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rA May 14. 2023

관찰의 방: 발광(發光)

방으로의 초대

멀리 한 사람이 보입니다. 고르지 않은 들숨과 날숨으로 몸이 조금씩 흔들리지 않았다면 정지화면이라 착각할 만큼 그 움직임은 미약합니다.


그의 방문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활짝 열려있습니다. 누구든 들어와 주길 바라는 듯합니다.


그때 알아차렸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단짝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요. 그 손은 참 따뜻합니다. 그는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문이 활짝 열린 그 방으로요. 그의 손을 꼭 잡은 저도 함께 그 방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합니다.


방 안으로 들어간 순간, 미친 듯이 빨리 돌아가는 시곗바늘이 저의 모든 시선을 앗아갑니다. 그러더니 제 인생시계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소중한 구간을 아무렇지 않게 건너뛰며 빨리 감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금방이라도 땅으로 꺼질듯한 몽당한 초가 무거운 공기 흐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겨우 불을 밝히고, 그 옆 산더미처럼 쌓인 초의 눈물이 갑자기 거대한 파도가 되어 절 덮치려 합니다. 단짝의 피부는  시간의 중력에 짓눌려 쭈글쭈글해지고, 영혼의 에너지는 힘없이 녹아내릴 것만 같습니다.


저는 단짝의 손을  뿌리치고 황급히 도망칩니다.  서둘러 다른 마음의 방을 찾아 숨어버립니다. 그곳은 수 백개의 빛이 쏟아지는 극강의 밝음을 발산하는 방입니다. 온기를 품은 채 발광하는 햇빛과는 전혀 다른 냉기를 품은 빛입니다. 반들반들, 반질반질한 벽에 먼지 한 점조차 허락되지 않는 무균 상태의 실험실 같은 이 방에서 저는 병원 음압실 방호복을 입은 의사처럼 두꺼운 보호막을 껴입은 채 무감정 상태를 유지합니다.


닥치는 대로 활활 태울 것 같은 미움, 예리한 칼날 같은 원망, 세찬 파도 앞 허물어지는 모래성 같은 연약한 연민,  무한정 채워질 같은 슬픔의 감정 바이러스에 저는 한동안 감염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방에서 관찰하기로 합니다.  관찰자는 관찰 대상과 동기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해야 합니다.


방문 너머로 다시  그 사람이 보입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확인한 저는 충분한 안도감을 느낀 채 그를 관찰합니다.


사랑하는 단짝과 서로의 인생 교집합을 만들기로 약속한 그때부터 제겐 또 다른 아빠가 생겼습니다. 단짝의 아빠이자 저의 새로운 아빠가 된 그분은 뿌리가 깊고 단단한 나무 같았습니다. 작은 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인한 기운과 부드럽고 은근한 향기는 독보적이었습니다. 지혜의 흔적들을 나무 곳곳에 새겨두었지만,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값진 거름을 바라신 적이 없습니다. 자연이 주는 빛과 물, 공기만으로 충분하다고 하셨습니다. 철저하게 이기적인 제가 단짝을 사랑하게 된 이유도 그가 그런 나무를 쏙 빼닮아서였습니다.


단짝과 함께 우리의 시간을 만들기 시작한 때부터 우리 공간에는 항상 아빠가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빨리 보호자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했던 착한 단짝의 결정을 저는 착한 척하며 존중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맘 속에 방 하나를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물리적인 것 이상의 감정의 공유를 허용해야 했기에 오롯이 저 만의 방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엔 그 방을 거의 열어뒀고, 제가 만든 온기와 아빠가 불어넣은 온기로 그 방은 온실처럼 훈훈한 온도와 쾌적한 습도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그 방은 점점 서늘해졌습니다. 제가 방문을 자주 닫아버렸으니까요. 조건 없이 내리쬐는 따스한 빛이 고맙다가도 어느샌가 불편해졌습니다. 그러다 점차 그 빛이 희미해지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한 때부터 그 빛은 더욱 불편해졌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아예 빛이 들지 않게 방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 빛으로부터 단절되기를 원했습니다. 그 빛이 저를 따뜻하게 감싸기보다는 오히려 그 빛 때문에 제가 싸늘하게 무기력해지고 있었으니까요. 아무리 강한 생명의 빛이라도 결국 꺼져야 한다는 뻔한  진리를 너무 빨리 알아버린 게 억울하고 억울했습니다.


제 나름대로 인생의 답을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시험을 치르고 있는데 누가 슬쩍 건네준 답지에서 답이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 같은 허탈함이라면 맞을까요?  산뜻하고 신나는 제 인생 리듬이 아빠의 불규칙하고 무거운 박자에 엉켜버리는 단순한 짜증이 어느새 미움을 넘어 죄책감으로 번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빠의 빛을 차단하고 저만의 불을 환히 밝힌 방에 수시로 숨어듭니다. 그러면서 아빠의 시간을 객관적으로 바라봅니다.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라는 것을요. 아빠는 제가 한 발 떨어져 당신을 관찰하고 있는 것을 허용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절 향한 방문은 언제나 활짝 열어두셨습니다. 본인 만의 온기를 전하려 애쓰면서요.


시간이 갈수록 과장될 정도로 방 안을 환하게 밝히며 오늘도 저는 아빠와의 단절을 선택한 채 아빠를 관찰합니다. 감정의 보호막을 칭칭 감은 채로 말입니다.  


잠깐, 아빠의 소리가 들립니다.  왜일까요? 발광하는 이 방을 잠시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글은 3화. 무경계: 이방인의 흔적

(독립서점 독서관(https://www.instagram.com/dokseogwan/) 일요작가로 연재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절의 방: 시간의 무중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