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초면 상담이 시작된다. 코로나 때는 비대면으로 통화를 해야 했지만, 대면이 허락된 후부터는 학교에 뵙고 있다. 휴가를 내기 쉽지 않기에 4학년 첫째와 3학년 둘째 면담을 같은 날로 잡았다.
초등학교는 명칭만 바뀌었을 뿐, 내가 다니던 30년 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감시하기 쉬운 감옥소와 흡사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복도에 들어설 때면, 차가운 시멘트 바닥이 으스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학교를 열심히 다녔던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열심히 무탈하게 다녀주었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든다. 공부도 마찬가지. 나는 왜 그리 공부에 목매달았던가 후회가 되지만, 아이들은 열심히 해주었으면 한다.
첫째 선생님은 통통 튀는 매력을 가지신 분이셨다. 운동을 즐겨하신다는 말처럼 에너지와 활력이 넘치셨고 이미 밴드에 아이들의 사진으로 도배를 해주시고 매일 알림장을 20줄 이상씩 남겨주시곤 했는데, 역시 할 말이 넘쳤다. 아이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셔서, 신학기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알고 계시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15분이라는 상담시간이 어느새 후딱 지나가버렸고 아쉬움을 감춘 채 교실을 나섰다.
둘째 선생님은 차분하시고 침착하시면서 전형적인 교사분이셨다. 아이들의 사진은 딱 한 장 남겨주셨고 알림장에 댓글기능은 막아두셨다. 선생님은 나처럼 상처받기 싫으시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도 댓글에 상처받기 싫어서, 무플이 싫어서 브런치에 댓글기능을 차단해 놓는데,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선생님을 뵙고 나니, 참하기 그지없고 너무나도 곱고 차근한 말투에 감탄했다. 선생님께서는 둘째의 성격을 정반대로 파악하셔서, 둘째가 학교에서는 나름 사회생활이랍시고 연기를 하고 있구나, 피식 웃었다.
두 분의 선생님을 보면서, 성향이 참 다르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선생님 두 분을 비교하고 평가하고 있었다. 어떤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일까?
문득 사진첩을 뒤지다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좋아했던 선생님이 떠올랐다. 둘째의 1학년때 선생님이셨는데, 입학한 날부터 아이들의 사진을 100장 정도씩 찍어 올려주셨다. 아이들에게 생일 때마다 사랑의 알약이라며 손수 포장하신 초콜릿과 사탕을 주셨고 학습지도에도 열정이셨다. 그에 반해, 댓글기능도 막아두고 한 달에 사진을 10장 안팎으로 올려주셨던 2학년 때 담임은, 결국 중간에 개인사정이라면서 휴직에 들어가셨다.
사진을 많이 찍어주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일까, 아이들이 예뻐 보여서 사진 찍어주다 사진을 많이 남기게 되는 것일까, 사진으로 선생님을 판단하는 건 무리겠지만, 사진과 댓글은 하나의 척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소통하려 노력하는 선생님과 소통의 수단조차 차단하는 선생님은 아이들과 학부모를 대하는 태도부터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학부모 입장에서는, 다른 건 필요 없다. 왕따나 학폭 같은 문제없이, 무난하게 한 해를 잘 보냈으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애써주시는 선생님이시기만 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