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훼손에 대한 고찰
헤르만 헤세의 책 중 가장 좋아하는 <황야의 이리> 처음에 무지성으로 문학동네의 <황야의 늑대>로 읽었는데, 이내 곧 원제가 <황야의 이리> 즉 <Der Steppenwolf>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번역이라는 것이 직역이 아니기에 그 나라의 실정에 맞게 의역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늑대와 이리는 엄연히 다른 종이고 다른 단어이다. 이와 같은 예로 제일 어처구니없는 제목은 <상실의 시대>가 아닐 수 없다. 도대체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노르웨이의 숲을 왜 저런 제목으로 바꿨는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얼마 전 읽었던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도 버트런트 러셀이라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만들었을만한 제목이 아닐 것 같아 찾아보니 이 책의 제목도 원제는 <Pwoer : The new social analysis>였다. 이 제목을 어떻게 저런 가볍고도 자극적인 불량 식품처럼 만들어 버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특히 개탄스러운 점은 ‘철학’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책들의 제목들 마저도 바꾸어 댄다는 것이다. 철학이라는 것이 자기만의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찾아 떠나는 여정인만큼 그 고뇌의 결과물에 대한 훼손, 팔아먹기 위한 상술을 보는 것은 정말 마음 아픈 일이다. 정말이지 대한민국의 지적 아이덴티티에 대한 윤리 의식이 출판사라는 것들까지 이러니 다른 영역은 두말할 것도 없겠다.
<턱월한 사유의 시선>에서는 대한민국의 GDP가 아무리 올라가도 선진국 반열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는 지적, 문화적 선진을 궁극적으로 이루어 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창작에 대한 갈증과 그 결과물의 존중 없이는 옆나라가 베껴댄다고 욕할 자격도 없고 그들과 다름없는 그저 베끼고 훔쳐서 잘 사는 도적의 우두머리밖에 안 되는 것이다. 언젠가는 문화의 중심에서 세상의 중심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 선도하는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