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타기를 보며
주일, 오후 예배까지 다 마치고 나니 저녁 4시가 조금 넘었다. 주일 오후는 참 피곤하다. 일할 때보다 종일 교회에서 지내는 것이 더 힘 들 때가 있다. 요즘처럼 교회에 말이 많고 뒤숭숭할 때는 내가 무엇 때문에 교회에 다니는가? 하는 의문과 함께 신앙의 근본마저도 흔들리게된다.
남편을 졸라 교회에서 오던 길에 말리부 해변으로 갔다.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우고 넓은 바다를 구경했다. 숨통이 트이고 짭쪼름한 바다 냄새도 기분을 맑게 하였다. 태평양과 닿아있는 한국이 생각나고 그 곳에 홀로살고 계신 늙으신 어머니와 그리운 이들이 생각나서 잠시 향수에 젖어보기도 하였다. 물끄러미 먼바다를 바라보다가 가까운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날씨가 더운 탓인지 서핑 수트를 날씬하게 입은 이들이 파도를 타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서핑 보드를 제각기 가지고.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때때로 "와우-, 야호-" 고함을 질렀다. 가만 보니 조금 큰 파도가 오면 그러는 거였다. 덩달아 구경하는 나도 긴장이 되어 큰 파도가 올라치면 같이 조바심을 치게 되었다. 그러나 잠시 후 나의 조바심은 우스운 꼴이 되었다. 그들의 소리는 좋아서 지르는 환호성이었다. 큰 파도가 올수록 더 재미와 스릴을 느끼는 모양인지 일제히 소리를 지르고 바다를 향해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간을 조리던 나는 싱겁게 된 셈이다.
파도를 타는 이들은 파도를 역행하지 않으므로 타기가 쉽고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큰 파도가 와도 파도의 방향대로 서핑을 하니 무섭지가 않은 것이다.
그걸 보면서 우리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 생각했다. 순리대로 살지 않고 물 흐르는 듯 살지 않으니 우리의 인생이 고달픈 것이 아닐까. 공동체에서 다수의 의견을 무시한 채 제 의견 만을 고집하고, 나 이외는 모두 틀렸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진이 빠지고 힘든 것인가?
특히 이민의 삶은 자신을 우물안 개구리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개인 비지니스를 하므로 자기만의 조그만 왕국에서 그저 자기 맘대로 살다보니, 대인관계에 허점을 많이 가지게 된다. 더불어 살 줄 모르다가 동창회다 협회다 교회다 하고 단체생활에 발을 디디면 아집에 빠져 안하무인이 되는 안타까운 이들을 많이 보게 된다. 자기의 올무에 자기가 빠지는 것은 그렇다손 쳐도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모르니 안타까움을 넘어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며, 나 또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아무 것도 안하고 살면 좋으련만 지금의 내 나이가 단체생활을 피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본의 아니게 문인 단체에 교회에 동창회에서 큰일은 아니어도 책임을 지는 일을 감당하게 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아 피곤한 단체들, 그야 말로 단체로 파도타기를 구경해야 할까보다. 나로 인해 파도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나 홀로 파도를 역행하는 것은 아닌지, 또는 집채보다 더 큰 파도가 오면 어떻게 슬기롭게 타야 하는 지 모두 배울 수 있기에 말이다.
하나님이 만든 것엔 우연 한 게 없다던데 파도 하나에도 이렇게 큰 의미가 있을 줄 몰랐다. 종일 교회에서 골치 썩힌 것보다 잠시 시간을 내어 파도 구경한 것이 나의 정신 건강에 더 도움이 되었다.
파도를 배고플 때까지 실컷 보고 "저녁 먹고 가야지? 집에 아무 것도 없는데..." 슬쩍 운을 띄웠다. 그 말 한마디로 저녁식사 준비의 수고는 덜어진 것이다. 파도를 구경한 곳에서 멀지 않은, 누추해서 더 정다운 우리의 단골 식당 Reel Inn 에서 저녁을 해결하였다.
여러 핑계대면서 왜 바다를 보자고 했겠니? 나의 음모에도 우연이 없다는 걸 순진한 남편은 모른다.
*** Reel Inn 은 말리부 해변에 있는 조그만 식당. 이름에서 눈치 챌 수 있듯이 오래 전 선착장 부근에 있던 여관으로 지금은 유서깊은 식당이 되었다. 옛날에 쓰던 가재도구가 그대로 걸려있는 목로주점과 같은 분위기.
여행작가 7.8 월호 2018
수필가 이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