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복직하였더니 '블라인드'라는 어플이 회사에서 큰 소통창구역할을 하고 있었다. 1년 동안 블라인드를 깔았다 지웠다 하면서 느낀 점은, 블라인드가 블라인드가 아니란 사실이다. 블라인드에 하소연한 것들은 회사에서 실현이 되었다. 예를 들어,
-인사발령 일정을 공지해 주세요. 매년 언제 발표 날지 몰라서 연초 되면 일이 손에 안 잡혀요(이 글 이후, 게시판에 인사발령일을 공지함; 이례적임)
-승진인사 발표 빨리해 주세요(예상일보다 빠른 오픈)
-모부장이 이사자리 간다더라, 사장이랑 친하다고 모부장을 그 자리에 앉히는 게 말이 되니? (모부장은 결국 이사가 못 되었음)
-모팀장이 인턴 여직원 성추행했다더라(이 글 이후, 징계위원회 소집됨)
블라인드에 글을 올리면, 인사부나 감사부에서 실시간 모니터링 하는 게 느껴졌고(고위직의 성추행 피해자가 올린, 또 다른 피해자를 찾는 글은 신고 당해 삭제됨, 인사 관련 건의사항들은 많이 반영이 됨)
특히 고위직들이 많이 보는 것 같았다(우리 부서의 문제점을 누가 블라인드에 올렸는데, 부장이 이사실을 블라인드에서 읽고 분노하였다고 함).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불만이나 하소연은 해소되기도 하고 회사에 반영되기도 하는 것 같아 글 두 개를 올렸다.
승진 인사 관련제도를 바꿔보자는 글을 올렸더니 이런 댓글이 달렸다. (그런 생각할 시간에, 니 능력을 키워 인정받을 생각을 해라, 일머리 없으니 승진 못한 거지 등등) 맞는 말인데, 댓글을 읽고 있자니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꽉 막힌 듯한 답답함과 치욕스러움을 느꼈다. 승진하면 능력자, 승진 못하면 찌질이 되는 서러운 세상.
워킹맘의 고충과 출산 및 육아 관련제도가 우리 회사는 여전히 후진적이라고 썼을 땐,
-일할 생각은 안 하고, 놀 생각만 한다,
-애 키우는 게 벼슬이냐,
-좋은 제안을 하면 됐지, 회사 제도가 후진적이라고 까는 쓰니님 인성은 쓰레기
등등의 댓글이 달렸다. 자극적이긴 해도 회사 내 사람들의 인식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들 생각하니, 육아 관련 좋은 제도들이 못 나오는구나. 우리나라의 저출산이 이해되었다.
블라인드에서 읽은 내용을 현실에서 말하면 구세대라고 한다.
말 그대로 blind인데 촌스럽게 "어제 블라 봤어?"라고 말하면, MZ들이 인상을 찌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