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공포, 외환시장 판을 바꾸다

외환 전문기자와 장 보기 4탄

by yErA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 공포에 제대로 사로잡혔다. 고물가의 뉴 노멀 시대가 도래했다는 진단도 나온다.

코로나 사태로 원활하지 못했던 전 세계 물류 공급망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더 악화된 데다 중국이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일부 도시 봉쇄에 나서면서 공급망은 더 큰 타격을 받게 됐다. 일례로 많은 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하는 애플은 중국의 코로나 정책에 따른 공급망 차질 때문에 2분기 실적 악화를 시사했고, 그 결과 애플 주가는 급락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와 식량 공급에 심각한 차질이 생기면서 물가 상승 압력은 더욱 커졌다.

물가 상승에 공급 문제가 전부는 아니다. 이미 많은 국가들이 코로나 팬데믹(범유행 전염병)에서 엔데믹(풍토병)으로 전환하면서 여행, 외식 등 소비 활동이 훨씬 활발해짐에 따라 서비스 물가가 크게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물가 상승세는 전방위적으로 진행 중인 셈이다.

전 세계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0년 만에 가장 컸다.

한국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우리나라 3월 소비자물가는 13년 반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전 세계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물가 잡기가 최우선 정책 목표가 됐다.

그러다 보니 금융시장 판도 달라졌다. 외환시장도 물론이다.


◇ 여기서 잠시.. 인플레는 왜 걱정해야 할까?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월급생활자의 경우 가만히 있어도 월급이 깎이는 것과 같은 실질소득 감소 효과가 나타난다. 연봉을 협상할 때 물가상승분을 전부 반영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거나, 또는 물가 상승세가 빠르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해진 연금을 받는 연금소득자도 난감할 수밖에 없다.

물가가 빠르게 오르면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물론 부동산이나 귀금속 즉, 실물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은 그나마 버틸 만하다. 실물자산은 물가상승 따라 가치가 함께 오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빈부격차는 심해지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 실물자산으로 돈은 더 몰려 건강한 경제 선순환을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기업들은 갑작스러운 비용 인상에 투자, 생산 및 고용을 줄이고, 그 결과 경제는 성장경로를 이탈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물가 상승 기대가 확산될 경우 물가 상승에 따른 임금 상승이 물가 상승으로 연결되는 인플레이션 악순환도 가능하다.

코로나 사태 이전 세계 경제는 저물가 악령을 떨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금리를 마이너스까지 내리고 시중에 돈을 엄청 풀면서 물가 상승 환경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이제는 인플레이션의 무서움을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 외환시장 판이 달라졌다


'환율 전쟁', 낯설지 않은 용어다.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국 통화 가치를 약세로 유도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자국 통화 가치 하락은 타국 통화로 표시된 자국 수출품 가격을 내리게 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은 초저금리와 무제한 돈 풀기 정책으로 자국 통화 약세와 이를 통한 수출 확대를 꾀했다. 우리가 익히 들었던 '아베노믹스'가 대표 사례다. 아베 신조 정부는 무제한으로 돈을 풀어 엔화 가치 하락을 유도해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애썼다. 일본이 유독 눈에 띄긴 했지만, 주요 선진국들은 암묵적으로 자국 통화 가치를 절하하는데 정책 초점을 맞췄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이 문제가 좀 더 노골적으로 가시화됐을 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의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낮춘다고 비난하면서 2019년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고, 대중 관세를 매겼다. 그러면서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며 약달러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국 통화 약세가 아닌 자국 통화 가치를 방어하려는 쪽으로 돌아섰다. 인플레이션 공포가 외환시장 판도를 정반대로 바꿔놓은 셈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 경우 자국 통화가 약세라면 수혜를 보지만, 물가가 고공행진을 보일 때는 수입품과 에너지 등 가격이 비싸지기 때문에 이러한 셈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물가 상승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자국 통화 강세가 더 유리해진다.

글로벌 달러 가치가 20년 최고치로 급등했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강달러가 수입 물가를 완화시킨다는 측면에서 나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 약세가 미국 무역에 도움이 된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했는데 말이다.


미국이 가장 공격적이지만, 많은 국가들이 물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서둘러 정책금리를 올리며 통화긴축을 서두르고 있다. 통상 금리를 올리면 자국 통화 가치 하락을 방어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총 4차례 금리를 올린 한국은행은 가파른 물가 상승세를 막기 위해 올해 말까지 4차례 더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전망대로라면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2.5%까지 오르게 된다.


저물가를 걱정하던 시장은 고물가라는 낯선 환경에 시달리게 됐다. 그 결과 수십 년간 자국 통화 가치 절하라는 큰 틀이 형성된 외환시장은 자국 통화 방어라는 새로운 틀을 짜고 있다. 이런 새로운 판에서 원화가 얼마나 잘 버텨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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