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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범준 May 25. 2024

독서와 달리기 그리고 인생

독서는 달리기 같다. 달리기는 독서 같다.

 매일 하루에 한 시간씩 달리기를 하자! 매일 하루에 두 시간씩 독서를 하자! 둘의 난이도는 정말이지 너무나 비슷해 보인다. 물론 그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소 의견이 나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맨 처음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2022년 4월 그러니까 재작년 느지막한 봄이었다. 6개월간의 피 터지는 프로젝트를 마치고 찾아오는 공허함을 잊기 위해 뭐라도 해야지 하며 마냥 한강을 걸었다. 걸으면 늘 편하게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장점이 있지만, 생각이 너무 많아진다는 단점도 있다. 그래도 건강하고 날씬한 삶을 살기 위해 선택한 한 시간 걷기는... 애석하게고 오히려 나에게 더욱 큰 공허함만을 안겨 주었다.-나는 미친 듯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난 가끔 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인생의 동료이자 형제이자 동생인 사람과 술을 마신다. 나이 들고 나서 딱히 친구들과 교류가 적어지고 친구라는 관계 범위가 좁아지면서 더더욱 밖을 나갈 일이 없어졌다. 그래도 가끔 일적으로 만나는 수많은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픈  휴식 같은, 마치 어릴 때 친구를 만나는 그런 기분과 여유를 느끼고자 동생과 데이트를 한다. 그러한 시간들은 서로에게 이러저러한 영향을 미치는데, 음악 듣는 취향도 그러했고, 옷 입는 취향도 그러했던 것 같다. 그날도 술을 거하게 한잔한 후 공원 벤치에 앉아서 모자란 맥주를 한 캔씩 더 마시고 있었다. 동생은 부스럭부스럭 가방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그 안에는 러닝화가 들어 있었다.

“이거 신고 달리기 한번 해봐”

 ‘달리기‘ 운동을 정말 좋아해서 별의별 운동을 다 해봤지만, 정말이지 꾸준하게는커녕 시도조차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운동 중 하나가 오래 달리기였다. 운동화를 보고 선물이 마냥 좋기도 했지만, 동생이 이미 시작했다고도 하고 매우 두렵긴 한 시도였지만 궁금해졌다. -동생은 회사에서 주최하는 프로젝트로 반 억지로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너무 좋았던 경험을 나누고자 같은 운동화를 두 개 사서 그중 하나를 나에게 선물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좋은 것을 주로 나누는 편인데, 사실 난 동생의 취향도 매우 믿는 편이기도 하지만, 어느 분야건 선구자가 느꼈던 좋은 경험은 아주 믿고 실천해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다음날 오전 난 한강으로 나갔다. 역시 나는 역시나였다. 난 100미터도 달릴 수 없었다. 숨이 차서 못 달리는 것 같기도 하고, 무릎이 아픈 아파서 인것 같기도 하고, 골반이 아파서였던 것 같기도 했다.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온몸이 다 아픈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달리기에 질 순 없었다. 다음날도 시도해 보았다. 결과는 마찬가지. 역시나 난 뛸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 누구도, 그 어떤 내 주변인보다 강력한 끊기와 지구력과 집착이 있는 사람 아니었던가! 그 상태로 난 1개월을 시도했다. 드디어 3킬로 정도를 뛸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이 즈음엔 어느덧 지독히도 잡념이 많아지는 현상도 많이 없어졌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달리기란 운동은 내 신체의 너무 많은 밸런스를 요구하기 때문에 딴생각을 하며 달리기가 싶지 않다- 그 이후 꾸준했던 난 5킬로를 달려 낼 수 있었고 너무 기쁜 나머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소리 지르고 자랑하고 싶었던 순간도 생겼다. 6개월 후엔 10킬로 그러니까 내가 목표했던 한 시간을 달려 내는 사람이 되었고, 그렇게 목표한 바를 이루고 나서는 가슴이 벅차올라 혼자 눈물을 흘리며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6개월이란 인고의 걸음걸음의 시간들을 보내는 동안 나는 내가 아픈 이유를 열심히 찾아보았고, 고통받지 않고, 부상 없이 달리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찾아서 스스로를 훈련시켰다.

 일단 오래 달리기는 단거리 달리기와 사용하는 근육부터 호흡 및 전체적인 메커니즘 자체가 아예 다른 운동이었다. 하지만 보통 우리가 통념적으로 알고 있는 달리기는 단거리 달리기의 개념이었던 것이었다. 아니 내가 알고 있는 달리기가 그러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오래 달리기에 대해 다시금 공부해 보았다. 보폭을 좁게 하여 분당 보폭을 최대한 늘려서 뛰어야 하며, 큰 반동을 주고 힘 있는 움직임에 쓰이는 시뻘건 속근보다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움직임에 쓰이는 하얀 지근을 사용해야 한다. 허리는 곧게 펴고, 어깨에 힘을 빼고 가볍게 팔 치기를 하되, 뒤로 당기는 느낌으로 하고 살짝 쥔 주먹은 명치를 향해 있어야 한다. 말이 쉽지 이 모든 걸 달리는 내내 생각하고, 무너지지 않게 자세를 잡으며 1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텐션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비가 오는 날도 달렸고, 눈이 내려 땅이 미끄러운 날도 달렸다. 한 걸음 한걸음 발을 떼어 그 어떤 기계의 도움도 없이 내가 해내야 하는 운동. 나의 달리기 인생이 시작되었다. 이건 마치 독서랑 매우 비슷했다. 독서 또한 한 글자 한 글자 짚어 가며 그 어떤 기계적인 도움 없이 눈으로 읽어 내고 뇌로 해석해 내야 한다. 나는 독서도 빠르게 많이 읽기 위해 여러 가지 독서법을 찾아보고 공부했다. 심지어 그로 인해 독서 속도가 빨라지기도 하고, 다소 어려운 책들도 읽어내며 나만의 독서법과 루틴이 생겼지만, 결국엔 독서도 달리기처럼 천천히 글자들을 한 걸음씩 음미해 가며 그 마지막 페이지까지 똑같은 눈의 움직임과 집중으로 달려가야 한다. 때론 빨리 읽어 내고 싶고, 지루하기도 해서 대충 딴생각을 하며 읽어 보아도 결국엔 지나간 페이지를 다시 읽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기 마련이다. 달리면서도 느끼지만 독서는 오래 달리기와 참 비슷하다. 끈기 있게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읽어 내야 한다. 뇌의 작용과 집중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복잡 난해한 문장이 가득한 책을 읽을 때면 숨이 차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특히 아주 오랜 고전 중에는 천천히 글자와 문장을 하나하나 음미해 가며 그 뉘앙스와 시대적 배경을 찾고 느껴가며 읽어야 하는 책들도 있다. 돌아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이러한 독서와 그리고 달리기와 참 비슷하다. 늘 조바심이 나고 늘 좋은 결과만을, 늘 행운이 빨리 찾아오길 기대하는 인간의 심리와 다르게 우리 인생은 언제나 천천히, 갑작스럽지만 느리게 포기하지 않고 정진했을 때 우리에게 목표를 이루게 한다. 오늘의 한걸음이 중요하다. 한 시간을 달리던 열 시간을 달리던 첫 발자국이 없으면 끝도 없듯이 우리는 늘 첫 발자국을 떼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결과를 빨리 알고 싶어서 마지막 페이지를 읽어보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어느 날은 독서를 하다 딴생각을 하고 두어 페이지를 지나가기도 한다. 괜찮겠지. 하고 읽다 보면 결국 돌아가서 그 페이지를 다시 봐야 뒷 페이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곤 한다. 우리 인생도 어느 페이지를 대충 거를 수 없다. 마라톤처럼 42.195킬로 미터를 달려가야 할 때 그 어느 부분도 스킵할 수 없듯이, 우리 인생도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꾹꾹 눌러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는 오늘도 달리기를 하고 독서를 했다. 그냥 내 인생이다 생각하고 운동화를 신고 문을 열고 나간다. 철근같이 무거운 책의 표지를 열어젖힌다. 그렇게 난 오늘도 해내었고 내 하루의 성공을 만끽한 밤을 느끼며 하루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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