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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Jul 08. 2023

멍멍

개소리


이정아


개무시, 개망신, 개수작 등등의 단어는 개를 하위에 두고 만들어낸 조어이다. '개'라는 접두어 때문에 더 상태가 악화되어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매우' 대신 '개'를 쓰면 훨씬 의미가 강조되어 그 뜻이 더 개떡이 되곤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갈수록 개를 사랑한다. 고독한 현대인들의 힐링을 위한 반려 동물인 듯싶다.


조카가 거의 두 달의 휴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짐을 싼다. 며칠 째 글렌데일 갤러리아와 아메리카나 몰을 출근하듯 다니더니 제 가족들과 우리 식구들에게 줄 선물을 사 온다. 조카의 친구들도 페이스북을 통해 선물을 기대한다 어쩌고 하니 돌아와선 또 나가고를 반복 중이다.


어젠 LA 다저스의 로고가 새겨진 작은 옷을 사 왔다. 뉘 집 아기 선물이니? 했더니 자기 집 막내 거라나? 네 집의 막내는 너 아니냐? 하니 막내이자 서열 1 순위인 '콜라'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 애집의 검정 푸들 이름이 콜라인 것이 생각났다. 그러더니 "고모 이것 보세요. 우비도 샀어요" 한다. 방수천으로 된 모자 달린 옷이다. 어쩐지 그 옷들이 뒷 기장이 길다 했더니 등과 꼬리 부분까지 커버하는 개옷이었다.


털 달린 짐승은 털로 자기 보호도 하고 체온 조절도 한다는데, 그 털이 자연산 피부이며 옷이건만 운동복이 웬 말이며 레인코트는 뭔 웃기는 짜장면 같은 이야기인가 말이다. "이런 개뿔!" 이 말이 절로 나온다. 거기다가 모든 선물이 세일 가격인데 비해 이 개 옷들은 할인도 안 된 가격이어서 사람에게 줄 선물보다도 비싸다. 그 집의 서열 1위에 걸맞은 선물일세. 헐.


예로부터 개는 사람과 친한 동물이어서 개와 관련된 속담도 많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지나던 개도 웃겠다' '풍년 개 팔자' 등 서민적이고도 친근한 개가 등장한다. 이러던 개가 지금은 족보니 애완견 호텔이니, 개 유모차에 애견 카페, 애견 유치원까지 개주인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더니 사람인 나도 '요즘개'가 부럽다.


동생집 개 콜라는 입양된 지 10년 되었다. 사람 나이로 치면 60 환갑인 셈이라나? 콜라는 그 집의 막내딸로 행세하고 있다. 개를 예뻐하던 시집간 조카가 콜라의 환갑 이벤트를 만들었다.


호텔에 반려견 전용층이 있는데 생일개를 위해 견주와 개가 함께 숙식을 한단다. 일박하고 나오는데 수십만 원, 특식으로 개 앞으로 한우 불고기가 나온다나? 남산 근처의 H 호텔이 반려동물과 함께 호텔에서 휴식을 즐기며 색다른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만든 ‘VIP (Very Important Pet)' package 란다.


Person 대신 Pet이 우대받는 개판 세상. 웃픈 격세지감이다. 생일 고깔을 쓰고 포토월에 선 개님들을 보고 실소했다.


개는 개답게 키워야 된다는 모토의 남편은 모든 개를 집안에 들이는 걸 싫어한다. 자고로 개는 마당 구석의 개집에서, 주인이 먹다 남긴 음식인 개밥을 먹어야 한다는 주장이어서 우리 집엔 애완견이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전망이다. 개를 예뻐하고 사람으로 대우하는 이들에겐 개박살 날 이론이긴 하지만, 나도 개에게 쏟는 시간이나 정성을 사람에게 쏟자는 주의여서 개를 극진히 사람처럼 모시는 사람들과는 코드가 맞진 않을 것이다.


나는 개보다 사람을 더 좋아할 뿐이지 개를 학대하거나, 보신탕을 먹진 않는다. 내 주변엔 좋은 이들이 많다. 신장 주치의인 닥터 송도 개띠이고, 자주 드나드는 옷집 사장님 순실 씨도 개띠이다. 베스트 프렌드인 로빈 엄마도 개띠. 그 밖에 친한 이들 중에 개띠가 많다. 개보단 개띠 사람이 좋다. 쓰다 보니 개소리만 썼다. 멍멍!


#metronews #7월의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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