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요정의 백수인생』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뎌하는 내가 오랜 기간 백수로 지내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멘탈을 유지하고 있는 건,
일은 안 해도 엄마로서 할 일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백수면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게 정석(?)인데, 엄마니까 그럴 수 없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아침 준비하고, 전날 씻어놓은 식판과 물병을 챙긴다.
이직요정 주니어 늦지 않게 깨워서 아침 먹이고 조잘조잘 수다를 떨며 학교까지 함께 걸어간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쌓인 집안일을 하나씩 처리한다. 설거지, 청소, 빨래 등등.
어차피 청소는 청소기가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하지만, 작동은 내가 시켜야 하는 거니까, 이것도 꽤 신경 쓰이는 일이다. 게다가 청소를 방바닥만 하나. 화장실도 해야 하고, 주방도 해야 하고, 세탁실도 해야 한다. 아, 그렇다고 매일 이렇게 하는 건 아니다.
그러고 나서는 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그나마 학기 중에는 점심 준비는 안 해도 돼서 한숨 돌린다. 매일, 매 끼니마다 해야 하는 "오늘 뭐 먹지"가 은근 골치 아프다.
밥은 뭐 밥통에서 그냥 나오나, 필요한 식재료도 그때그때 구입해야 한다.
외국에선 한국 식재료가 비싸다. 그래도 자식이 한식을 좋아하면? 해줘야지 어쩌겠나.
김치도 사 먹기는 비싸서 주기별로 직접 담가먹는다. 소소하게 배추김치, 깍두기, 파김치 정도.
함박스테이크도 다진 고기 사다가 직접 만든다. 여러 개 미리 만들어 놓고 냉동실에 넣어놨다가 먹고 싶을 때 꺼내서 데워 먹으면 시간 절약되고 좋다.
갈비찜, 생선조림, 갈비탕, 육개장, 마파두부, 떡볶이, 카레 정도는 이제 눈 감고도 만든다.
요즘 순대가 먹고 싶다고 하는데, 등골이 서늘하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보면 어느새 학교에 데리러 갈 시간이다.
데려와서 저녁먹이고 숙제 봐주고, 남은 할 일 스스로 하는 동안 나는 저녁 먹은 거 치우고, 알림장에 학부모 사인까지 하고 나면 아주 녹초가 되어있다.
씻고 나오면 이젠 잘 시간. 아침 메뉴까지 결정해 놔야 맘 편히 잠들 수 있다.
백수인데 뭐가 이렇게 바쁜 거야.
앞으로 누가 뭐 하냐고 물어보면 '놀아요'가 아니라 '엄마 합니다'라고 해야겠다.
이상 백수 엄마의 변명이었습니다 ^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