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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rA Jul 15. 2023

무거움과 가벼움의 기묘한 줄타기

시선 #1

'사랑과 배신, 그리고 복수'

한 개인에게 이보다 무거운 사건은 없다. 하지만, 대중에게 이보다 가벼운 가십거리는 없다. 질겅질겅 씹어대기에 이 만한 것은 없다.

 

사랑-배신-복수, 하나 하나로도 충분히 버거운데 이 세 개의 모티브로 한 개인의 스토리가 쫀쫀하게 만들어진다면? 무거워도 너무 무겁다. 하지만, 남의 일이라면? 이보다 더 가벼운 건 없다. 재밌기까지 하다. 스토리의 진실 따위는 애초부터 관심 대상이 아니다. 스토리의 주변부에 자리 잡고서 흥미진진한 구경거리를 마음껏 즐기면 된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한 마디 던져도 된다. 혀를 끌끌 차면서 말이다.

  

'메데이아'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에우리피데스가 쓴 비극이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이라... 너무 무겁다! 그런데 이 비극의 소재는 더 무겁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데이아와 이아손에 관한 것인데 쉽게 풀어보자면 불 같이 강한 센 여자(메데이아)의 매력이 철철 넘치는 한 남자(이아손)에 대한 극단적인 사랑, 이를 저버린 남자의 배신, 여자의 처절한 복수를 모티브로 하는 수위가 꽤나 센 스토리다. 중간이 없다. 죄다 클라이맥스다. 달달한 사랑 뒤편엔 여기저기 피 냄새가 진동한다. 다크하고 찐득한 '레드'의 무거움이 작품 전체를 덮어버린다.

  

하지만, 가벼워질 수  있다.

메데이아의 시선이 무수한 대중의 얕디 얕은 시선으로, 비극이라는 글의 무게가 일차원적인 감각적이고 원색적인 콘텐츠로 바뀌는 순간 무거움은 무게를 잃고 제대로 가벼워진다.

 

 '메데이아'를 원작으로 한 성북동비둘기 극단의 '메디아 온 미디어' 공연이 딱 그랬다.  미디어로 인식되는 사각 틀 안에서 비극의 무거움이 이질적이지만 딱히 불편하지도, 거부하고 싶지 않은 가벼움으로 둔갑하고, 이러한 가벼움 여러 형태로 지속적으로 송출된다.

 

'메데이아' 원작 속 밀도 높은 장면들은 가식적인 기자회견, 고전신파극, 만화, 리얼 토크쇼, 성인콘텐츠, 1인 유튜브 방송 등으로 낱개 낱개 쪼개어지고, 비극의 아리아가 감정을 후비기보다는 나훈아 테스형으로 가벼운 어깨춤을 추게 한다.

 

무수한 대중 속에 숨은 익명성이라는 가벼움으로, 무수한 자극적인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가벼움으로, 무수한 내면의 감정을 타자화할 수 있는 가벼움으로, 무게감의 중력을 제대로 걷어냈다. 핏빛으로 칠갑한 원작은 연극 마지막 장면에서 걸쭉하게 트로트를 부른 메데이아의 마이크에 장식된 핑크빛 꽃처럼 한없이 가벼워진다.

 

이 연극의 'core'는 무거움일까? 가벼움일까? 기묘하다. 


성북동비둘기 '메디아 온 미디어'

https://linktr.ee/beedoolkee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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