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아 Aug 23. 2016

어느 집에나 있다

비록 지금은 애물단지일 망정


어쩔까 애물단지


 최근에 집을 옮기신 친정어머니는 짐을 줄이고 줄이느라 애를 쓰셨다. 엄마가 예전에 사시던 동네로 이사 가신 것은 인생의 마지막 때를 친구들과 함께 보내고 싶으셔서이다. 팔순의 홀로 사시는 노모가 귀찮은 이사를 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은 이유도 쓸쓸한 어머니의 생활을 알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후에 자식들이 짐정리하기 힘들까봐 미리 한번 청소하는 의미도 있다니, 사후까지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진다. 추려서 버리느라고 고생은 고생대로하고, 책장이나 옷장 운동기구등을 버리는 데도 큰돈이 들었다고 하신다. 차마 버리지 못해서 그냥 가져온 것도 있는데 아버지 생전에 받으신 기념패와 감사패 등이다. 다른짐이 많아서 미국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친정집에 맡겨 두었던 나의 등단패와 문학상 트로피도 망설이다 어머니의 짐이 되었다.

 받을 땐 자랑스러웠던 상패나 트로피에 먼지가 쌓이면 평범한 물건보다 더 초라해 보인다. 번쩍거림이 없어진 트로피처럼 처치곤란한 물건도 없다. 그 속에 들어있는 한 때의 영광마저도 퇴색시키는 남루함이라니. 엄마집의 문갑 위를 아직도 점령하고 있는 오래된 트로피들은, 새로 단장한 친정집의 분위기를 해치는 애물단지였다.

 낡은 트로피를 보면서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라는 말을 생각했다. 1989년 미국의 경제지 포춘이 처음으로 유행시킨 단어이다.  성공한 남성이 트로피같은 진열용 예쁜 아내를 취하는 걸 말한다. 유명 인사의 가십을 다루는 잡지가 화려한 트로피 와이프에 초점을 맞추면서 눈에 보이는 가짜 행복만을 다룬다며 생긴 말이다. 애정 없이 사는 부부를 ‘쇼윈도부부’라고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나 할까?


 혹여 외모를 무기라고 여겨 겉만 가꾸는 데 집착하는 요즘의 세태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신과 전문의에 의하면 겉모습에 집착하는 여성 중에는 연극성 성격장애가 많다고 한다. 여러 사람의 관심과 시선을 즐길 뿐 실제 소중한 대상과의 일대일 친밀관계를 맺는 데는 서툴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뿐 아니라 자녀와도 거리가 멀다고 한다. 그런 허세가 가정의 파탄을 초래하기도 한다니 걱정스럽다.

 대한민국이 성형공화국으로 이름이 났다는 신문보도를 접한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다가 고국에 돌아와 사는 요즈음 한국의 변화가 무척 낯설다. 온갖 사치품과 미용용품으로 시선을 끄는 홈쇼핑방송을 보면서 언제부터 이 나라가 소비지향에 허세지향으로 변했는지 안타깝다. 사는 목적이 치장과 쇼우업(Show-up)에 있다면 가장 하위로 사는 것이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일수록 소중하다는 것을 잊고 살지는 않는지 점검해 봐야겠다.

 예쁘게 타고나질 않아서 ‘트로피 와이프’근처에도 못가는 나의 삶이 그나마 행복하지 않을까 안도한다. 애물단지 트로피를 보면서, 처음 트로피를 받았을 때의 감격을 회복하여 글쓰기의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새삼스레 다짐하기도 하니 산다는 건 아이러니의 반복인 듯싶다.


에세이 문학/2016 가을

 

작가의 이전글 East Sea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