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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rA Jun 27. 2023

내가 알아서 해요!

기적의 공간을 허하노라

2호선 지하철 역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친구와의 편한 만남이 아닌 업무 관련 공식적인 일정이었던 만큼 예정된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렀다. 주변을 살필 여유 없이 지하철 역 입구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덤벙덤벙 뛰어내려 가는데 반대편에서 엄마와 아들이 정하게 웃으며 서로 손을 꼭 잡천천히 계단을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아들은 적어도 대학생 이상으로 보이는 장성한 청년이었고, 그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은 이미 하트로 꽉 차있었다. 나의 청력이 아직 정상적인 수준이라면 그들은 엄마와 아들의 관계가 틀림없었다.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이들 모자의 살가움은 잡한 나의 상황 가운데서 쉽게 어지지 않았다.


마주 잡은 손이 조금이라도 헐거워지면 제발 손을 꼭 좀 잡으라고 칭얼대던 꼬마 녀석은 내 키를 앞지르기 시작하면서 부 나와 나란히 손을 잡고 걷는 일을 몹시 어색해했다.


직접적인 충전보다는 블루투스 방식의 보다 고차원적인 사랑의 충전 방식을 선호하는 아들의 선택을 난 별 서운해하지 않았다. 사실 난 다른 엄마처럼 감정의 표현이나 전달 과정이 그렇게 다채롭거나 풍부하지 않다. 이런 날 반만 닮았다 하더라도 아들의 다소 정제된 표현 방식은 내게 그이상할 게 없다. 오히려 반대였다면 내가 적잖이 당황했을 수 있다.


그런데 말이지, 난 아직 커가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고 있다. 보이지 않게 말이다.


나조차 아직도 어느 인생 경로가 맞는지 찾지 못하면서, 아들에게는 마치 그게 정답인 듯한 삶의 방식대로, 계획한 방식대로 그렇게 살아가길 바라면서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있다.


불확실한 상황은 통제하고, 직감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것은 미리 차단하고, 뭐든 계획하고 다듬어서 그에 합당한 결실이 나오기를 바라는 엄마다. 아주 단편적이고 미흡한 경험을 가지고 내린 결정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다.


나의 나침반이 고장 났는지도 모르면서 아이의 나침반을 저평가하며 사용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내가 마련한 안전지대에 있어야만 예상치 못한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우기는 엄마다.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 나 못 믿어?


잘잘한 나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내뱉는 말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이가 알아서 할 공간을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슬며시 든다. 너무 아이 손을 꼭 잡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마음은 불확실성에 직면할 용기를 낼 때 성장합니다. 우리 마음대로 앞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참아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가장 현명해집니다.  
손을 조금 덜 세게 쥐고 더 활짝 편 상태로 살 수 있길 바랍니다. 조금 덜 통제하고 더 신뢰하길 바랍니다.
(I May Be Wrong,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책의 저자는 미래를 통제하고 예견하려는 헛된 시도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럴 용기가 있다면 그 불확실한 공간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했다.


아들에게 기적의 공간을 만들어줘야겠다.

안개 자욱한 불확실성 안에서 때론 길을 잃더라도 자기만의 나침반으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가슴 벅찬 기적을 경험한 아들과 나중에 손 꼭 잡고 도란도란 걸어가는 게 내가 바라는 기적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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