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회사의 특징
대학원 시절, 나의 첫 직장이 될 회사의 채용설명회에 참석했다. 그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다.
"이 회사는 군대 문화라던데.., 정말인가요?"
조선해양 중심의 '중공업' 회사여서 그런지 유독 '남자 회사'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어지는 인사 담당자의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군대가.., 나쁜가요?"
싱가포르 생활 - 업무 편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문화와 비효율적인 빈번한 야근 등은 한국 기업의 나쁜 모습으로 거론된다. 최근 트렌드로 인해 분위기가 빠르게 바뀌고 있고 나 또한 토종기업의 대표 격인 전 직장을 다닐 때 큰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지만(직장상사 성향이나 부서 분위기에 의존할 것이다) 여전히 한국 특유의 꼰대 문화가 남아있는 회사도 있을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해외취업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외국계기업(외국 회사의 한국법인) 또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주변을 보면 한번 외국계회사에 몸담은 직장인들은 토종회사로 넘어가지 않는 경향이 있고, 나 또한 현재 외국계회사에 큰 문제없이 다니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외국계회사가 마냥 좋아보일 수도 있는데, 무조건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언제나 그렇듯 토종기업과 외국계기업은 장단점을 파악하고 개개인의 성향에 맞는 옵션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 문화는 본사의 분위기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내가 일하는 회사의 본사가 있는 곳은 덴마크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 덴마크는, 전반적으로 경쟁이 과도하지 않으며 개개인의 의견이 존중되는 수평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업무상 만났던 동료들 대부분은 나이스했다. 그러나 가까이서 지켜본 바에 따르면 덴마크인들 또한 업무적으로 상하관계는 확실하더라. (바이킹 족의 후예라는 점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다) 업무 외적으로 직장상사의 권력을 남용하진 않지만 '보스'는 '보스'다. 최소한 업무적인 지시는 철저히 따라야 한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덴마크는 기업 입장에서 가장 해고가 쉬운 국가라고 한다. (Flexicurity 라는 제도에 따르면 덴마크에서는 고용 및 해고가 쉬운데 복지시스템 덕분에 개개인이 고용불안을 걱정하진 않아도 된다) 아직까지 회사로부터 해고의 위협(?!)을 받지는 않았지만 언제든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다고 각오는 하고 있다.
내가 일하는 회사는 덴마크 기업이지만 2015년 미국의 반도체 장비회사에 인수되었다. 인수 초기에는 회사의 주인인 미국 모기업에서 일절 간섭하지 않았지만 매출 성장이 둔화되면서 갈수록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주주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높은 매출 목표치(Target)를 푸쉬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각종 보고서를 요구한다. 실적 예상치(Forecast) 또한 아주 중요시하는데, 주주들은 서프라이즈를 싫어한다더라. 아마 예상실적과 실제 매출을 일치시키는 것이 시장을 잘 이해하고 회사를 잘 경영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 같다. 회사에서는 실적을 달성을 관리하기 위한 체계적인 전략 툴(임직원으로서 체계적으로 쪼는 '방법론'으로 다가옴)을 제공하는데, 이것이 효과적인 방법임을 부정하긴 어렵다. 다만, 회사 주인이 미국 주주들이라면 실적에 대한 압박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일하던 싱가포르 사무실에서는 중국과 인도를 제외한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국가들을 관리하였다. 아시아 지역 매출이 급성장하면서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를 관리하는 지역과 한국, 일본, 대만을 관리하는 동북아시아(North East Asia) 지역으로 분리하였다. 동북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는 일본인 지사장(General Manager)을 고용하였는데, 이분이 나의 직속상사였다. 흔히 보스가 내 업무 분야를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간섭이 덜해 편하다고들 한다. 또한 보스와 자주 만나지 않으면 편하다는 말도 있다. 내 보스는 이 두가지를 모두 충족시켰다. 일본인 지사장은 영업이 메인이다보니 기술 분야에 대해 상세히 이해하기는 어려웠고, 일본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그렇게 자주 볼 수 없었다. 직속상사를 존경하고 좋아할 수 있지만 어느정도 불편한 부분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일본인 지사장과 워낙 잘 맞았던 부분도 있지만, 여러 모로 이 시기가 참 편했다.
개인적으로 외국계기업에서 일하는 가장 큰 장점으로 글로벌한 업무 환경을 꼽고 싶다. 당시 동북아시아 지역 팀원들이 같이 모여 회의할 기회도 많았다. 이 시기에는 일본이나 대만으로 해외출장이 잦았는데 사케 공장 투어, 벚꽃 구경 등의 액티비티나 고급진 음식을 즐기며 단합을 다지곤 했다. (모든 외국계기업이 그렇진 않겠지만 해외출장 뿐만 아니라 해외근무 기회가 있을 수 있는데 이는 추후 다룰 예정이다)
특히 동북아시아 지역의 한국, 일본, 대만에는 엔지니어가 한 명씩 있었는데 메신저를 통해 궁금한 사항을 서로 물어보거나 바쁠 때에는 서로 업무를 지원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초기 멤버이다보니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에피소드도 생기고 '우정' 같은 각별함이 있다.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2020년에는 한국이 별도의 지역으로 분리되었는데 외국 동료들을 만날 기회가 줄어든 점은 아쉽다.
구직자들에게 있어 외국계기업의 가장 큰 매력은 처우 대비 입사가 수월한 점이 아닐까 싶다. 잡코리아 통계에 따르면 가장 취업하고 싶은 외국계기업은 구글, 넷플릭스, 애플 순이라고 한다.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이런 회사들은 뽑는 인원도 적고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국내 어떤 기업 보다도 취업이 어려울 것이다. 이런 핫하디 핫한 회사들 말고 잘 알려지지 않은 알짜배기 회사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일반적으로 국내 대기업에 비해 취업 문턱이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 때문에 많은 구직자로부터 외국계기업은 고려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나도 새로운 엔지니어를 고용할 때 훌륭한 경력을 갖추었지만 영어때문에 포기하는 분들을 목격한 적이 있다. 직무에 따라 다르겠지만 외국인 동료들과 의사소통을 주고 받아야 하며 대부분의 회사 자료들이 영문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일정수준 이상의 영어 실력은 필요한 것 같다. 그렇다고 본토 발음을 구사하는 유창한 영어실력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외국계기업에서 일하는 분들을 보면 (일부 예외는 있겠지만) 압도적인 어학능력을 구사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영어 울렁증이 있다면 회사 생활이 스트레스일 수 있으니 유의하자.
외국계기업의 특징
- 한국회사와 기업문화가 다를 수 있음
- 글로벌한 업무 환경
- 처우 대비 낮은 취업 난이도
- 영어는 필수
외국계기업이라 하더라도 국내법인의 규모가 너무 크면 현지화 되어 토종기업에 가까울 수 있다는 점은 참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