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전문기자와 장 보기 1탄

GLOBAL HOT ISSUE - 일본 엔화, 도대체 뭔 일?

by yErA

요즘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가장 '핫'한 통화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일본 통화인 '엔화'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미국과 서방국가의 강력한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 가치 폭락은 이해할 만하지만, 엔화 가치(달러 대비)가 갑자기 20년 만의 가장 낮은 수준으로 고꾸라진 것은 조금은 어려운 얘기다.

궁금증을 가져볼 만하다. 엔화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 사상 초유의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최근 국제 금융시장의 핵심 키워드는 딱 두 가지다.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이미 망가진 글로벌 공급망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으로 더 악화됐고,

그 결과 식료품을 비롯한 유가, 원자재 가격이 전부 급등해 전 세계는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인플레이션 상황을 맞닥뜨리게 됐다. 로이터가 제공하는 유가와 각종 원자재 등을 포함한 핵심상품지수는 올해만 30%대 치솟았는데, 한 마디로 물가 때문에 여기저기 난리가 났다고 보면 된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고물가에 대한 고강도 통화정책 대응을 예고했다.

미국의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빨리 올리고, 시장 유동성도 서둘러 흡수하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0년 만의 최고였다.

지난 3월 2018년 말 이후 처음으로 정책금리를 0.25% 올려 제로 금리를 벗어난 연준은 앞으로 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해 물가를 잡겠다고 공언했다. 그 결과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2018년 말 이후 첫 3%를 코 앞에 두게 됐다. 작년 말만 하더라도 1.5% 수준에 그치던 금리가 말이다.


◆ 초저금리 통화, 엔화의 숙명


엔화 가치 폭락을 설명하는데 인플레이션과 미국 금리인상이 무슨 상관이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엔화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고 있다.


상황을 보자. 우선,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에너지 순수입국이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원자력 폭발 사고를 겪은 이후 원자력 비중을 줄이고 원유를 비롯한 대외 에너지 수요를 늘렸다. 그런데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가가 급등하자 이를 구입하기 위한 달러 수요가 엄청 늘어난 것이다. 엔저 관점에서 설명하면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야 하는 수요가 늘었다는 말이다.

이런 수급 사정을 설명하는 게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인데 일본은 지난 1월 8년 만의 최대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결국 에너지 가격 상승이 엔화 약세를 제대로 부추긴 셈이다.


다음은 미국과 정반대로 가는 일본의 통화정책과 이 때문에 계속 벌어지는 두 나라의 금리 차이다.

미국이 대대적인 금리인상을 예고한데 반해 일본은 기준금리를 -0.1%로 유지했다. 그러면서 일본은행은 국채를 매입해 시중에 유동성을 푸는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 10년 국채 금리가 3%를 향해가는데 일본 10년 국채 금리는 0.25%다. 간단한 산수만 하더라도 값싼 엔화를 빌려 고금리에 투자하는 소위 '엔 캐리 트레이드'가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예상은 쉽게 해 볼 수 있다. 다시 설명하면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산다는 의미다. 시장이 이렇게 형성되면 엔화 약세에 대한 투기 수요는 더 몰릴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합리적인 궁금증을 가질 수 있다. 일본도 미국처럼 정책금리를 올리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일본은 그간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제로금리로 정책금리를 설정한 다음 국채를 발행해 그 돈으로 여러 분야에 투자하는 정책, 즉 확장 재정정책을 고수해왔는데 금리를 올리게 되면 재정 측면에서 부담이 너무 커져버린다. 일본의 GDP 대비 국가 채무비율은 주요 국가 중 단연 선두다.


엔화 가치는 올해 3월과 4월에만 약 11%나 떨어졌다. 그리고 약세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 누가 엔저를 막을까


최근 일본 정부는 엔저 속도에 대해 연일 경고음을 내고 있다.

하지만, 엔저를 막을 브레이크는 아직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은행 총재가 최근 급격한 엔저를 우려하면서도, 엔화 약세가 일본 경제 전반에 긍정적이라는 시각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해 엔저 추세를 더욱 부추긴 꼴이 됐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자. 1985년 '플라자 합의'와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고 일본은행이 엔저를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한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아베노믹스'와 같은 정책으로 엔저를 유도하기에 바빴다. 일본은행이 지금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시점에 공식적으로 외환시장 개입에 나선 적은 2011년으로, 당시에도 일본 동북부 지진과 원자력 발전소 폭발로 인한 가파른 엔고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의 경우 국채 대부분을 일본 금융기관들이 보유하고 있어, 통상적으로 자국 통화 약세 때 급격하게 발생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본 유출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에 반해 일본 사람들의 해외투자는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위에서 말한 대로 엔저 현상은 더욱 굳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국 입장에서는 고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달러 강세가 당분간 유지돼야 할 필요성이 큰 만큼 일본에 인위적인 엔 약세를 위한 환율 조작이라는 시비를 걸 이유가 없다. 엔저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수입물가 급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일본 정부는 미국 등 다른 나라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외환정책에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달러/엔 130엔을 앞두고 일본 정부의 이례적인 외환시장 개입이 있을 가능성을 두고 시장은 경계 태세를 조금은 높이고 있다.


이래저래 지금 국제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최대 핫 이슈다. 국제 경제와 통화정책을 비롯해 시장심리가 모두 반영되고 있는 엔화 흐름을 당분간 유심히 따라가봐도 재미있을 듯하다.


참, 엔/원은 어떻게 되냐고? 다음편에서 얘기해보도록 하자.


<달러/엔 차트, 출처 레피니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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