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엔 반짝이는 별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
- 임마누엘 칸트 -
22년 6월, 반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에서 압도적이고 폭발적인 연주를 선보이며 18세 최연소 우승자되어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임윤찬 군은 결선 무대 하루 전 경연용 피아노를 교체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독일제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뉴욕에서 생산한 스타인웨이로 교체한 것. 혼연일체가 되어 함께 호흡해야 하는 자신의 유일한 파트너인 피아노를, 그것도 결승무대 하루 전에 바꾼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 후일담은 윤찬 군이 자신의 종교와도 같다고 표현한 그의 스승 손민수 교수의 인터뷰를 통해 전해졌다. 그는 윤찬 군이 “자신에게 필요로 하는 피아노가 어떤 것인지 본능적으로 깨닫고 마지막 순간에 교체할 수 있는 배짱을 가지고 있구나”라며 어린 제자에게 존중과 애정을 표현했다.
같은 주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초등학생, 아들 한이도 생애 첫 피아노 콩쿠르에 나섰다. 잘하고 싶었는지 몇 달 전부터 아주 열심이던 아이였다. 우리 집에는 약 30년 전, 내가 처음 피아노를 시작할 때 썼던 조율되지 않은 업라이트 피아노가 한 대 있다. 그런 형편없는 상태의 피아노에서 연습하던 아들이 세팅된 그랜드 피아노에 앉아서 연주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격스러움이 밀려들었다. 무대 위 금장된 스타인 웨이 브랜드 로고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야, 내 아들이 스타인웨이로 연주를 하다니, 다달이 피아노학원에 갖다 바친 수업료를 모두 보상받는 듯한 감동과 뿌듯함이 들었다. 정작, 나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이다.
스타인웨이는 독일 함부르크와 미국뉴욕을 기반으로 한, 명실상부 세계최고의 수제 피아노 브랜드이다. 피아노계의 에르메스라고 할까. 전 세계 90% 이상의 콘서트홀을 장악하고 있을 만큼 업계에서는 최고 중의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다. 스타인웨이는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들에 의해 칭송되어 왔다.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앙 지메르만은 자신만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전 세계 순회공연할 때 싣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며, 아르투르 루빈 스타인 또한 “스타인웨이는 스타인웨이 그 자체이며, 이 세상 어느 악기와도 비교할 수 없다”며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의 음악애호가 및 프로연주자들에게 압도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시작점에는 , 피아노 기술에 대한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제품 혁신을 통해 차별성을 확보했다. 제품뿐이 아니다. 스타인 웨이는 지속적으로 영향력 있는 피아니스트들을 전속 아티스트로 선정해 지원함으로써 전문가들의 신뢰와 인정을 구축해 오고 있으며, 자체 콩쿠르를 통해 신인을 발굴하는 과정을 유지하고 있다. 90년 한때 잠시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매각설이 떠돌며 우리나라의 삼익악기도 스타인웨이의 매수 전에 참여했다가 도중에 너무 거래가격이 높아지는 바람에 최종 탈락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현재 이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명성을 생각하면 입맛이 쓰다.
“가능한 최고의 피아노를 만들기 위하여, to build the best piano possible”
이것이 스타인웨이가 첫 피아노를 제작했던 1856년부터 지금까지 약 160년간 지켜온 브랜드 사명 선언문 (brand mission statement)이다. 모든 브랜드는 그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사명 선언문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브랜드 사명 선언문은 자칫 평범해 보일 수 있는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혹은, 좋은 말은 다 같아 붙여놓은 것 같은 진부한 느낌으로) 그 속에 포함된 한 글자 한 글자들에 숨어있는 고민과 시간과 돈의 투자를 실제로 보면 깜짝 놀랄지 모른다. 우연히 그냥 들어가는 단어는 없다. 추리고 추려내 살아남은 핵심적인 가치, 그 브랜드 정수중의 정수인 것이다.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이 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작업인 가는, 때로 이 문장은 브랜드와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에 있어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닌 무엇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가의 기준이 되어 주기 때문 일 것이다.
나는 스타인 웨이의 브랜드 선언 문구 속에서 ‘가능한, possible’이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걸렸다. 최고의 피아노를 만들겠다는 의지는 이 단어 없이도 충분한 의미전달이 가능 함에도 왜 굳이 ‘가능한, possible’이라는 말을 사족처럼 붙였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들은 “가능한 ‘ 최고의 피아노를 만드는 작업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고 싶었던 걸까?
고전음악시대 위대한 작곡가이자 연주가로 악성(樂成)이라고도 칭해지는 베토벤은 사실 평생을 걸쳐 자신을 괴롭힌 신체적 고통과 인간적 불행을 음악을 통해 극복하고자 고군분투했던 한 인간에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당시 최초로 궁정이나 귀족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로서 작곡과 연주활동을 하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가계부를 작성하기도 한, 현실에 발을 딛고 적극적으로 삶을 꾸려나간 한 음악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인생에서 도달하고자 하였던 목표점은 임마누엘 칸트의 핵심적 사상으로 표현되는데,“하늘에는 반짝이는 별이, 내 마음속에는 도덕의 원칙이”가 바로 그것이다. 베토벤은 이 문구를 아주 좋아하여 가까운 곳에 적어놓고 틈날 때마다 곱씹었다고 한다.
칸트와 베토벤은 공통적으로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별의 경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하기에 인간이 마땅히 행해야 하는 의무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인간의 자율 의지에 따라 스스로의 삶의 루틴을 세우고 꾸준히 행함으로써 존재하지 않는 “최고의 선”에 무한히 접근해 가는 것이 모든 유한한 이성적 존재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가능하지 않은 이상향 일지라도 마땅히 노력해 나갈 필요와 또한 그럴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음을 명확히 했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그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묵묵한 의지는 그래서 더 숭고하고 위로가 되는 것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는지와 관계없이, 인간이라면 이러한 숙명을 받아들여 깊게 추구하고 몰입함으로써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기쁨을 알게 된다.
스타인웨이의 브랜드 선언문 속 ‘가능한, possible’이라는 한 단어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은 아마도 피아노를 만들어내는 장인들에게 완벽함의 경지에 대한 경외함과 겸손함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은 불완전함의 아름다움(beauty of imperfection)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칸트의 말처럼. 그들은 하늘 위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별들을 경외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현실의 고난의 과정을 기꺼이 견뎌낼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내가 성취할 수 있는 가능한 최고의 결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정신, 그것이 스타인웨이 정신이다. 오늘도 독일 함부르크와 미국 뉴욕에서 11개월이라는 시간을 들여 1대의 피아노를 수작업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세계 최고의 스타인웨이 장인들이 가지고 있는 겸손함은 ‘나의 가능한 최선 possible‘이라는 단어를 통해 더욱 숭고하게 느껴진다.
이따금 일상을 헤쳐 나가는 것이 버겁고 숨고 싶을 때, 내가 의식적으로 꺼내보는 두 개의 유튜브 동영상이 있다. 하나는 김연아 선수의 2018년 밴쿠버 올림픽 결승 퍼포먼스이고 또 하나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파이널 연주이다. 두 사람의 퍼포먼스는 언제나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동시에, 한껏 무기력함에 짜부라져 있는 내 정신머리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고 가던 길 마저 가라며 어깨를 눈짓을 해준다 (그리고 영상마지막에 나는 높은 확률로 항상 운다)
김연아와 조성진, 스포츠와 음악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는 걸까. 그건 아마도 불가능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이들에 대한 숭고함과 존경이 아닐까 한다. 끝을 알 수 없는 고통과 일상의 지난함을 견뎌내면서 동시에 절대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과정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혼신의 힘을 쏟은 후 표현된 결과적 아름다움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삶의 아이러니에 대해 관조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깜빡하면 우리는 멋진 퍼포먼스와 조성진 또는 김연아 선수의 얼굴에 띈 세상 온화한 미소로 인해 외롭고, 고통스럽고, 지난한 과정을 쉽게 간과하기 때문이다. 결과물이 아름답다고 그 과정이 아름다울 수는 없는 것처럼. 어떤 면에서는 스포츠와 음악가의 삶이 비슷한 것 같다. 특히, 하루하루의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단련하며, 수많은 유혹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오직 아름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해 골몰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 두 개의 영상이 나를 진정으로 위로하는 포인트는 바로 그 지점, 아름다움의 그 이면에 있다. 화려한 무대 뒤로 빼곡히 쌓여있는 하루하루의 꾸준함, 버티는 힘.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는 이 길을 홀로 껴안고, 결국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맞서고 버티며 지속해 나가는 힘. 이것은 나에게 강력한 삶의 레퍼런스가 되어 준다. 불확실함을 밀어내고야 마는 일상의 가늘고 긴 동력. 그렇게 나는 그들이 보낸 그 지난한 하루하루를 떠올리며 내 일상을 다잡는다. 그래, 그저 오늘을 잘 보내는 것으로 하자. 멀리 보지 말고 내 발끝의 움직임만을 믿으며 오늘도 그렇게 소중히 보내다 보면 나 또한 어딘가에 도달하고 있겠지. 하고 말이다.
작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스타인 웨이는 피아노 연주를 사랑하는 일반인들을 위해 아마추어 피아노 콩쿠르를 개최했다. 음주가무의 강국인 한국답게 어쩜 그렇게 피아노 잘 치는 사람들이 많은지 참 신기할 따름이다. 첫 대회를 우승하신 분은 금빛 로고가 빛나는 스타인 웨이 피아노에 앉아 쇼팽의 발라드 4번을 프로 피아니스트처럼 연주했다. 카이스트 박사님이시라고 하는데 아니 박사님이 피아노까지 이렇게 잘 칠 일인가 싶지만, 그에게도 지난한 훈련의 과정은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역시 확신 없고, 지난한 과정을 홀로 건너온 숭고함을 지닌 사람이다.
언젠가 나도 저 스타인웨이 피아노에 앉아, 나만의 고유한 소리를 만들어 들려줄 수 있는 날이 올까. 역시나 꿈이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말로 환상적인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