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맛이 제일 무섭다

엄마표 김치찌개, 커피, 90년대 발라드, 말보로 그외 다수.

by 주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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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터널의 끝, 저 멀리 한 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지금이다. 핸들에 살포시 얹힌 채로 왼손의 현란한 핸들링을 ‘거들 뿐‘이던 내 오른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나는 방금, 출근 전 원격으로 커피를 주문할 수 있는 2km 반경에 진입했다. 잽싸게 스O벅스 어플을 연다. 이제는 거의 무의식 반자동으로 실행되는 이 5번의 클릭 프로세스를 끝으로, 나의 출근 루틴이 완성된다.


“조디님의 주문을 17번째 메뉴로 준비 중입니다”


메시지가 뜬다. 나쁘지 않다. 오늘은 그래도 20번째 안짝으로 들어왔다. 나이스.


나는 거의 매일, 꽤 많은 양의 커피를 마신다. 하루에 대용량 벤티 사이즈 컵을 두 잔도 마시곤 한다. 첨가물 없는 블랙이다. 사람들은 무슨 커피를 그렇게 전투적으로 먹느냐, 좀 줄이라는 조언을 하기도 하지만 딱히 그럴 필요는 못 느낀다. 커피 좀 못 마셨다고 사람을 ‘해칠’ 정도의 중독은 아니니까. 대부분 무언가를 시작할 때, 예를 들면 아침 출근길이나 새로운 업무로 넘어가는 경계마다 거의 마시는 편인 것 같다. 작업의 풍년을 비는 농부의, 아니 사무실 도비의 작은 ‘무의식적 의식’ 같은 걸까.


그런 순간에, 나에게 가장 필요한 커피는 세상에 없던 최상의 맛이 아닌, 내가 아는 예측 가능한 맛을 가진 한잔이다. ‘오늘도 무사히’를 외치는 순간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은, 불필요하고 본질적이지 않은 변수들을 예상하는 일이다. 이때, 실망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 최악을 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최상의 경험을 얻어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내가 기대한 딱 그만큼의 온도와 농도의 카페인이 내 입안에 퍼지는 것을 느끼며, 시작하는 마음을 가지런히 고른다.


한때 나에게도 맛있는 커피를 찾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면 그 지역의 유명한 원두들을 공수해 오기도 하고,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하는 핫한 카페들 원정을 다니기도 했다. 커피를 마실수록 시큼쌉쌀한 다양한 맛에 반응하는 혀가 학습되는 느낌도 신기했다. 왠지 내가 조금 고급스러운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새로운 쾌락은 오래가지 못했다. 기대를 가지고 어렵게 찾아간 소문난 집 커피가 예상외로 맛없는 때도 많았고, 내가 집에서 내려 먹는 커피는 그때그때 맛이 달랐다. 돌아보면 그 수많은 훌륭한 원두들에 몹쓸 짓도 참 많이도 했다. 무엇보다 내가 먹고 싶을 때 바로 이용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모든 기깔나게 맛있고 핫한 커피들은 내 생활의 일부가 되지 못했다. 결국 나에게 필요한 건 내가 원할 때 마실 수 있는, 나의 루틴을 지켜주는 적정하고 균일한 맛의 커피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보통의 아메리카노로 돌아왔다.


“좋아하는 것을 해줄 때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을 때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광고문구 중 하나다. 이제 벌써 10년도 넘은, 두산의 ‘사람이 미래다’ 시리즈. 나는 오랫동안 이 문구가 인간관계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준다고 생각했다. 내 주변에 함께 오래가는 관계들을 보면, 각자의 강점과 취향이 다를지라도 특별히 싫어하는 것 ( 또는 혐오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면 그 만남은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나는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 길에 침 뱉는 사람과는 조용히 손절하는 편이다. 누구나 그런 포인트가 한둘씩 있을 것이다. ‘제발 이것만 하지마’ 라는 누군가의 최소한의 부탁을 끝까지 지킬수 만 있어도 수많은 ‘손절사태‘는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결국엔,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익숙한 것들이 일상을 지탱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최상의 것만을 추구하며 살기에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길고 또 고단하다. 이미 충분한 모험과 놀라움 속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쳐내며 살고 있지 않은가. 매일이 경이로움의 연속이라면, 나의 멘탈은 과부하로 인해 진작에 바사삭 소멸해 버렸을 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놀라움은 나를 다른 경지로 이끌지만, 그 틈새로 듬성듬성한 나의 멘탈과 육신을 채우고 위로하는 것은 내 목 높이에 딱 맞는 배게, 마감에 쫒기는 나에게 친구가 보내주는 무한도전 짤 하나, 그리고 반찬 잘하는 집의 저렴한 점심 백반상 같은 것들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묵묵히 맡겨진 기대치를 충실히 수행해 내는 것들에 의해 우리의 일상은 유지된다. 신뢰할 수 있는 ‘적정 만족감’이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


내가 한창 커피에 관심을 쏟을 때 구매했던 커피 드립용 케맥스 보틀이, 현재는 와인 디켄터로 절찬리에 사용되고 있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또 다른 새로움으로 끊임없이 전이되고, 이전 것은 금세 잊혀지는 듯하다. 오랜 시간 동안 기꺼이 내 주변에 남아준 이들이 고마운 이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익숙한 맛’의 몇 명이 떠오른다. 그들이 나에게 그렇듯, 나도 그들에게 그런 ‘익숙한 맛’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은근하고 느슨하고, 부침없이 그렇게 오래오래 옆에 있고 싶다.


어쨌든 간에, 익숙한 맛이 제일 오래가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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