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퇴사 고민자와의 상담,
더운 오후날,
여느 상담처럼 한 상담자를 모처에서 만났습니다.
이직을 고민하고 있었고, 긴 휴가 중이라고 현재 상황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다소 긴장 된 표정이었지만 자신의 얘기를 조심스레 하기 시작했습니다. 모 그룹사에 다니고 있고, 상사에 대한 폭언과 서류던짐 등의 폭력으로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제 생각이 났습니다. 참 꼬일대로 꼬였던 1~2년을 보내고, 그런 압박감이 심해질 때 쯤 구조조정 속 명퇴 희망자를 받을 때 손을 들어 회사를 나왔지요. 그의 이야기는 그 때의 저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금요일 밤 퇴근길이 즐겁지 않고 월요일 그곳에 다시 앉아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미 보고 울렁증에 걸려 어떤 보고든 하는 것 자체가 두렵고 무섭던 시기가 있었지요.
이런 얘기를 상담 때 그리고 글로 자주 하는 이유는 나름의 치유 목적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몇 달을 쉬며 그 때의 모습을 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이 상담자 역시 그런 과정에 있었습니다. 다만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찾은 병원에서 약을 타는 것 이상의 필요한 상담이 없었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었지만요.
우선 그래서 상담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직 저도 미숙합니다만 이런 얘기는 꼭 해줍니다. '우선 자존감을 지켜야 합니다.'
보통의 퇴사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 돌아오는 리액션은 '어디든 똑같다'입니다. 어디든 똑같다는 말은 방어적인 말일지 모릅니다. 자신이 가보지 않은 것에 대한, 실행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방어적 태도로 나온 말일 수 있는 것이죠. '니가 잘못 한 것이다' 그럴 수 있습니다. 회사란 조직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으니 내가 맞추어가야 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요. 그렇다고 회사가 나를 선택해 주진 않습니다. 즉 들어갈 때 지원서를 쓸지말지 결정한 것, 계약서에 사인을 한 것 모두 나의 선택임으로 나가는 것도 나의 자유입니다. 더불어 회사는 계약 된 기간 동안 노동의 대가로 돈을 주는 곳이지 평생 보모처럼 나를 보살펴 주진 않습니다.
퇴사/이직을 하는 것이 마치 조직의 배신자, 부적응자로 찍히는 것은 이런 것들로 보면 경험하지 못한 자의 방어적 태도 혹은 회사와 나를 분리하지 못한 의존적 태도 때문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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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내면 나는 온전한 나의 이름으로 '직장' 생활을 계속 할 수 있는 것인가요?
학교를 다니던 학생이 직장인이란 신분으로 바뀌는 때가 취업입니다. 아주 다른 생활과 논리로 살아 가야 함에도 우리는 쉽게 결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밴드웨건효과 그대로 그들의 취업은 정해지기도 합니다. 문득 회사가 눈에 보일 때 그 자리에 주저 앉거나, 일탈을 꿈구게 됩니다.
퇴사학교와 같은 회사를 떠난 나를 찾는 무언가가 유행처럼 번지는 것도 그런 자각의 크기가 점점 커진 결과라 할 수 있지요. 무엇이든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 짐으로 그런 트렌드 역시 작은 흐름과 필요가 모여 여기까지 온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런 활동들은 '자신'을 찾으란 메시지를 자꾸 던집니다. 하지만 회사는 자신을 찾을 수 없는 구조이지요. 아마 대부분의 회사는 그러할 것 같습니다. 부속품으로, 일부로 역할을 잘 해내면 그만이지 나의 이름 '홍길동' 석자가 빛날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역할을 잘 해야 나의 경제적 만족감도 이어갈 수 있고, 작은 비전이라도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냥 그렇게만 흘러가면 크게 일탈이 필요하진 않을 수 있습니다.
허나 늘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의견대립, 상하복종의 관계, 주종관계 등 회사의 구조를 들여다 보면 군대가 생각날 정도로 남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과거 누군가의 말이기도 합니다. 조직은 남성입니다. 과거 성장을 위해 달려가던 때야 리더십이 발휘되는 이 조직의 팔로워들은 그런 상황이 흔한 것임으로 적응이 쉬웠을지 모릅니다. 나름 그 시대의 트렌드였죠.
허나 하루면 세상이 바뀌는 지금을 경험한 2~30대에게 이런 공간은 맞지 않는 옷과 같습니다. 문제해결, 커뮤니케이션, 리더십을 가지고 있으면서 회사 생활을 잘 해낼 수 있다고 하지만 일종의 기성세대와의 격차는 줄일 수 없는 벽과 같은 것입니다. 다른 시대를 다른 것을 보며 자라온 사람들이 촘촘히 모여 있기에 5:5의 싸움도 아닙니다. 당장 제가 보았던 제 아래 학번의 모습도 달랐으니까요.
그런 차이가 인정되지 않고 상명하복으로 무시되는 개인의 인성, 존재감의 결과는 결국 자존감의 하락만 낳을 뿐입니다. 우울증이 많아진 것도 이런 과정에 생긴 것일지 모르지요. 일본의 한 광고회사의 자살 얘기처럼 회사는 어쩌면 과거의 리더십 넘치는 사람들로 경제를 이끌던 멋진 곳이 아니라, 자존감을 잃은체 마치 우울증 환자를 양산해 내는 사회 악과 같은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너무 나간것 같군요)
여하튼,
그런 조직 속에서 찾는 나는 온전한 모습인가요?
그래서 퇴사를 권합니다. 퇴사 하세요.
적어도 이렇게 얘기하는 한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자존감과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잠깐의 일탈의 시간과 휴식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이자 생각입니다. 회사는 정류장이고 다음 정류장을 찾아 여행을 떠나면 됩니다.
이 또한 취업/이직과 같은 선택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선택을 잘 하기 위해선 정보와 경험이 필요한데 부족한 정보는 찾으면 되고, 경험을 쌓아 가면 됩니다. 상담은 그런 의미에서 필요한 것이죠. 그 선택에 필요한 것들이 잘 모아지면 정류장을 찾는 여행의 선택은 더 확실하고, 명확해 집니다.
오늘은 불금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회사를 나오며 '불금'을 맞이하러 가는 길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금요일부터 월요일 아침의 출근길은 '두려움'의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퇴사하세요. 괜찮습니다. 나하나 회사 관둔다고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세상 내가 일할 자리 하나 없겠습니까?
by 일상담소 이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