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에서 떨어진 자의 비겁한 변명

회사는 열심히 한 나를 몰라줘

by 잡초

나는 입사하고 단 한 번도 승진을 못했는데, 고졸 출신 후배들도 이번에 나보다 높은 직급으로 승진했고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팀 내 기획을 맡은 후배 A를 이번에 승진시켜 줄 거라고 팀장한테 여름부터 들었기에, 마음을 접었었다. 하지만 막상 승진자 명부를 받아보니, 나보다 후배인 데다 육아휴직 후 복직도 나보다 늦었던 B가 A를 제치고 이번에 승진을 했다. 이 부서에서 내가 안되면 그 후배가 될 것 같다고 내심 생각했었고, 같은 워킹맘이 승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현실이 되고 보니, 나를 B와 비교하는 주위 시선들이 따갑다.


-잡초과장님은 육아휴직 전 몇 년 근무했어요? B는 아이 둘 낳고 4년밖에 안 쉬어서 실근무년수가 잡초과장보다 많아요

-B가 업무는 별로야

-B는 자기도 될 줄 몰랐대

-복직한지 1년만에 승진시켜 주는 게 말이나 돼? 거기다가 이번엔 동일점수대면, 다자녀에 가산점 줬다며? 그건 말이 안되지

-잡초과장은 내년에는 꼭 될 거야


기껏 하는 위로가 이런 말들이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육아휴직 기간도 근속기간에 포함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 실근무년수를 따지는 건 잘못이야! 라고 앞에선 말하지 못했다. 그들의 아무 말 대잔치에 속만 끓이다 며칠째 불면으로 밤을 지새우는 중이다.

B는 복직 후 담당 팀장에게 매일 혼났지만 결국 B의 팀장은 고과는 챙겨줬다.

나는 담당팀장이 일을 잘하고 있고 매우 성실하다고 남들 앞에선 칭찬해 줬지만 나보다 9년 후배 남자를 밀어주느라 내 고과는 바닥에 깔았다.



분노할 시간에 자격증 공부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 회사에 정답이 있는 걸까.


대학 나오면 뭘하나, 고졸 후배들이 먼저 승진하는 마당에. 그들은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할까. 아이셋 낳으며 내 손으로 아이키우고 싶다고 육아휴직 쓸 땐 승진에서 밀릴거란 거 생각도 못한거 아니잖아. 자업자득이면서 이제와서 왜이래? 자승자박이면서 뭘 바라는 거야! 다 가지길 원하는 거야? 마음 한켠에선 정신차리라고 스스로 다그치지만 솔직한 내마음은,


열라 쪽팔린다.


승진에 미련을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입사 17년 차에 단 한 번의 승진도 안 시켜주는 회사에 충성해야 하는 걸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회사일에 무엇을 바라서 육아시간도 눈치보며 쓰고 여름휴가도 반납하고 일만 하고 아파도 출근해서 맡은 일 척척 해낸 걸까.


탈출은 지능순, 이라고 되뇌어 본다.

탈출구를 모색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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