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쉼 없이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달러/원 환율이 어디까지 올랐냐면 전 세계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던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거래됐던 1400원대 턱 밑까지 치솟았습니다. 오늘 아침 외환시장에서 1399원까지 거래됐으니 말입니다.
앞서도 잠시 말했지만 달러/원 1400원대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 이전에는 1997년 외환위기 때 거래됐던 구간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이 위기라는 큰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당시 환율이란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과거 위기 트라우마가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습니다.
환율은 왜 이렇게 계속 오를까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슈퍼 달러' 때문입니다. 지금 국제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이외 주요 통화 가치가 추락하고 있습니다. 달러 대비 유로 가치는 20년, 엔은 24년 만의 최저치로 폭락했습니다. 위안은 최근 들어 약세 압력을 키워 2년 만의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들 통화가 이렇게 움직인 데는 고유한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퉁쳐서 한 마디로 말하자면 달러 강세 때문입니다.
주요국들이 고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미국이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미국은 경제 여건 상 여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미국 물가지표를 통해 고물가 고착화 우려가 급부상했고, 그렇다 보니 시장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연방준비제도(연준)가 훨씬 금리를 더 많이 올린 뒤 장기간 높은 금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달러 강세 기조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에너지 위기, 미-중 갈등 악화 등 여러 부정적인 요인이 합쳐져 글로벌 경기침체 전망이 확산된 가운데 이에 한국은 수출 경기 부진 등 실물경제 악화를 비롯해 에너지 수입 확대로 인해 월간 무역수지가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하는 등 여러 다양한 악재를 맞닥뜨리게 됐습니다. 그 결과 원화는 2009년 3월 이후 최저치로 미끄러졌습니다.
그래서 외환시장이 과거 때처럼 어려워졌냐고요?
현재로서는 아닙니다. 환율은 크게 올랐지만, 이상 징후는 아직 없다는 게 시장참가자들의 중론입니다. 왜냐고요? 외환시장에서 말하는 위기는 필요할 때 달러를 사지 못하거나, 빌린 달러를 갚지 못할 때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러를 살 때 이전보다 비싸게 사야 하는 상황이지 필요한 달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과는 거리가 멉니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이러한 상황을 미리 대비해 달러를 충분히 보유해두고 있습니다. 달러 사정이나, 외환 건전성을 알려주는 지표들은 아직 안정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환율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결정되지만 급등할 때 외환당국은 외환보유액을 통해 시장에서 달러를 팔아 환율 변동성을 관리합니다. 최근 환율이 발작 증세를 자주 보인 터라 당국은 달러를 팔아 시장 안정 조치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 결과 외환보유액은 올해 약 270억 달러 감소(8월 말 기준, 자산 평가손 포함)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외환보유액 감소를 두고 환율 위기 방어 능력이 약화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지만 외환보유액 규모는 4364억 달러로 세계 9위 수준입니다. 물론 앞으로 대외 여건이 크게 악화돼 감소 속도가 빨라질 우려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환율에 대해 안심해도 되냐고요?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킹 달러' 현상에서 원화는 달러와 보폭을 같이하며 선방했지만, 3분기에는 달러를 앞질렀습니다. 특히 9월에 원화는 달러보다 더욱더 빨리 달리고 있습니다. 달러 강세 때문에 환율이 오른다고 말하던 외환당국은 최근 들어선 원화 약세 속도가 가팔라지는데 대해 본격적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당국은 환율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공식적인 경고에 나서는가 하면 어제와 오늘은 평상시 변동성을 관리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 강도 높은 실개입에 나서 환율을 끌어내렸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실개입이란 당국이 보유한 달러를 시장에 달러를 팔아 환율을 관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 세계적인 강달러 현상이지만 원화만 유독 약세 속도가 빨라지면 시장심리가 쏠리고 그 결과 환율은 더 가파르게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달러를 사려는 주체들은 더 급하게 사려할 테고, 달러를 보유한 주체들은 팔지 않고 더 보유하려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본유출을 촉발시키는 등 수급 쏠림이 한층 심화될 수도 있습니다. 환율 불안이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훼손시키는 것을 넘어 국내 실물경제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상황으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시장 내부에선 한 달 전 환율이 1300원대로 오를 때보다 1400원을 목전에 둔 지금 긴장감이 훨씬 큽니다. 일부에선 달러/원 단기 전망을 1450원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1400원대에서는 아직 시장이 설정해둔 뚜렷한 저항선이 없습니다. 이에 당국은 대외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환율이 오른다 해도 시장심리가 쏠리는 것을 저지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 미국 연방준비제도 통화정책 회의가 예정돼있습니다. 여러 연준 인사들은 경기 침체가 오더라도 고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을 강조해왔습니다. 이번 회의에서 연준은 0.75% 금리 인상을 할 것으로 시장은 예상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1% 인상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습니다.
연준 이벤트를 전후로 국내외 금융시장은 극심한 변동성에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걷혀야 전 세계 금융시장이 조금 진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글로벌 경기와 국제 금융시장 여건 따라 흔들리는 원화인지라 당분간 어쩔 수 없이 긴장감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내년 글로벌 경기 침체 전망까지 나오면서 장기전에 대비해야 할 수도 있지만, 일단 연준 이벤트라는 단기 파고부터 넘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