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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rA May 13. 2023

단절의 방: 시간의 무중력

방으로의 초대

조용히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스위치를 내립니다. 무력함과 고단함의 파도가 끝없이 밀려올 때면 방 한 편에서 눈을 감고 몸을 웅크립니다. 서둘러 단절하지 않으면 죽음과 삶의 간극 속에서 영원히 미아가 될 것만 같아서입니다.


누구나 그렇듯 제 마음 안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습니다.  방마다 벽을 세우고, 문도 만들었습니다. 이 방들 가운데는 문을 활짝 열어둔 사랑방 같은 곳도, 저만의 비밀을 가득 채운 은밀한 방도 있습니다.  비록 닫아두긴 했지만, 안을 살짝 엿볼 수 있게 허락한 방이 있는가 하면 두껍고 차가운 철문을 세워 접근조차 허락하지 않는 방도 있습니다.


많은 문들을 수없이 열고 닫으며 살아가지만,  수시로 절 가두는 방이 하나 있습니다. 제겐 절실한 단절의 방입니다. 명도 짙은 무채색의 이 방에는 이렇다 할 온기조차 없습니다.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지만 방안에서는 밖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비대칭적인 시선이 존재하는 그런 곳입니다.


쫓기듯 이 방 안으로 숨어들 때면 전 감정 스위치를 내린 채 마음을 건조하게 말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의 최종 목적지에 거의 다다른 여기저기 고장 난 차가 저를 덮칠 것만 같아서입니다.


아름답고 고귀한 끝이 있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전에 처절하게 허물어져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도달하기 전에 견뎌야 하는 고단한 시간들이 있습니다. 사그라들기 전까지 자기 몸을 태우는 초는 불이 완전히 꺼지기 전까지 촛농의 무게를 견뎌야 합니다. 누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가와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최소한의 존엄마저 포기해야 하는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이렇게 인생 후반부에서 날카롭게 울리는 인생 시계의 알람을 듣게 될 때면 저는 단절의 방에 틀어박혀 한동안 귀를 막고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감정의 연결선을 끊어버립니다. 감정의 동기화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 몸부림칩니다.      


시간의 중력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립니다. 대단한 반전을 기대한 영화에서 맥 빠진 결론을 미리 알아버린 허망함을 모른 척하기 위해 애씁니다.     


故 이어령 선생이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늙으면 한 방울 이상의 눈물을 흘릴 수 없다네. 노인은 점점 가벼워져서 많은 것을 담을 수 없어. 엉엉 소리 내 울고 피눈물을 흘리는 것도 행복이라네. 늙은이는 기막힌 비극 앞에서도 딱 눈물 한 방울이야.”


비록 눈물 한 방울이지만 제겐 이를 담아낼 자그마한 공간조차 없습니다. 비록 눈물 한 방울이지만 그 안에 응축된 삶의 무게를 감당할 단단한 방을 저는 아직 갖지 못했습니다. 이 세계와의 물리적 단절을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힘겨운 과정을 눈물 한 방울로 이해할 만한 담대한 방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눈을 질끈 감고 못 본 척 도망칩니다. 그러곤 단절의 방으로 숨어듭니다. 지금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감정을 바싹 말린 이후 감정 스위치를 조심스럽게 다시 올립니다. 하지만, 아직 방문은 열지 않았습니다. 시선만 밖을 향합니다.


손을 가지런히 마주 잡고 깡마른 몸을 포갠 채 얕은 숨을 몰아쉬는 작은 한 사람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얼핏 보면 아가가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혼자인 것 같은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저는 방문을 열고 나오려 합니다. 제 것과는 다른 속도로 가는 불규칙한 인생 시계 소리가 다시 들리고, 시간의 중력을 다시 느낍니다. 이 방에서 제대로 나갈 수 있을까요?    


다음 글은 2화. 관찰의 방: 발광

(독립서점 독서관(https://www.instagram.com/dokseogwan/) 일요작가로 연재한 글입니다.)

관찰의 방: 발광(發光)관찰의 방:

 발광(發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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