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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rA Oct 23. 2022

성산대교에 기억의 향기를 입히다

'지금 이 순간'

자이언티(Zion.T)는 양화대교에 자신의 스토리를 담아 노래 덧입혔다.

그의 센스를 조금 빌린다면 나는 성산대교 위에 나의 스토리를 펼쳐낼 수 있다. 그리고 찰리 푸스(Charlie Puth) 음악으로 풍부함을 더할 수 있다.


성산대교를 함께 건널 때마다 이 시간, 이 장면을 가슴 한편에 기억해달라고 조용히 읊조린다.


살랑살랑 꽃가루가 흩날리는 나른한 봄날이면 성가신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남들이 생각하는 만큼 봄은 낭만적이지 않다 서로 고개를 끄덕고, 한여름의 시뻘건 태양이 한강물로 빠져들며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일 때는 서로 입을 떡 벌린 채 자연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에 몰입했다.


화선지에 먹이 스며들듯 노을이 번질 때면 그럴듯한 음악을 골라 리듬에 몸을 맡겼고, 뜻밖의 일곱 색깔 무지개가 하늘에 새겨질 때면 행복한 마음을 가득 담아 소원을 빌었다.


스산한 가을바람에 한강의 출렁임조차 차갑게 느껴질 때면 이럴 땐 핫초코가 딱이라고 입을 모았고, 살을 에는듯한 매서운 겨울바람에 달리는 차가 뒤뚱거릴 때면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e)의 포근한 크리스마스 캐럴로 차 안에 온기를 채웠다.


묵직한 침묵의 시간도, 조잘거리는 수다의 시간도, 리드미컬한 노래를 목청껏 따라 부르는 흥 넘치는 시간도, 목소리를 낮추는 무거운 대화의 시간도 있었다.


신이 존재하는지 함께 궁금해다가도 당장 먹을 저녁 메뉴를 고르고, 선악이라는 거대한 개념에 대해 어설프게 말을 섞다가도 누군가의 험담에 열을 올렸다. 당장 내일까지 해야 하는 일에 대한 부담을 쏟아내다가도 곧 다가올 여행 계획을 의논하며 들떴다.

 
아직 진행형이다. 성산대교를 오가는 일상 말이다. 하루하루 추억을 쌓아가는 일 말이다.

애초부터 난 운전자였고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리고 조수석에 앉아 나와 알콩달콩 추억을 쓰는 사람도 그대로다. 다만 그는 안팎으로 성장하고 있다.


노는 게 제일 좋아를 외치며 자기가 뽀로로인 줄 착각하며 세상 행복했던 꼬마는 어느덧 나의 키를 훌쩍 넘긴 청소년이 됐다. 그런 아들과 난 어느 시점부터 성산대교를 지나는 일상을 써나가고 있다.


나의 자잘한 잔소리를 못 들은 척하며 잠을 청하기도 하고, 틀에 박힌 학원 생활이 지친다며 말문을 닫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날은 자신 만의 원대한 장래희망에 대해 열을 올리는가 하면 또 다른 날엔 당장 정해진 꿈이 없다며 의기소침해하기도 한다.  


아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 속 나의 과거를 공유하고, 함께하는 우리의 현재를 나누고, 각자의 서로 다른  미래를 마음껏 상상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해는 저 편으로 넘어가며 하늘과 땅을 물들이지만 분명 오늘은 어제와 다다. 엄마와 아들, 우리 관계는 그대로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 조금씩 흘러가고 있다. 그러다 지금의 무심한 일상이 언젠가는 내 맘 깊은 곳에 간직해야 할 추억으로 자리 잡게 될 테다.


오늘도 성산대교를 달리는 차 안에서 감성 넘치는 찰리 푸스 음악을 들으며 아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우리의 오고 가는 시공간에 찰리 푸스의 달콤한 멜로디는 청각의 향기를 덧입힌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간다. 언젠가 그리움라는 단어로 수렴될 벅찬 기억들 말이다.


'나중에 네가 운전하며 성산대교를 지날 때 지금 함께한 시간을 기억하며 막연하게나마 사랑의 감정을 떠올려준다면 좋겠어. 같이 한 그 모든 시간이 엄마인 내겐 이미 애틋하고 소중하고, 그리고 벌써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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