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한 남자들이 나누는 담배와, 진한 사랑 이야기
"남자와 여자 중, 누가 더 로맨티스트라고 생각해?"
공중에서 사라지는 담배 연기를 손으로 휘젓던 준영에게 민우가 말했다. 건배사를 몇 번을 하는 건지, 술집에선 자대 동기들의 목소리만 들려온다. 전역할 때 자주 보자고 얘기했던 동기들은 7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모였다. 중대에서 가장 친한 사이였던 준영과 민우 또한 띄엄띄엄 안부 연락은 했어도 만난 적은 없었다. 그들은 동기 사이에서 유일한 흡연자이자 '알쓰'였기에, 달아오른 술집의 분위기에 넋이 나가 이따금 담배를 태우러 나갔다.
"이 질문 예전에 네가 했었잖아."
“맞아. 흡연장에서 두 시간이나 얘기했었던 것 같은데. 무슨 얘기를 그렇게 했더라?”
“그러게. 기억이 잘 안 나네.”
“아. 그때 너 오래 사귀던 애랑 헤어지고 나서 걔 얘기 엄청 하지 않았나?”
“맞네. 걔 기억난다."
그들은 파랗게 젊었으나 언제나 젊음과 사랑을 갈구했다. 변하는 것들에 대한 염원, 그들은 담배를 술처럼 마셔 대며 청춘을 안주 삼아 노래했다.
“걔가 고무신 거꾸로 신었을 때, 네가 그랬잖아. 그 애와의 만남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기억나?“
“응. 그랬지.”
“그때 네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나. 지난 4년의 시간 동안 사랑받은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했잖아. 헤어지기 전에는 매일같이 사진 보여주고 결혼할 거라고 했으면서. 단순히 바람피워서 그렇게 얘기했던 거야?”
”그땐 배신감이 너무 커서 그랬지. 4년의 시간을 버린 것만 같았거든. 너만 변하지 않으면 된다던 애가 나랑 헤어지기 전부터 다른 남자애랑 연락했더라고. 결국 나는 얘한테 뭐였을까 싶더라."
“그럼 그래도 사랑받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걸 아직도 모르겠어. 다만 단순히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서 나를 사랑했다고 생각해. 내가 입대를 하고 옆에 있어주지 않았으니 다른 사람을 찾았던 거고. 나랑 사귈 때도 그랬고, 원래 혼자서 버티는 방법을 잘 모르는 얘였거든."
“외로워서 시작한 성급한 연애도 사랑이라고 볼 수 있을까?”
“글쎄. 적어도 건강한 연애는 아닐걸.“
“근데 너 걔 이후로 누구 안 만났어?”
“만났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어.”
준영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떠올렸다. 중학교 때 접했던 그 책은 가슴에 박혀 준영의 연애관을 형성했다.
“인간이 언어를 깨우치면서 시작되는 고독의 공포는 사랑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어. 그 어떤 것도 사랑을 대체할 수 없다는 거야.“
”예전에 네가 했었던 말이네. 근데, 그러면 결국 인간은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연애하는 거 아냐?“
“단순히 외로움을 잊기 위해 사랑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과 사랑 그 자체에 목적을 두는 건 엄연히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해. 그래서 사랑이 위대한 만큼 참 어렵나 봐. 걔랑 헤어지고 나서 내가 그랬잖아. 다음 연애는 반드시 결혼을 목표로 할 거라고. 그렇게 신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했는데, 결국 별거 아닌 이유로 헤어졌어.”
“내가 말했지. 무슨 이십 대 연애에 결혼이야. 여러 사람 만나보고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해 난.“
"그런 얘기 했던 우리가 벌써 29살이네. 시간이 말 그대로 쏜살같아."
"그러게. 이십 대 초반엔 젊음이 영원할 줄 알았지. 지금은 그냥 아저씨야 아저씨."
그들의 대화 주제는 언제나 젊음과 사랑이었다. 질릴 수가 없는 주제. 하지만 서른을 바라보는 준영과 민우는 젊음이 도망갈까 두려워했다.
"근데 준영이 너 회계사 됐다면서. 진짜 대단해 너."
"에이, 한 번에 붙은 것도 아닌데 뭘. 근데 요즘엔 삶에 회의감이 들어."
"왜?"
"그냥 ··· 삶에 재미가 없어. 매일 똑같은 일상 반복에 조출에 야근까지 돈 버는 기계가 된 것 같다니까. 근데 민우 넌 소방관 된 거야?"
"시험은 한 번에 통과했는데, 결국 그만뒀어."
"왜? 너 매일같이 시험 준비하느라 엄청 애썼잖아. 네가 중대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막상 돼 보니까 너무 나랑 안 맞더라고. 1년도 못 버티고 그만뒀어. 대신 지금은 아버지가 하는 고깃집 물려받을 준비하고 있어."
"아 거기? 엄청 맛있었는데, 나랑 너랑 휴가 겹칠 때 같이 갔었잖아. 그 가게 네가 물려받는구나."
"2층엔 시가 바도 새로 차리려고. 너 오면 공짜로 한 대 줄게. 시가 좋아하잖아."
"좋지, 근데 나 담배 곧 끊을 거야."
기대했던 미래와 전혀 다른 삶. 준영은 버티는 길을, 민우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전역할 때 끊는다고 했잖아. 너 절대 못 끊을걸."
"에이 그래도 난 0.1미리만 피워."
"아직도 그거 피워? 이오니아. 내가 예전에 추천해 준 거잖아."
"내 성격 알잖아. 하나만 죽어라 파는 거. 근데 그러는 너도 계속 똑같은 거 피우네"
"맞아. LSS 원. 얘한테만 손이 가네."
“근데 우리 너무 오래 여기 있었다. 슬슬 돌아가자.“
“그래야겠네. 얘네 얼마나 취했으려나.”
준영과 민우는 바지에 묻은 담뱃재를 털어내며 일어났다. 술이 사람을 마신 듯 취해 비틀대는 동기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질리도록 건배사를 외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