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아이러니

깊어질 수록 가벼워지는 기억에 대하여

by 조범준

사랑이 끝난 시점—어찌 보면 정의하기 참 까다로운 순간이긴 하지만—은 늘 신기하다. 그것은 그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감정보다도 깊고, 그만큼 여운이 길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아닌 상태로, 명확한 감정적 이름을 갖지 못한 채 오래 남는다. 두 사람 사이에서 아무리 동등하게 정리된 관계라 할지라도, 혹은 어느 한쪽의 감정이 먼저 닳아버려 정리된 관계라 할지라도, 그 마지막의 감각은 묘하게 닮아 있다. 마치 이미 끝난 이야기를 다시 되짚게 만드는 힘처럼, 사랑의 끝은 언제나 흥미로운 잔상을 남긴다.

그중 첫 번째로 흥미로운 지점은, 다른 사랑으로 전이되는 과정이다. 이전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새로운 사랑은 언제나 이전의 깊이를 무색하게 만든다. 오히려 새로 시작된 사랑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지나간 사랑의 감정의 골은 점점 얕아진다. 한때는 삶의 중심이었던 감정이, 어느 순간부터는 지금까지 겪어온 수많은 사건들 중 하나 정도로 축소된다. 심지어 그 깊이는, 과거에 파놓았던 그 어떤 사랑보다도 보잘것없게 느껴진다.

이것은 과연 그 사랑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 때문일까. 아니면 애초에 그 사랑이란 것이, 우리가 믿었던 것만큼 단단하지 감정의 한 영역이 아니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사랑을 하는 동안 우리는, 그 사랑의 깊이만큼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기꺼이 내어준다. 때로는 나 자신을 보류한 채, 상대를 중심으로 세계를 재편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이 끝나고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 지난 사랑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기도 전에 그 감정은 여러 형태로 가벼워진다. 그 가벼움은 단순한 희미함을 넘어, 때로는 보잘것없는 기억 정도로 취급되곤 한다. 마치 과도했던 감정 자체가 무언가에 속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로 흥미로운 지점은 이별의 고통이다. 사랑의 고통은 흔히 감정의 문제로 치부되지만, 현대 과학은 이 고통이 실제로 육체적 고통과 유사한 반응을 보인다고 말한다. 진통제가 이별의 고통을 완화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을 정도로, 사랑의 상실은 신체를 동반한 고통이다. 그 고통은 때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앗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맹목적이고 무모하다. 이별이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내 고통만을 중심에 두고 세계를 재단하려 든다.

그 감정은 결국, 이별을 부정하는 수준을 넘어 모든 존재를 부정하려는 방향으로까지 치닫는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 끝은 생각에 그치지만, 사랑의 고통이 얼마나 극단적인 방향성을 품고 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어쩌면 미친 듯이 강력한 소유욕과 탐욕, 그리고 욕심에서 비롯된 반증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허용되었던 감정들이, 관계의 종결과 함께 제어되지 못한 채 폭주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이별의 트라우마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상처는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기억들로 덮일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 아물었다고 착각하지만, 문득 비슷한 장면이나 감정 앞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사랑의 상처는 그렇게 평생 한 자리를 차지한 채, 조용히 존재하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참으로 신기하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 중에서도 특히 설명하기 어렵고,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가장 까다로운 감정이다. 플라톤은 이러한 감정을 인간의 결핍에서 비롯된 에로스로 보았고, 때로는 성욕에서 비롯된 본능적 혼란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랑을 그렇게 단조롭게, 육체적인 오성의 문제로만 환원하기에는 그것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나치게 크고 다양하다. 사랑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인간의 삶 전반에 스며들어, 때로는 질서를 만들고 때로는 무너뜨린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인간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장 자크 루소가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말했듯, 사랑은 관계와 사회가 형성되면서 소유욕과 번식 본능이 결합된 결과였을까. 아니면 그 이전, 생존과 번식을 위한 동물적 본능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온 감정이었을까. 그러나 후자의 관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 인간의 사랑은 지나치게 사회적이고 관계 속에 깊이 잔존하면서도, 동시에 미성숙하고 부자연스러우며 때로는 스스로를 파괴할 만큼 무모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이 감정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유아적인 수준의 교류와 반복된 상처 속에서 맴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분명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감정이지만, 동시에 인간을 가장 비합리적인 존재로 만드는 감정이기도 하다. 그 모순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반복하고, 또 실패하며, 그 실패를 다시 이해하려 애쓴다. 어쩌면 사랑이란, 이해되기 위해 존재하는 감정이 아니라 끝내 이해되지 않기 위해 반복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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