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메모해 둔 그날 밤의 기억을 소환했다. 오로라를 보았다고 믿었던.
나는 오로라를 그리워한다.
오래전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오로라를 처음 보았다. 초록의 영원 같은 빛이 곡선과 직선을 반복하며 하늘의 춤을 추는 광경. 그 거대한 빛 움직임을 몇몇 관광객 무리가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지켜보는 무리의 왜소함과 그 위로 하늘을 가득 메운 오로라가 대비되어 매우 압도적인 장면이 연출 되었다. 마치, 우주 저편에 존재하는 또 다른 평행 세계의 언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처음 ‘오로라’를 마주했던 경험은,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11번 고속도로 위에서였다. 10월 첫 주, 우리는 그해의 마지막 캠핑을 하기 위해 알곤퀸 공원으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어둠이 물기를 머금고 사방으로 뿜어내는 듯한, 축축한 늦가을 밤이었다. 일정한 타이어의 움직임과 시끄러운 엔진 소리가 유일하게 우리를 위안하는, 가로등 하나 없는 심야 고속도로를 우리는 벌써 두 시간째 달리고 있었다. 야생동물 주의 표지판이 계속해서 등장했다. 뭐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단 생각에 우리 모두는 긴장을 늦출수 없었다.
한국보다 101배나 더 큰 면적안에, 훨씬 적은 사람들이 사는 캐나다는 그야말로 거대한 공백의 땅과도 같다. 토론토 시내는 그런 느낌이 좀 덜 하지만 삼사십 분 정도만 북쪽으로 운전해 올라가도, 금세 인적이 드문 끝없는 평원이 펼쳐졌다. 대자연은 아름답고 경이롭지만, 인간을 한없이 왜소하고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살았던 곳은, 도심의 북쪽 경계 위로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한 마을이었다. 한 시간에 한 대씩 버스가 도착했다. 유학 생활을 막 시작한 나에게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란, 우리나라에서 보다 101배는 더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잠시 졸았던 것 같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내가 눈을 떴을 때, 저 멀리 아득한 타원의 빛 기둥 같은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야, 일어나봐. 저거 그거 아니야? 오로라?”
오로라 맛집이라는 캐나다에 몇 년을 살았어도, 실제 본 적은 없는 바로 그 오로라. 같은 나라 안이라고 해도 세 시간은 족히 비행기를 타야 영접할 수 있는 매우 귀하신 존재.
차가 점점 가까워지며 불빛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가 본 것은 오로라가 아니다. 그것은 끝없이 펼쳐진 평원 사이, 외롭게 자리 잡은 마을과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 그들을 끌어안고 춤을 추는 인공 불빛 기둥이었다. 외롭고 불안한 마음을 품은 여행자들에게, 빛의 막으로 감싸진 마을의 평온한 밤은 마치 다른 세계의 일처럼 느껴졌다. 운전하는 내내 신비롭고 따뜻한 불빛. 그런 오로라 아닌 오로라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촌스러운 것들”
“야, 한국 살면서 한라산 안가 본 사람도 많아.”
너도나도 전부, 오로라를 TV로 배운 수준들임을 확인하고 낄낄댄다. 정적이 흐르던 차 안이 잠시 시끌벅적하다.
결국, 그날 밤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숙소를 찾았다. 고속도로 길가에 있는 허름한 모텔이 우리를 품었다. 더 운전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었다. 우리는 씻지도 않은 채, 여기저기 침대로 바닥으로 되는대로 누웠다. 방 불을 끄자 달리는 차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시 정적이 흘렀다. 길 옆 고속도로의 화물차 지나가는 소음이 방음 없는 창과 벽을 뚫고 거칠게 들어왔다. 문득, 내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무서운 마음이 든 나는, 누워있는 친구의 몸이 닿지 않을 만큼의, 그러나 가장 가까운 위치까지 몸을 밀착하고는 그 뒤통수를 한참 쳐다보다가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길고 긴 밤이었다.
정작 캠핑장 도착 후, 본격적으로 놀았던 기억은 얼마 나지도 않는다. 먼저 와 있던 무리에 합류해서 고기를 구워 먹고, 카누도 탔던 것 같다. 시간이 흘렀다. 우리 모두 졸업을 하고. 누군가는 캐나다에 남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첫 1~2년 정도는 연락을 유지하려 나름 노력했지만, 점차 삶의 모습이 달라지고 알지 못하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가끔 접하는 SNS 소식도 이미 드러난 것보다 더 깊게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고속도로는, 이곳도 저곳도 아닌 ‘무국적의 공간’이다. 속한 곳을 떠나, 앞으로 가고자 하는 또는 가야만 하는 곳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유예의 상태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곳에서는 막연한 두려움, 초조함, 조바심 같은 것들이 붕뜬 상태로 여행자의 마음을 재촉한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나는 가끔. 그날 11번 고속도로에서 보았던 인공의 ‘오로라’를 떠올린다. 끝이 보이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도로를 달리며 느꼈던 초조함과 두려움들에 대해 또렷이 기억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불안했던 내 이십 대. 그날의 불빛 기둥은 내가 관통해온 수많은 어두운 밤들 중 하나의 상징으로 남았다. 항상 멀리 떠나왔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날 예고 없이 소환되는 밤. 그립고 애틋하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그런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