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부터였을까. 술 약속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알라딘 중고 서점을 들르는 버릇이 있었다. 세상을 도피하고 싶던 시절 얼큰하게 취했을 때 책이라는 존재로 위안받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보상받지 못한 내 삶의 노력들에 대한 억울함을 달래줄 한마디가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한마디를 찾아 지금까지 그 시절 시절 지나쳐온 여러 독서 취향에 따른 작가들이 참 많았다. 듣고 싶던 인생의 진리를 재마난 이야기를 통해 듣기도 하고, 귀담아 들어야 할 잔소리를 재밌게 읽어내기도 한 듯하다. 그중 늘 내 마음 한켠을 관통하는 공통된 하나의 숙원 같은 존재가 있었다. 늘 마음 한 구석에 숙제처럼 남아 있던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좋아하던 책이라 자신 있었더라면 대뜸 새 책을 샀겠지만, 애초에 중고 서적에서 기웃거렸던 건 선뜻 이 두껍고 난해한 책을 읽어낼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알게 된 건 아마도 내가 했던 밴드의 앨범 타이틀이 짜라투스트라 였던 이유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블랙신드롬의 6집 앨범 그러니까 내가 이 팀에 들어가기 전의 앨범 제목이 짜라투스트라였다. 뭔가 모르게 있어 보이는 그 제목! 그 원천이 바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으니 어린 시절 알게 모르게 마음 한켠에 막연한 궁금증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남아 있었나 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중고 서점에서 결국 책을 사두고서는 비장하게 읽어 보겠다고 펼치고서는 늘 차라투스트라가 산 위에서 내려오는(이 책의 극 초반) 장면에서 그만 두곤 했었다. 마치 글자를 읽고 있지만, 글자만 읽고 뭘 말하는지 이해 못 하는 괴로운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글을 이해하는데 이해하지 못하겠던 그 느낌. 그래도 이 명저를 읽어야 무언가 내가 원하는 내가 될 것 같은 욕망 때문에 다른 출판사의 새 책을 구매해서 다른 번역을 읽어 보기도 했지만 마찬가지로 차라투스트라가 산 위에서 내려오면서 책을 덮어 버리곤 했었다.
그렇게 또 한참의 세월이 지나갔다. 30대가 지나고 40대가 되고 다시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역시나 나는 이 나이를 먹어도 차라투스트라가 산 위에서 내려오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책을 읽을 수 있단 말인가. 난 왜 아직도 이정도 수준 밖에 안 되는 것인가. 하며 한탄하다 방법을 좀 찾아보았다. 이 책의 후기와 서평을 읽어도 도움이 되지 않았고, 유튜브에서 해설을 읽어도 도통 이 책이 읽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인터넷 책 판매 사이트의 후기 중에 이런 댓글을 보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시려면 니체의 도덕의 계보와 선악의 저편을 먼저 보세요’ 바로 주문했다. 마치 우리가 어릴 적 배우던 윤리와 철학의 박사 학위 논문 버전 같은, 음... 마치 이걸 대체 왜 배워야 하는 거지? 하는 주제의 이야기를 박사 학위 수준의 그것도 세상 유명한 니체란 사람이 쓴 이 두 권의 논문을 기어코 읽어내고서야 차라투스트라라는 책이 왜 그렇게 쓰였는지, 왜 내가 이해하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책은 하나의 길고 긴 서사시이다. 단테의 신곡 보다 더 길고 난해한 이야기로 풀어낸 대 서사시다. 단 한 문장도 그냥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니체는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모든 문장을 은유하였고, 인생의 깊이 있는 통찰들을 희화하였다. ‘신은 죽었다’ 이 한 문장으로 너무 많은 호불호가 있겠지만, 실상 중요한 건 신을 믿고 안 믿고 가 아니다. 그 모든 연민과 국가 더 크게는 신이라는 규범에서 주는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한 죄책감과 부채에서 벗어나 나 스스로가 진정한 초인이 되어야 한다는 나만의 자아를 찾아가야 한다는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묘사를 강렬하게 해 내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안락함과 평온함에서 벗어나 깨달으려 하는 수많은 무거운 마음을 지려는 단계가 지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자 하는 욕망의 단계를 지나 아이처럼 순수한 상태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는 상태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 유명한 낙타와 사자 그리고 아이의 단계의 이야기이다. 모든 순간과 모든 삶을 통용하는 멋진 글이 아닐 수 없다
니체는 우리에게 떠나라고 이야기한다. 떠나서 춤을 추고 진짜 행복을 들여다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기 위한 삶의 모험의 챕터를 넘기고 넘겨야 한다. 우린 모두 걸어가야 한다. 내 마음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산을 오르고 우리의 자아를 찾아 늘 걸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