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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수 Apr 19. 2017

새벽에 젖병을 물리며





초저녁부터 작업이 안 끝나 옆방에서 글을 쓰던 중 아들의 울음소리에 뛰어갔다. 우유 먹고 아침까지 자는 쌍둥이 딸과 달리 아들은 새벽에 꼭 두 번씩 깨어 우유를 마신다. 잠을 자던 아내는 비몽사몽에 애를 안고 흔드는데 배고파서 우는 아들은 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울기만 한다. 항상 내 옆에서 자는 아들은 아빠가 담당이어서 내가 훌쩍 안고 부엌으로 뛰어 우유를 타주며 어르고 달랜다. 


사랑하는 아들아 우유를 마셔라. 

언제나 예쁜 내 아들 천천히 마셔라

잘 먹고 잘 자고 튼튼하게 자라자

이것 다 마시고 다시 잠들자


자다가 우는 아들, 아니 울음이 아니라 방이 떠나갈 듯 소리 지르는 아들은 젖병이 입에 들어가면 어쩜 그리 평온한 표정을 짓는지 웃음이 다 나온다. 그걸 바라보는 아내는 예쁘기는 하지만 조용한 딸과 다른 아들의 행동에 고개를 저으며 방을 나선다. 눈도 못 뜨고 우유 마시는 아들은 내 눈에는 정말 예쁘다. 물론, 아기들은 모두 예쁘지만, 그것보다 내가 필요한 이 작은 생명을 통해 내가 삶의 활력을 찾기 때문이다.


몇 주 아기들 업고 다니느라 지친 허리가 지난주 탈 나 주말을 꼼짝 못 했고 아직 쑤시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들.딸을 보면 힘이 난다. 남들은 편안한 삶이 바로 행복이라 하는데 나에게는 그것보다 내 몸이 피곤하고 아파도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이 더 행복하다. 결혼 전 혼자 산 지 십몇 년이 넘을 때 생활이 불편한 것과 몸이 아픈 것보다 내 삶을 이어갈 방향을 잃었을 때가 가장 괴로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하며 그날의 느낌과 배운 것을 함께 나누고 싶었고 점차 나이 먹으며 사람이 함부로 할 수 없는 고통을 통해 성장하는 보통의 삶을 이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거울 속에 비친 나 혼자는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없어 슬펐고 때로는 답답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내게는 해야 할 일과 돌볼 것이 생겨 기쁘고 힘이 난다. 천천히 가면 다 된다는 진리를 비로소 깨달으며 오늘도 밤에 우유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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