이 되고 안 되고 가 아니라는 충고도 해 주셨다.
 
나는 정년퇴직한 아버지가 시간이 남아돌아 내게 편지를 자주 하시는 줄 알았다. 아버지의 편지 5번에 한번 정도로 가끔 답장을 보내고 전화로 때우는 수가 많았다. 아버지의 편지는 당연한 것이고 내 답장은 마지못해 하는 짧은 것이어도 되는 줄 알았다. 그래도 마음 한 편엔 아버지의 편지를 기다리곤 했다. 아버지의 편지가 별 내용이 아니어도 아버지의 필적, 얇은 종이에 들어있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왔었다. 그래서 동생들이 아이를 낳았다는 기쁜 소식이 들어있어도, 키우던 개가 새끼를 다섯이나 낳아서 온 동리에 분양했다는 이야기가 들어있어도 아버지의 편지를 읽을 땐 늘 눈물이 났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아버지로부터 편지를 받지 못했다.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주로 동생들이 아버지의 병세를 이 메일로 보낼 때 안부가 오갔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투석을 받으시게 되어 이곳 딸네 집에도 더 이상 못 오시고, 전화로만 통화하다가 돌아가시기 전 한번 가서 뵌 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이다.
 
아버지의 편지를 정리하다가 다시 읽어본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 아버지의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 네가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의 일을 돕게 되었다고 얘기를 들었다. 그 일이 바쁘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너 자신의 건강에 유의하길 바란다. 바쁘고 힘겨운 이민 생활에서 자신을 살펴볼 겨를도 없이 지내오는 사이 너도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이번 일이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고 인생과 가정의 목표를 재 설정하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억지로라도 바쁜 일에서 잠시 떠나 여유 로운 마음으로 돌아가 보기를 권한다. 나는 내 가족들과 나 자신까지도 돌보지 못한 채 활자에 묻혀 지내 오다 보니 훌쩍 노년에 이르고 만 것이 후회스럽다.'
 
그 당시 아버지의 편지로 인해 정말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었다. 다시 읽어본 아버지의 편지에서 인생의 목표를 재 설정하라는 말과 건강에 유의하라는 말이 마음에 닿았다. 평범한 말이어도 아버지가 한 말이니 더욱  감동을 주는지 모르겠다. 아아 아버지는 글쓰기의 스승일 뿐 아니라, 하늘에 가서도 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이며 내 인생의 영원한 사부이다.  
 
편지를 쓸 일이 없는 사이버 시대. 디지털카메라와 비디오폰으로 더욱 편리해진 그러나 감동 없는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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