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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rA Oct 25. 2022

기억하다, 한동안 머물다

기억의 조각들

나의 기억의 창고에는 이불 킥을 유발하며 빨리 감기가 필요한 구간이 있는가 하면, 무한반복을 통해 그 달달함 속에 오래 머물고 싶은 구간도 있다. 아니면 흐릿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반복 재생이 필요한 구간도 있다. 이렇듯 과거로 시간을 확장해보면 기억의 저장소 곳곳에는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꼭꼭 숨겨져 있고, 그들은 서로 다른 고유한 냄새를 풍긴다. 달달하고 은은한 향기일 수도 고약한 냄새일 수도 있다.


가끔씩 시간을 되감으며 생각에 잠기고는 한다. 늘 다가올 시간을 계획하고 고민하고 그에 맞춰 '지금'을 몰아붙이는 헉헉대는 삶을 선호하지만, 이러한 생활이 고단할 때면 잠시 넋을 놓고 두서없이 떠오르는 기억의 단편을 꼭 쥔 채 그 시간 안에 한동안 머무른다.


시간 순서나, 사건의 연관성 또는 사건이나 인물의 중요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의식의 흐름을 따르다 보면 단순히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성의 없이 뭉뚱그려진 이전 시간 안에서 가지각색의 냄새를 느끼게 된다. 이 때문에 현재가 더 고단해지거나 서글퍼지기도 하고, 자그마한 위로에 훈훈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새로운 어떤 것을 용기 내 계획하기도 하고, 또는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수줍게 연락하며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남들 이야기를 듣는 게 훨씬 익숙해졌지만, 세상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댓글을 달고 싶은 이야기는 사실 내 안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걸려든 기억의 조각은 '가족'이다. 나의 체취가 일방적으로 묻어나는 기억의 조각들이라 깊은 공유는 바라지는 못할 듯하다. 나와 확연히 다른 시간의 향기를 맡는다 해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도 극히 개인적인 기억 여행에 동참하려 한다면 기꺼이 반기겠다.  


엄마 목소리


해운대에서 큰 축제가 있었다. 정말 많은 사람이 북적였다. 씰룩거리는 어른들의 엉덩이만 잔뜩 시야에 들어올 정도로 꼬꼬마였던 나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어느 순간 혼자 덩그러니 서있었다. 분명 엄마 손을 꼭 잡고 있었는데 말이다. 혼자가 된 공포에 압도당해 마구 울어버릴 여유마저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몰리는 인파에 휩쓸려 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가 선택한 생존의 방법은 그 장소에 끝까지 버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손을 놓은 지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았을 테지만 그 멈춰진 시간 동안 나는 무채색 공간에서 쏟아지는 서늘한 냉기에 꼼짝없이 얼어붙고 있었다. 

그때 귀에 꽂히는 엄마 목소리! 내 주위는 순식간에 화사한 온기가 번졌고 부드러우면서 달콤한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을 꾸려가면서 종종 길을 잃어버린 채 허둥대곤 한다.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툭툭 치고 지나가는 혼잡한 길 가운데서 어느 쪽으로도 발걸음을 내딛지 못한 채 꼼짝없이 얼어붙고는 한다. 그럴 때면 난 그때의 엄마 목소리가 그립다. 내게 엄습한 공포를 단번에 깨부순 엄마의 그 목소리 말이다. 따듯함을 잔뜩 품은 엄마의 그 향기 말이다. 


아빠의 등


아빠의 걸음 따라 내 몸도 조금씩 들썩인다. 가족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언니는 감기는 눈을 겨우 반쯤 뜬 채로 엄마 손을 잡고 터덜터덜 걷고 있지만, 난 막내라는 이유만으로 아빠의 등에 찰싹 붙어 졸음을 즐긴다. 가족 외출 이후 늦은 밤에 귀가할 때면 아빠의 넓은 등은 매번 나의 차지였다. 언니는 경쟁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포근한 자리는 당연히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빠의 호흡과 걸음의 보폭 따라 내 몸은 자연스럽게 흔들리고, 아빠의 걸음수가 많아질수록 아빠의 땀냄새도 진해진다. 맥주를 애정 했던 우리 아빠의 들큼한 술냄새도 가끔 섞였다. 


출산 이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에 아빠와 엄마는 나와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주셨다. 낯선 엄마 역할을 하느라 우왕좌왕할 때면 엄마는 본인의 옛 기억을 더듬어 과분할 정도로 내게 헌신했다. 이에 반해 아빠는 엄마에 비해 본인이 할 일이 없다며 미안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때 아빠의 등은 또 위력을 발휘했다. 아마 우리 아가는 나보다 더 훨씬 포근한 냄새를 우리 아빠의 등에서 맡았을지도 모르겠다.  


언니의 대범함


새벽 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의 골목길, 저기 앞에서 한 명이 뚜벅뚜벅 걸어온다. 스산한 골목길에서의 인기척은 달갑지 않아야 하지만 내겐 오히려 반가움이다. 난 고등학교 시절 집에서 걸어 약 20분 정도 거리의 독서실을 다녔다. 아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는 곳이어야 찐 공부가 가능하다는 나만의 확신 때문이었다. 새벽 한 시경 독서실을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경로는 큰길을 걷다 동네 골목길로 접어드는 것이었다. 대학생이었던 언니는 밤이슬을 맞으며 나를 종종 데리러 왔다. 언니가 한 체격 하느냐고? 천만에... 강한 바람에 쉽게 날아갈 법한 종이인형 수준이다. 그런 언니가 혼자 다니는 새벽 골목길은 위험하다며 자주 날 마중 나왔다. 입담 넘치는 언니는 어두운 골목길의 무거운 적막을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걷어냈다. 우리는 으슥한 골목을 그렇게 깔깔 거리며 재미있게 오갔다.     


늦게 일하고 밤길을 걸어갈 때면 그때 골목길에서 날 마중했던 언니가 가끔씩 떠오르곤 한다. 그러면 나의 정신적 지주인 언니의 뜨거운 응원이 문득 그리워지곤 한다. 칙칙한 어두운 밤길이 때론 내겐 진한 그리움의 향기를 은근하게 전한다.           


보글보글 청국장


뚝배기 안에 청국장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코를 자극하는 특유의 강한 냄새 때문에 청국장은 기피 음식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우리 가족은 특별한 날 외식 메뉴 일 순위로 선정될 만큼 청국장에 대한 부심이 있다. 청국장의 첫 숟갈에서 그 음식점에 대한 우리 가족의 신랄한 평가가 곧바로 시작된다. 밥심이 절실할 때면 만장일치로 청국장을 외쳤다. 청국장의 강한 냄새는 알콩달콩, 도란도란했던 우리 가족의 고유한 냄새인지도 모르겠다. 소박하지만 늘 진득하고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청국장처럼 우리 가족은 서로를 사랑했다. 

아빠, 엄마에게 전화해봐야겠다. 예전에 우리가 자주 갔던 그 청국장 거리, 아직 그대로냐고... 


이별


어릴 적 학교 앞에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삐약거리는 병아리를 상자 안에 가득 넣어 꼬마들에게 한 마리씩 팔고는 했다. 이 병아리들의 수명은 대부분 고작 며칠이었다. 그래서 병아리가 언젠가는 감당 못할 닭이 될 것이라는 대범한 상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우리끼리는 처음부터 이 병아리들은 병든 아이들이라고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여운 병아리들의 삐약거림 앞에서는 매번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결국은 용돈을 털어 병아리를 사기 일쑤였다. 물론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결론은 뻔했다. 그 녀석은 금방 하늘나라로 갔다. 중간 기억이 다소 흐릿해 그 구간을 여러 번 재생해봤지만 결국 다음 장면은 뒷산으로 옮겨갔다. 나는 겁 없이 혼자 뒷동네 산을 올라가 그 병아리를 묻어줬다. 그러면서 부디 잘 가라고 손 모아 기도까지 했다. 내가 처음 경험한 이별이라면 이별이다. 초등학생이었던 터라 죽음이라는 단어로까지 사고가 확장되지는 못한 듯하다. 


나이가 들면서 원치 않는 크고 작은 이별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점차 무겁게 깨닫는다. 피하고 싶지만 절대 예외가 없는 그런 이별도 포함해서 말이다. 언뜻언뜻 스쳐 지나가는 기억의 파노라마를 따라 난 오늘도 깊은 그리움과 애절함에 사무친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막연한 설렘보다 아름다웠던 과거를 들추며 그 속에 숨겨진 향기를 맡기 위해 오늘도 잔뜩 신경을 곤두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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