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전문기자와 장 보기 5탄
환율이 1300원대였던 적은 약 13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다. 그러니 환율 1300원은 금융위기를 연상시키는 위협적인 숫자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거래되지 않는 레벨이라는 의미다.
2008년 7월 1000원을 밑돌던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2009년 3월 1600원까지 폭등했다. 이 과정에서 환율이 1300원을 거쳐갔던 만큼 1300원이라는 숫자가 지니는 의미는 무겁다.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쳤을 때 환율은 1295원선까지 폭등했는데, 이때 갑작스러운 달러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놀란 전 세계 투자자들이 자산을 투매하기도 했지만, 국내 외환시장에서는 증권사 중심으로 달러가 급하게 필요해지면서 달러 수요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코로나 사태로 해외 주식이 급락하자 이와 연계된 상품에서 달러 증거금 납입 수요가 폭증해 달러 품귀 현상이 일시적으로 발생했다. 2020년에 예상치 못한 역대급 위기를 겪었던 증권사들은 그 이후 예방 차원에서 달러 보유를 늘려왔다. 따라서 현재 증권사의 달러 수요로 촉발할 시장 위험은 이전 대비 줄었다.
조금만 시계를 더 앞으로 돌려 2008년 금융위기 때로 가보자.
이 때는 국내 은행들을 중심으로 달러를 구하는데 문제가 있었다.
금융위기로 환율이 폭등하자 자기실현적인 패닉 장이 형성됐는데 특히 달러를 빌려주고 빌리는 외화자금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조금은 어려울 수 있지만 그때 상황을 설명해보면 당시 국내 은행들은 외국계 은행과 파생상품을 거래할 때 달러 자산을 담보로 썼는데, 시장 상황이 어려워지자 추가적인 달러 담보를 확보하기 위해 급하게 달러를 구해야 했고, 그 결과 달러 품귀현상이 빠르게 확산되자 시장은 얼어붙었다.
지금은 어떻냐고?
2008년 이후 금융당국이 달러 담보 사용을 자제하도록 요구하면서 국내 은행들이 달러 리스크에 노출된 정도가 크게 줄었다. 다시 말해 국내은행들의 달러 유동성 위험 요인은 감소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에 투자해 외국에 갖고 있는 금융자산이 외국인들이 한국에 갖고 있는 금융자산보다 많아졌다. 이를 순대외금융자산이라고 말하는데 2014년에 플러스를 보였고, 작년 말 기준 그 규모가 6300억 달러 수준으로 사상 최대다. 그만큼 한국이 대외 지급 능력 즉 한국의 금융 가계부가 튼튼해졌다는 의미다.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외채 비중도 과거 대비 크게 줄었다. 외환보유액도 역대급으로 늘었다.
결국 지난 과거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외환 체력이 보강됐다.
그래서 환율이 1300원대로 급등해도 안심할 수 있냐고?
금리 상승과 달러 강세라는 뉴 노멀 시대 아래 그 어떤 예단도 지금은 힘들다.
특히 미국이 금리를 빨리, 한꺼번에 많이 올려 이제껏 시중에 많이 공급됐던 달러를 서둘러 거둬들이기로 한 현재 어느 순간 달러를 빌리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리고 환율이 위기를 연상시키는 1300원대로 진입한 것만으로 투자자들이 불안을 느껴 조그마한 충격에도 시장이 예민하게 반응할 수도 있다.
며칠 전 가상화폐 시장 급락에 다른 자산시장이 다 함께 요동칠 걸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외환시장 체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정책들이 이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업그레이드된 측면은 분명 있다. 따라서 환율 1300원대 그 자체가 심각한 고비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냉정한 평가도 나온다. 이제껏 외환시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결과 시장은 늘 예고 없이 급변했다.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서 말이다. 하지만 현재 숫자가 지니는 의미 자체 만으로 너무 시장을 위기로 확산해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달러가 이런저런 이유로 강세를 보인 정도만큼 원화는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이전보다 원화 가치가 떨어졌지만 정상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뉴 노멀 시대에서 환율의 정상적인 수준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