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 남기고 간 한마디

by 잡초

회사에서 인사발령이 났다. 우리 팀에서 승진인사가 아무도 없었기에 사무실 분위기가 냉랭한 가운데, 원하던 부서로 가시게 된 팀장님만 싱글벙글이셨다.

직설적인 말투로 팀원들과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했던 팀장님이셨지만, 악한 의도로 던지는 말이 아니란 걸 알았던 나는, 팀장님이 팀원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아이 셋 인 나에게, 아이들 먹이라며 치킨이며 케이크, 빵 등을 가끔씩 주시기도 하셨고 직원들에게 커피도 종종 사주시던 마음은 따뜻한 분이셨는데 쏘는 듯한 말투로 사람들의 오해를 사곤 했다.

지난달 팀장님과 서너 번 점심을 같이 먹었다. 그때본인의 팀원들에 대한 서운한 속마음을 털어놓으시고 자신의 고쳐야 할 점에 대해 솔직히 얘기해 달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고 내가 그토록 앉고 싶어 하는 저 자리도 마음 편한 곳은 아니구나 싶었다.

일적으로 깔끔하시고 업무경험이 많으셔서 민원인 응대도 잘해주시고 업무방향도 잘 잡아주셔서 존경했던 분이 다른 부서로 가신다니 못내 서운하였다. 혹시라도 지난번 식사 때처럼 속마음을 털어놓으실까 싶은 기대를 살짝 가지고서, 마지막 식사를 청했다. 나 말고도 팀장님이랑 식사하고 싶은 팀원이 있으면 팀점심을 할까 했지만 마지막 날인데도 나 이외엔 팀장과 아무도 점심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팀장님께서 작년 여름부터 A와 B를 승진인사로 밀어주신다고 하셔서 그 이후에 승진에 대한 마음을 접었노라고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그러신 지, 떠나는 팀이라 그러신 지, 더 이상 팀원들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으셨다. 대신 회사 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얘기만 하셨다. 내가 회사를 떠나 있었던 십 년 동안 어떤 이는 높이 올라갔고 어떤 이는 기대만큼 못 올라갔고. 일에 대한 실력도 중요하지만 성격이 사람들의 뇌리에 꽂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C는 주머니 사정이 빈약하여 출장을 자주 다닌다, D는 자기에게 딱 주어진 일만큼만 처리하는데 그 마저도 본인에게 손해가 끼치지 않을 정도로 선을 긋는다, F는 이기적이다, G는 손해 보려 하지 않는다, H는 부하직원에게 싫은 소리 해서 송사에 휘말린 적이 있다 등등.

회사사람에게 속내를 내비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팀장님의 말씀을 비밀에 부쳐야지 하겠다고 혼자 다짐한다. 문득 팀장님의 눈에 나는 어떤 인간으로 비쳐질지 궁금해진다.


"제가 부족한 점이나, 회사생활에서 고쳐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입술에서 맴돌았지만 끝내 내뱉지는 못했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열고나면 내가 너무 상처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팀장님이 나에게 본인의 역할에 대해 질문했을 때, 나 또한 내가 생각한 그대로 말씀드리긴 어려웠다. 스스로 느낄 거라 생각했고 내가 생각하는 게 답이 아닐 수도 있는데 혹여나 상처받는 건 아닐까 싶었기 때문에, '좋은 팀장님'이라고만 말씀드렸다. 다만 말투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같다고만 넌지시 말했는데 별 반응은 없으셨다.


이전 팀장님들과는 다르게,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셨고, 일을 못할 땐 '규정 찾아봐라, 법규 찾아봐라, 공부 좀 해라'라고 째려보며 말씀하셨지만, 그 덕에 일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내 고과는 바닥으로 주셨지만 배울 점이 많았고 나도 열심히 공부하며 일을 해서 팀장님처럼 업무 배테랑이 되고 싶다는 존경심도 생겼다.

팀장님의 마지막 한 마디.

"본사로 가세요, 여기서는 부장들 눈에 들 수가 없어요. 아는 사람이 많아야 승진도 하고 회사에서 인정받을 수 있어요. 기획일을 안 해봤더라도 본사 가면 다 할 수 있어요. 잘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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