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뻐서 산건데요 '프라이탁'을 매는 진심이 뭣이 중한디

by 주조디

“가장 작은 행동이 위대한 의도보다 낫다”

- 존 버로우 -


“아니, 무슨 쓰레기를 삼십만원을 주고 산다는 거야”


내 생애 첫 프라이탁 가방은, 우리 집 분리수거 담당자로서 기후 변화감소에 티끌 같은 기여를 몸소 실천하고 계신 남편이 선물해 주었다. ‘오빠, 이거 친환경이야, 버려지는 자원을 리사이클 한거야, 소신을 위해 이정도 투자는 글로벌시민의 의무지.’ 등등 온갖 대의와 명분 대잔치를 벌이며 그를 설득해 얻어낸 나의 첫 프라이탁 모델은, 노란색 바탕에 초록색 줄무늬가 그려진 '리렌드'였다.


‘하여간 갖고 싶다니까 사주긴 하는데 도무지 이해는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볼멘소리를 뱉던 그와 나는 여전히 이 가방의 가치에 대한 견해를 좁히지 못한 채로 11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살고 있다. 당시 시댁이었던 부산에 내려가 돌도 안 된 첫째를 어머님께 부탁하고 나와 잠깐의 외출을 나갔던 날이었다. 화려한 남포동 번화가 중심에 프라이탁 판매 샵이 있었다. 그렇게 프라이탁과 사랑에 빠진 이후 나는 꾸준히 프라이탁을 모으고 있다.


프라이탁은 1993년 스위스에서 그래픽 디자이너인 프라이탁 형제가 설립한 가방회사다. 소위 “업사이클링”이라는 친환경 컨셉으로 알려진, 버려진 산업폐기물들 특히 화물 트럭용 방수천과 자동차 안전벨트, 에어백 등을 활용해 가방을 만든다. 이 두 형제는 중학교 때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학교 수업을 듣고서 충격을 받아 아버지가 망가진 차를 재구매 하려고하는 것도 막을 만큼 환경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자전거가 그들의 주 이동수단 이었던 것은 당연하다. 눈, 비가 많은 스위스에서 가방이 젖는 것이 불편했던 형제는 곧 자신들의 집에서 버려진 재료들을 주어다가 비에 젖지 않는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프라이탁 브랜드의 시작이다. 이 브랜드는 후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재활용 제품 브랜드들의 최소 아버지 혹은 조상님쯤이 되어 되어 전 세계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게 된다.


그런데 이쯤에서 불경스러운 고백을 하나 해야 할 것 같다. (미안 하지만) 내가 프라이탁을 갖고 싶었던 이유는 사실 지구를 지키기 위함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허허, 그러하다. 나는 그저 한 마리의 힙스터 꿈나무 였을 뿐이다. 초창기 프라이탁은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통해 직접 공수해오거나, 이태원 제일기획 앞 mmmg라는 아주 작은 편집샵 한켠 에서만 접할 수 있을 만큼 소수를 위한 브랜드였다. 주로 광고업에 종사하거나, 디자이너 같은 매니아 층들이 매고 다녔다. 소위 취향이 좋은 사람, 개념소비를 하는 사람, 트렌드 세터라고 불리(고싶어하)는 사람들. 이 가방을 매는 것은 부에 대한 과시를 위해 몇 백만원짜리 명품 백을 매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유희를 제공했다.


따라서 남편이 사준 프라이탁은 나에게 힙스터의 명징한 상징으로서, 지불한 값 그 훨씬 이상의 심리적 만족감을 선사 해 주었다. ‘아, 프라이탁 매시는군요?’ 라며 은근한 눈빛으로 알아봐 주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취향의 연대를 확인하는 일은 아주 짜릿했다.


잠시 뜬금없지만 나의 결혼얘기를 좀 해보겠다. 취향, 취미, 가치관 심지어 좋아하는 음식까지 모조리 다른 이 두 인격체가 10여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동거동락 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많은 경우 서로의 인생 희로애락 중 로로로(怒怒怒, 열받아, 짜증나, 노여워)를 담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싸움이 끝까지 않고 타협가능한 선에서 멈추는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깨달았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의 선호와 불호에 대해 판단 (judge) 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 ‘서로의 가치관과 취향을 존중’한다는 말로 그럴듯하게 한번 포장해 보겠다 (그런데 이제 포기 한 스푼이 얹혀진...)


하지만 사실이다. 처음부터 그랬다. 구 남친 시절부터 그는 내가 하고자 바에 대해, 가령 낮술모임을 진지하게 운영해 나가는 것, 출근하는 척 당일치기 후쿠오카에 가서 놀다가 퇴근하는 척 하기, 팀장 되고 월급 오르자 마자 회사 그만두기, 뜬금없는 작곡학원 다니기 등등 그 외에도 온갖 작심삼일로 점철된 나의 취미활동의 시도들에 대해 딱히 긍정하거나 동참하지는 않았어도 ‘이해는 안 되지만 네가 원하는 거라면 해, 근데 집에는 좀 일찍 들어와’ 정도의 뜨뜻미지근하고도 일관된 지지를 보여주었다. 사랑하면 같이 좋아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어쩜 사람이 이리 무색무취인가, 인간 도화지인가, 싶은 생각이 들만큼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인정한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 나 같은 인간에게 편견 없는 도화지 같은 그 여서 이 결혼이 여전히 지금의 형태를 유지할 수 되고있다고 말이다.


그날도 그랬다. 한껏 못마땅한 표정을 하면서도 결국 프라이탁 가방을 결제한 그는 물론 내가 평소 환경보호에 얼마나 무심한 사람인 지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예뻐서, 그럴듯해 보이고 싶은 내면의 동기를 선한 명분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그는 불경한 나의 속마음을 굳이 드러내 단죄하지는 않았다. 이유가 뭐가 중요해. 어쨌든 쓰레기는 좀 줄였겠지.


생각해 보게 된다. 과연 의도라는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 예컨대, 개인적 이기심의 발로로 시작된 행동이 결과적인 선으로 이어졌을 때 그것은 과연 선인가 악인가. 만약 결과적 선이라면, 그것은 동시에 과정속에 녹아든 가식이나 위선의 태도를 정당화 하는 것은 아닐까?


신경 뇌 과학자인 김학진 교수에 따르면, 인간이 이타적 행동을 하는 중요한 동기는 개인의 이기심. 즉, 우리안의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욕구를 충족함으로서, 사회 공동체 내에서 생존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일종의 생존 본능의 일환이라고 말한다. 허허 이것 참 안도감이 느껴지는 연구결과가 아닐 수 없다. 역시 나만 그런게 아니었어. 이또한 지극히 정상적인 뇌신경의 반응이며, 역시 인간이란 참 모순적인 동물이라는 것을.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이러한 모순적 심리상태에 대해 안도하거나 흉을 보는 수준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결과 적 선을 추구할 때,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이타적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폼 나고 힙한 가방을 사고싶었던 나의 욕구가 어쨌든 결과적으로 환경 보호를 위한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인도했듯이 말이다 .


또한 이것은 동시에 우리가 인간의 “의도와 동기”에 대해 조금은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 보며 섣부른 판단과 차단에 앞서 다양한 동기들에 대해 수용 할 수있는 가능성의 공간을 남긴다.


2015년, 한국에 아직 전기차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 나는 국내 최초 한번 완충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주행가능 한 전기차 출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초반 전략수립 단계에서 흥미로왔던 점은 한국인 들에게 환경 보호가 얼마나 '중요하지 않은’ 아젠다 인지를 깨달은 순간이다. “과연 전기차를 사는 사람들이 1년 후에 얼마의 이산화탄소를 줄였는가를 보고 싶을 까요, 내 주머니에 기름값을 얼마를 절약했는지가 알고 싶을까요”.


우리는 잠재고객을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로 상정했다. 이것은 전반적인 전략의 방향성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정보의 종류를 바꿨다. 인간의 이기심을 어떻게 활용하여, 전기차라는 환경에 더 나은 대한을 구매하게 만들 것인가. 우리는 고객이 환경보호의 대의에 너무 진지해지지 않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동기를 가진 소비자에게 일말의 윤리적 모순이없다는 것에서 출발했다.결과적으로 선이 될것이므로. 환경 보호를 위한 전기차 보다, 제로백이 페라리 만큼 빠른 운전의 즐거움에 좀 더 집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품을 출시했고 우리는 몇일만에 완판에 성공한다.


최근 MZ세대들 사이에서 환경에 대한 관심사가 높아지고 이것이 실제 구매의 기제로써 작용하는 시장 트렌드를 목도하고 있다. 허나 나는 이것이 우리의 MZ세대가 갑자기 윤리적 가치에 높은 가치를 두게 된, 이전에 탄생한 적 없는 훌륭한 세대여서가 아니라 이제 현실로 다가온 위기의식의 발로이며 이 또한 인간의 이기심, 생존본능에 직접적 영향을 줄 것 이라는 위기의식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브랜드를 지지 한다는 윤리적 소비자로서의 우월감도, 실제로 도래한 위협에 대해 반응하는 두려움도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그 개인적 차원의 이기심을 적절히 이용하여, 작지만 행동하게 만드는 일, 대의의 선함에 대해 “판단”하고 그것을 설득하는 것 보다 제약을 감안하면서 현실 가능한 작은 행동을 통해 어떻게 결과적 선으로 소비자의 동기를 유도 해 나갈 것인가 하는 마케터로서의 나의 역할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된다.


유투브에서 프라이탁 형제의 강연을 찾아보니, 그들이 말하는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이라는 제품의 본질적 역할은 매우 명확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지향하는 고객의 페르소나에 이런 말이 눈에 띄었다.


“slightly fucked-up”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은은하게 도른자” 들을 위한 브랜드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 내면에는 non-conform, blunt와 같은 기존의 규칙을 깨는, 솔직함의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삶에 대한 나의 태도를 아주 정확히 표현하는 브랜드가 아닌가 한다.


은은하게 도른채로, 나의 욕구에 대해 솔직한 상태로, 작고 소듕한 행동들을 끊임없이 시도해 나가는 일. 그게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식이다. 아니 예쁜 쓰레기가 어때서? 폼나고 힙한게 뭐 어때서? 대의를 의심해 당장 눈앞에 행동을 머뭇거리는 우를 범하는 것 보다 낫지 않은가.


그야말로, 프라이탁을 매는 진심이 뭣이 중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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