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행복해야 하는가?

「행복의 기원」, 「행복 스트레스」를 읽고

by 좋아유쌤

0. 시작


"삶의 목표가 뭐니?"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고등학교 윤리 시간이었다.


".. 행복하게 사는 거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그게 끝이니?"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한 건 선생님은 아쉬워했다. 나도 속으로는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행복하게 사는 게 삶의 목표라니.. 뭔가 부족해 보였다. 인생의 목표인데 조금 더 거창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을 이롭게 하거나 하는 그런 거 말이다. 행복한 삶은 왠지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목표인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행복한 삶이 어떤 삶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행복한 삶은 어떤 삶인가? 이 질문에 나는 답하지 못했다. 행복한 삶이 목표인데 어떤 삶이 행복한지를 모르다니..


당시 입시에 휘둘리며 행복에 대한 깊은 생각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은 누구보다 컸다. 또한 행복한 삶이 뭘까,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궁금증도 계속해서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행복에 대해 공부하고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됐다. 열정대학 행복학과를 통해서다.


그리고 이제는 행복이 뭔지, 내게 있어 행복한 삶이란 뭔지 어느 정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내용과 과정을 이 글에 풀어 보려 한다.



1. 행복을 찾아서


나는 행복에 참 관심이 많았다. 행복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관련 책들을 읽고 영상도 찾아봤다. 다행히 이런 나의 수요를 채워줄 행복 상인들이 꽤 많았다. 그들은 비슷한 얘기를 했다. 하루하루 감사하기(잠들기 전 세 가지 감사한 점을 일기로 써보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늘 웃기 등이 그랬다.


나는 적극적으로 실천했다. 날마다 블로그에 감사일기를 썼고, 고백했다 차여도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려 했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행복은 잠깐이었다. 어느새 감사한 일이 떠오르지 않아 억지로 짜내는 나를 발견했고, 고백했다 차인 건 끔찍한 고통이었다. 행복의 핵심은 뭔가 다른 데 있는 것 같았다.



2. 행복 스트레스


행복 상인들의 방법에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내가 행복해야 하지? 도대체 행복이 뭐 길래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거야? 뭔가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감, 행복 스트레스가 느껴진다.


행복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는 지금 행복이 최고의 가치인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보기엔 돈보다 더 하다. 돈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답하기 때문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행복 지침서들, 행복을 비는 노래 가사들 모두가 "행복해야 해!"라고 외친다. 행복하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처럼 느껴진다.



3.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해야 한다면, 행복한 건 어떤 느낌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행복이란 정말 커다란 추상 명사다. 누구는 즐거운 느낌, 누구는 무언가를 성취한 느낌, 누구는 쾌락 등을 이야기한다. "이거다!"라고 정의하기 힘든 개념이다. 따라서 자신만의 행복을 정의해야 한다. 그래야 이 행복 지상주의에서 자신만의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다.


행복은 생각인가, 감정인가?


행복을 정의할 때 우선으로 던져야 할 질문이다. 행복을 '생각'으로 정의하는 사람은,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곧 생각하기에 따라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 행복을 '감정'으로 정의하는 사람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감정은 내 의지대로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행복을 감정으로 정의한다. 행복은 마음먹는다고 오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글을 이어나갈 것이다.


감정은 그 종류가 너무 다양하다. 즐거움, 기쁨, 슬픔, 분노 등등. 그런데 가만히 보면 감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좋은 감정과 안 좋은 감정. 그리고 이게 곧 행복과 불행이다. 즐거움, 기쁨 등의 좋은 감정은 행복이고 슬픔, 분노 등의 안 좋은 감정은 불행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감정은 행복과 불행으로 나눌 수 있고, 행복은 그중 좋은 감정이다. 이게 내가 정의하는 행복의 본질이다. 왜냐하면 '좋은 감정'이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의 공통 요소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집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잠자리에 드는 것'을, 어떤 사람은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것'을,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을 행복이라 말한다. 너무나 다양하다. 하지만 그때 느끼는 감정은 모두 좋은 감정이다. 우리가 '행복하자'라고 하는 말은 '좋은 감정을 느끼며 살자'라고 바꿀 수 있다.



4. 언제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는가?


행복이 감정이라면 우리는 언제 행복을 느끼는가?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언제 행복을 느끼는지 안다면 그 상황을 자주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잠시 인간이라는 동물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흔히 우리가 동물과 다른 점으로 '의식'을 뽑는다. 우리는 동물과 달리 생각하고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있다.


20대 딸은 아버지와 어떨 때 통화를 자주 할까? 언뜻 보면 딸의 의지에 달려 보인다. 딸이 통화를 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하는 거다. 그런데 의외의 변수가 있었다. 바로 가임기다. 가임기인 20대 딸의 통화시간은, 그렇지 않을 때에 비해 유의미한 수치로 떨어졌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에는 의지 말고도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걸 증명하는 연구결과다.


우리는 뇌를 통해 생각과 행동을 한다. 그렇다면 뇌는 어떠한 방향으로 우리를 움직일까? 놀랍게도 생존과 번식이다. 아니 생존과 번식은 동물에게나 어울릴법한 말이 아닌가?! 사실 인간도 지능이 매우 뛰어난 동물일 뿐이다.


현 인류가 침팬지에게 갈라져 나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기간을 1년이라고 하자. 그러면 인류가 오늘날처럼 문명을 이루고 산 기간은 얼마나 될까? 2시간이다. 문명사회 전 동물처럼 생존경쟁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기간이 364일 22시간이라는 말이다. 우리 뇌는 이러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인류의 생존 매뉴얼을 가지고 있다. 뇌는 우리를 본능적으로 생존에 유리하도록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만든다.


다시 딸과 아버지의 사례로 돌아가자. 근친상간은 동물의 생존과 번식에 있어서 악(惡)이었다.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자식은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 일찍 죽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친상간을 하는 동물은 생존경쟁에서 탈락하고, 그 결과 근친상간을 멀리하는 동물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인간도 이런 생존경쟁을 거쳤고, 그 결과 우리 뇌는 본능적으로 근친상간을 멀리한다. 20대 딸과 아버지의 통화 시간 연구가 이를 반영한다. 가임기에 본능적으로 아버지를 멀리하는 것이다.


지금 나는 언제 행복이란 감정을 느끼는지 글을 쓰는 중이다. 지금까지 생존과 번식을 길게 이야기한 이유는, 행복이 생존 및 번식과 밀접한 연결고리를 가지기 때문이다.


행복은 감정이다. 그리고 우리 뇌는 생존경쟁에 유리하도록 감정을 느낀다. 그 이유는 그런 뇌를 가진 인류가 생존경쟁에서 유리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뇌는 364일 22시간 동안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생존기계다. 요컨대 행복은 생존경쟁에 유리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왜 그럴까? 음식을 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똥맛을 느끼는 사람은 먹는 걸 피했을 것이고, 곧 영양실조로 죽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 행복하다. 왜 그럴까? 사랑을 통해 번식을 해야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할 때 유격체조의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번식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 사람의 유전자는 곧 사라질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뇌는 생존경쟁에 유리한 행동을 할 때 '행복'이라는 당근을 주어 우리를 행동하게 한다.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보자. 우리는 배고플 때 힘이 없고 고통스럽다. 즉 불행을 느낀다. 왜 그럴까? 음식을 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배고플 때 쾌감을 느끼는 사람은 계속해서 음식을 먹지 않고 곧 영양실조로 죽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 뇌는 생존경쟁에 불리한 행동을 할 때, '불행'이라는 채찍을 주어 경고한다.


이에 따르면 우리의 '상식'이 틀렸다는 말이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 행복한 것이다.



5. 언제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가?


행복은 생존경쟁에 유리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생존기계인 뇌가 보내는 당근이다. 그렇다면 뇌는 언제 가장 큰 당근을 보낼까? 우리는 언제 가장 큰 행복을 느낄까?


바로 사람이다. 우리는 사람과 함께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지금 눈을 감고 가만히 곱씹어 보자. 언제 가장 행복했는가? 대부분 좋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경험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불행한 때는 언제인가? 역시 사람이다. 우리는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 괴로워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 죽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는 외로움이라는 고통을 느낀다. 불행의 원천도 사람이다.


왜 사람인가? 이제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인류의 생존경쟁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먼 옛날 자연에서 동물과 생존경쟁할 때를 떠올려보자. 호모 사피엔스에겐 무엇이 있었는가? 날카로운 이빨? 큰 덩치? 빠른 다리? 하나도 없다. 대신 사회성이 있었다. 사람을 모으고, 힘을 합치고, 무리를 만들어 싸웠다. 사람과 잘 어울리는 사람은 힘이 약해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면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힘이 세도 홀로 사자에 맞서다 죽어갔다.


오늘날 수많은 행복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행복 요소가 있다. 바로 외향성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은 내향적인 사람에 비해 행복지수가 높다. 외향성은 타고나는 유전적 성격이다. 노력한다고 쉽게 바뀌지 않는다. 실제 외향성이 행복을 이루는 요수 가운데 약 50%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는 굉장히 큰 수치이다. 외향성 하나가 다른 모든 요소를 합친 것과 맞먹기 때문이다. 아무리 감사 일기를 쓰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웃으려 노력해도 쉽게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행복은 유전이 50%다.



6. 행복한 삶을 넘어서


나는 행복한 삶이 목표였다. 행복한 삶이 좋은 삶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우선 도덕적 의문이 있다. 남들이 불행해도 나만 행복하다면 그게 좋은 삶일까? 나의 행복을 위해 남들이 불행해야 한다면, 그것 역시 좋은 삶이라 할 수 없다.


이런 생각도 든다. 행복이 좋은 것이면, 불행은 나쁜 것일까?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예를 들어 배고픔. 배고픔은 분명 불행이다. 하지만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면 우리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그러면 굶어 죽을 것이다. 이별 뒤 슬픔. 슬픔은 분명 불행이지만, 슬픔을 느끼지 않고서는 상대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을까. 여기서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떠올려 본다. 영화에서 '슬픔이'는 정말 왜 존재하는 걸까 계속 의문이 들었지만 결국 '슬픔이' 덕분에 주인공은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런 생각도 해 봤다. 행복이 삶의 목표라면, 언제 행복을 느낄 것인가? 지금 행복을 느낄 수 있는데 괜히 목표라는 이유로 멀리 생각하는 건 아닐까? 또 만일 행복을 느낀다면 삶의 목표는 사라지는 걸까?


무엇보다 행복은 감정이다. 그것도 유전이 50%다. 요컨대 내 뜻대로 느끼기 쉽지 않다. 내 삶은 내 의지대로, 내 노력대로 이루어나가고 싶다. 삶의 주인으로서.


그렇다면 어떤 삶을 목표로 해야 할까? 나는 행복한 삶을 넘어서 만족하는 삶을 말하고 싶다. 만족하는 삶이란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며 만족하는 삶이다.


행복과 만족이 뭐가 다를까? 선택의 여부다. 행복은 선택할 수 없다. 상황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반면 만족은 선택할 수 있다.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말이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 윤봉길 의사가 일왕 생일잔치 때 폭탄을 던지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폭탄을 던지기 직전, 그의 감정은 어땠을까? 행복보다는 불행을 느꼈을 것이다. 폭탄을 던짐으로써 자신이 사형당할 확률도,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고문당할 확률도 높기 때문이다. 슬프고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조국 독립이라는 자신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만족'하지 않았을까? 불행함을 느끼지만 자신의 선택에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이다.


너무 극단적인가? 일상에서 찾아보자. 운동이 떠오른다. 운동할 때는 분명 힘들다. 힘들다는 감정은 행복보다는 불행에 가깝다. 하지만 건강이나 좋은 몸이라는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만족할 수 있다. 힘들지만 만족한다.


물론 행복하면서 만족하면 가장 좋다. 운동하면서 힘든 감정보다, 즐거운 감정을 느끼고 만족까지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다만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잘못된 삶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행복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7. 어떻게 만족할 것인가


행복보다 만족을 추구해야 한다면, 어떻게 만족할 것인가? 당연히 가져야 할 질문이다. 나는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만족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행복의 관점에서 얘기하면 사람을 향한 가치를 말하고 싶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사람 사이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당장 자신의 주변 사람들부터 바라보자. 그리고 차츰 사회로 향하는 거다.


행복은 유전이 50이지만, 이는 바꿔 말하면 나머지 50%는 노력으로 채울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 노력이 주변 사람들, 사회를 향한다면 우리는 행복도 느끼고 만족도 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0. 마치며


나는 지난 죽음부터 지금의 행복까지,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글을 읽으며 몇몇 분들은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가치를 추구하는 건데? 구체적인 방법이 뭐야?"라고 물을 수 있다. 그 구체적인 방안이 앞으로 쓸 연재의 주제가 될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가치들이 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세상에 따라 추구하는 가치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당장 과거에는 '충효'가 최고의 가치였지만, 지금은 '행복과 돈'을 좇는 것처럼.


따라서 다음 주제는 우리가 사는 세상(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언제, 어디서 살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현대사회의 핵심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뽑았다. 그리고 그중 민주주의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려 한다.




[참고한 책]


1. 행복의 기원

저자 서은국

출판 21세기 북스

발매 2014.05.22.


2. 행복 스트레스

저자 탁석산

출판 창비

발매 201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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