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2 오타루 마사즈시 초밥의 맛
밤늦게까지 숙소에서 삿포로 맥주를 엄청나게 들이부었다. 여행 첫날이라 설레기도 했고, 삿포로에서 삿포로 맥주를 마신다는 것 자체가 뭔가 더 맛있는 기분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창문을 여니 찬 바람이 얼굴에 살짝 묻어났다. 밖은 고요하고 분주했다.
조식을 대강 먹으며 점심을 기대했다. 점심 메뉴는 초밥이었다. 그것도 《미스터 초밥왕》(원제: 将太の寿司, 쇼타의 초밥)에 영감을 주었다는 마사즈시(政寿司)에 가기로 했다. 마사즈시는 홋카이도 오타루에 본점을 둔 초밥집이다. 1935년에 처음 문을 열었고, 지금은 3대째 가업으로 운영 중이다. 홋카이도산 해산물 중심의 정통 에도마에 초밥이 메인이다.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 테라사와 다이스케는 작품 구상을 위해 일본 각지의 초밥집을 취재했는데, 마사즈시 본점도 실제로 방문했다. 이곳에서 초밥을 먹고 오타루의 초밥 거리를 상상하면서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만화와 공식적인 라이선스나 컬래버레이션 관계는 아니다. 식당은 단순히 작품의 모티브 정도 됐을 뿐인데, 여기 사장님이 이걸 마케팅으로 기가 막히게 잘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미스터 초밥왕》 팬들 사이에선 이곳에서 초밥을 먹는 게 일종의 성지순례처럼 여겨지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오타루는 삿포로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인구 11만 명 내외의 작은 도시다. 과거엔 꽤 큰 도시였다. 홋카이도 개척 시대 때 바다 가까이에 탄광이 있었고, 운하를 중심으로 무역과 수산업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지금은 운하의 가스등과 오르골 등으로 낭만적인 관광지가 됐다. 1990년대 영화 《러브레터》와 조성모 뮤직비디오 <가시나무> 촬영지로 국내엔 잘 알려졌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어업 수역 규제 때문에 초밥 업계도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오타루는 해산물이 풍부했지만, 그 자원을 잘 활용하질 못했다. 마사즈시의 2대 사장은 생각을 바꾸어 초밥의 대중화를 꾀했다. 단골손님을 만들기 시작했고, 메뉴와 가격을 보기 좋게 꾸몄다. 그러자 건물의 높이도 높아졌다. 물고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창업주의 신념에 따라 지금도 물고기 공양 행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 오타루 초밥집 거리 위원회를 만들어 상생을 도모 중이다. 게다가 사내 초밥 기술 대회 등 자체 프로모션도 연다. 마사즈시의 이러한 노력은 이 지역의 초밥 대중화를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오타루에도 큰 힘이 되고 있다.
마사즈시의 입구에 들어서자 《미스터 초밥왕》 포토존이 먼저 반겼다. 건물은 총 4층인데, 1층은 바, 2~4층은 연회장과 홀이 마련돼 있다. 마사즈시는 오타루 본점 이외에도 도쿄(긴자·신주쿠), 나고야 사카에, 심지어 태국 방콕까지 매장을 확장 중이다. 식당 안은 꽤 조용하다 못해 고즈넉했다. 초밥을 만드는 장인들의 움직임만 분주했다. 한국어로 적힌 메뉴판이 있어 주문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가장 잘 나가는 메뉴인 4,320엔짜리 세트(2018년 1월 당시)를 주문했다. 초밥 10개가 영롱한 빛깔을 뿜어냈다. 참치 뱃살과 옆구리살, 연어, 가리비, 대게, 성게, 연어알, 제철 흰살생선 등이 어우러져 나왔다. 서빙하는 스태프는 사진을 찍어 소셜 네트워크 계정에 올려주면 초밥 하나를 더 준다고도 했다. 주방장은 캐나다 근해에서 잡은 참치와 특대 작약 새우를 추가로 추천해 주었다.
하나하나 조심스레 입안으로 넣었다. 씹을 필요는 없었다. 입안에 머금고 있으면 잠시 뒤에 다 녹아 없어졌으니. 초밥 10개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일본어 중에 ‘우마미(旨味, Umami)’라는 단어가 있다. 맛있고 고소한 맛 혹은 풍부하고 깊은 맛을 뜻한다. 예를 들어 다시마나 멸치 육수의 국물 맛이나, 된장국의 구수함 등에서 이러한 우마미가 난다. 이걸 우리말로 ‘감칠맛’이라고 한다. 감칠맛은 단순한 짠맛과 단맛을 넘어 맛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초밥을 하나 입에 넣으면, 생선의 이노신산, 간장과 다시마 속 글루탐산, 밥의 아미노산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폭발적인 감칠맛을 만들어낸다. 이 맛을 숙련된 장인이 정성스레 만들었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지 않은가.
초밥이란 걸 처음 먹었던 건 대학교 때였다. 그것도 초밥집이 아니라 누군가가 해산물 뷔페에 데려갔는데, 그 식당에서 인생 첫 초밥을 먹었다. 그저 그랬다. 1990년대 《미스터 초밥왕》의 인기로 초밥에 대한 인지도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초밥이 지금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메뉴는 아니었다. 뷔페를 제외하고 지금이나 그때나 초밥이란 건 고급 요리에 속하지 않을까?
그러다 일본 도쿄에서 제대로 된 초밥을 맛봤다. 한여름의 도쿄는 살벌하게 뜨겁고 습하다. 걷다가 너무 더워 눈에 보이는 쇼핑몰로 들어갔다. 이름도 기억 안 난다. 허기보다 갈증이 먼저였다. 시원한 생맥주를 시키면서 끼니를 때울 겸 초밥을 주문했다. 정통 초밥집은 아니었고, 이것저것 파는 식당이었다. 그런데도 그때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아찔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맥주와 초밥은 내가 무척 애호하는 조합이다. 그 이후로 일본에 갈 때마다 그 지역에서 인기 높은 초밥집은 꼭 들렀다 오려고 하는 습관이 생겼다. 초밥을 좋아하게 됐다.
좋아는 하지만 선뜻 손 내밀기가 쉽지 않은 게 또 초밥이다. 특히 회전 초밥집을 가면 접시 색깔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맛있어 보이지만 저 접시 위에 놓인, 손가락만 한 녀석이 한입에 1만 원이라면 망설여진다. 그래서 달걀 초밥을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좋아하기도 하고. 언젠가 구로에 있는 한 회전 초밥집에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게 초밥집에 가서 접시 색깔 상관없이 먹고 싶은 대로 손에 집히는 대로 먹어보고 싶다고. 초밥은 어느새 내 꿈의 일부가 됐다. 수년이 지난 지금, 그 꿈은 이뤄졌을까?
Jan,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