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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나무숲 Feb 25. 2023

어른으로서 책임져야 할 선택의 무게

드라마 상속자들에서 나온 명대사가 있다.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나에게는 왕관은 없지만, 평범한 나조차도 견뎌야 할 무게가 있다. 바로 선택의 무게.


그런 말이 있다. 인생은 B와 D, 그리고 그 사이에 C가 있다고. 인생은 탄생(Birth)과 함께 시작되고, 죽음(Death)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선택(Choice)이 존재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한다. 사소하게는 오늘 어떤 걸 먹을지, 매일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마다하고 단 걸 마실지 등등. 그리고 나는 지금의 지옥을 선택한 과거의 나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배고플 땐 마트를 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배고플 때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욱하는 성격 좀 버리고 신중하게 선택했어야 했는데.. 지옥에 내던져진 지금 별별 생각이 다 들지만, 어쩌겠나.. 나는 어엿한 성인이고, 성인으로서, 아니 어른으로서 선택한 걸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심플할텐데, 사실 마음은 심플하지 못하다. 이미 한 번 멘탈이 털렸기 때문에 조그마한 이벤트가 생겨도 가슴이 꽉 막혀온다.


과거에도 이렇게 씨게 아픈 적이 있었다. 사람이 심리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다보면,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 순간엔 나 자신에 대한 공부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지만, 지나고 보면 나라는 정체성이 한 겹 더 생긴 느낌이랄까.


이번에 생긴 나의 정체성 한 겹은, 내 마음에 내키지 않는 걸 억지로 행하려 할 때 엄청나게 불편해한다는 거다. 가만히 있으면 더 불안해질까봐 간편 지원으로, 혹은 헤드헌터를 통해 지원한 서류들이 덜컥 통과가 되어 다음주, 그리고 다다음주 면접을 보게 되었다.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들이다. 하지만 면접은 보기로 했는데.. 동종업계 종사자들이니 좋게 좋게 마무리 지으려고 수락을 했다. 맘 같아선 그냥 날 떨어뜨렸으면 좋겠다. 좋게 좋게 거절하기도 힘빠지니까.


이 쯤 되면 왜 불안해할까봐 서류 지원을 막 갈겨댔는지 후회가 되는데.. 어쩔 수 없지. 이것 또한 선택의 무게다. 견뎌야 한다. 한심한 자식..



동료의 한 보 후퇴, 두보 전진에 이어 친구가 '선택은 윷놀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윷놀이를 하다보면 도, 개, 걸, 윷, 모. 조금이라도 나아가지 않냐고. 이 친구 또한 힘든 선택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도'가 나온 것 같지만, 과거보다 나아지고 성장했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지. 윷놀이에는 '빽도'가 있다는 사실을..씨발..


난 빽도다.

한 보 후퇴다.


아니다. 뜀틀을 뛰어넘기 전, 발판에 올라서는 그 찰나, 더 큰 도약을 하기 위해 몸을 잠깐 움츠리는 것 뿐이다. 그렇게 믿어야지. 더 잘되기 위해 이런 시련을 겪는 것이라고 위로해본다.




오늘 오래된 친구의 청첩장을 받기 위해 잠깐 만났었다. 반년 전에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근황에 대해 얘기했었다. 난 지옥 같은 선택을 한 지 얼마 안됐었고, 이 친구는 이직한 지 좀 되었던 때였다. 하지만, 힘든 건 똑같았다. 비슷한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일 못하고, 안 하는 상사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반년이 지나고, 둘 다 상황이 악화되었다. 나의 상사들은 여전했으나 미쳐가고 있었고, 친구의 상사는 사라져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친구가 메꾸고 있었다.


사실 친구를 만나기 전, 새벽 내내 잠을 설쳤었다. 가슴이 갑갑해서 푹 자지도 못한 것 같았고, 뭔지도 모르는 불안함의 원인에 잠을 설쳤다. 친구와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내내 가슴이 갑갑해져, 비상상비약을 먹었다. 먹었는데도 증상은 여전했다. 혼자 있어서 그랬던걸까? 친구를 만나니 호전됐다. 지난주에도 그랬었다. 이 쯤되면 혼자 있으면 안되는 건지..


짧은 시간 동안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며 한숨을 쉬어댔다. 서로 웃기는 하는데, 그냥 실소 수준이었다. 나는 친구의 얘기를 들으며, 친구보다는 낫구나 라고 위로 받았는데.. 친구는 어땠을까? 위로 받았을까? 그건 아니었을 것 같다. 객관적으로, 주관적으로 친구의 상황이 최악이었다. 여기는 .. 제대로 올리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추가근로 시간이 130시간이라고 하니까. 안 그래도 마른 애가 더 말라보였다. 결혼식 때 쓰러지는 건 아니겠지..




아침보단 나아졌다만, 지금도 가슴이 콩닥콩닥 거린다. 난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 것일까? 탈출? 나의 미래? 이런 불안.. 내가 택한 것에 대한 책임이겠지.


콩닥콩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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