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전문기자와 장보기
국제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주요국 채권금리는 폭등하고, 통화들은 연일 추락하고 있습니다. 물론 각국의 주가도 줄줄이 미끄러지고 있습니다.
유로 가치는 20년 만의 최저치, 파운드는 사상 최저치, 엔은 24년 만의 최저치, 역외 위안은 사상 최저치...
다른 자산시장을 제쳐두고 국제 외환시장에서 나타나는 기록들만 나열하기에도 숨이 가쁩니다.
이런 어지러운 여건에서 원화는 13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1440원을 뚫었습니다. 불과 1주 전 환율은 1400원 문턱을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계속 반복하지만 이러한 원화 움직임 어쩔 수 없습니다.
20년 최고치로 오른 전방위적인 달러 강세에 원화라고 뾰족한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특히 대외 의존도가 높은 수출 주도형 경제를 가진 우리나라는 인접국인 일본과 중국 통화가 저렇게 정신없이 추락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어쩔 수 없습니다.
초달러 강세 계속 갈까요? 물론 환율 전망이 가장 고난도라는 말이 있을 만큼 환율 전망은 신의 영역이지만 시장 컨센서스는 적어도 연말까지는 강달러가 지속되는 걸로 형성돼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오늘 유독 이런 발언이 더 눈에 띕니다. 백악관의 국가경제위원장이 한 말입니다.
달러 강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미국 경제의 상대적인 힘을 반영하고 있다.
현재 '킹 달러'에 대해 딱히 불편한 기색이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높은 물가, 다른 나라보다 공격적인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와 강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장기화에 따른 유럽 에너지 위기와 유로존 경기침체와 러시아 핵 사용 위협으로 인한 안보 우려, 미-중 갈등 격화 양상과 중국 경기 둔화 등 복잡 다단한 요인들이 치밀하게 얽혀 지금의 달러 강세 현상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강달러를 유지해 자국의 높은 물가를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달러를 대적할 수 있는 통화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어느 통화가 달러에 비해 그나마 덜 떨어지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지만, 영국 금융시장은 지난주 발표한 대규모 감세정책 때문에 채권금리가 걷잡을 수 없이 폭등하고, 파운드 가치는 폭락하는 등 격랑에 휘말렸습니다. 영국이 선진국 금융시장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말입니다. 영국 정부의 과감한 감세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국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영국은 이미 나라 살림살이가 나빠진 터라 부채비용이 급격하게 증가할 위험이 있습니다. 쿼지 콰탱 영국 재무부 장관은 감세안을 발표하면서 영국 경제의 새로운 시대라고 밝혔지만, 금융시장 불안 측면에서 새로운 시간을 열어버린 꼴이 됐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례적으로 영국의 이러한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영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대상이 특정되지 않은 대규모 재정정책을 실행하는 것을 권장할 수 없고, 무엇보다도 통화정책과 상충돼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면서 말입니다. 물가를 잡기 위해 영란은행은 금리를 올리는 반면 영국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한 감세정책으로 돈을 푼다니요. 언뜻 생각해도 서로 맞지 않는 정책입니다.
영국은 1976년에 선진국 중 처음으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국가입니다. 그래서 IMF의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시장은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원화 전망은 어떻게 되느냐고요?
얘기는 다시 원점입니다. 달러 얘기를 다시 해야 합니다.
다가오는 겨울이 추울수록 달러 강세가 더 심화될 것이라는 웃지 못할 전망이 있습니다.
러시아가 에너지를 이미 무기화한 상황에서 겨울이 추울수록 유럽 에너지 위기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 때문입니다. 이런 데다 최근 위안 약세 압력이 한층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원화 약세 기울기도 함께 가팔라지고 있습니다.
현재 외환시장 내에서도 대외 시장 전개 상황만 쳐다볼 뿐 이렇다 할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예측이 먹히는 시장이 아닙니다.
선진국 통화 가치들이 수십년래 최저치를 기록하는 마당에 원화가 가지 못할 레벨은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대외 시장 반전을 기다리는 것 이외엔 딱히 답이 없어 보입니다. 장기전을 준비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