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위스키의 시작, 나도 시작

일본 #3 나는 이때부터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했다

by 조디터 Joditor

1918년, 다케츠루 마사타카(竹鶴政孝)는 스코틀랜드로 건너갔다. 목표는 명료했다. 진짜 스카치위스키를 일본에서도 만들어 보겠다는 것. 그는 글래스고 대학과 로열 테크니컬 칼리지에서 청강하며 유기화학, 발효학, 양조학 등을 공부했다. 캠벨타운과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여러 증류소에서 인턴으로 실무 경험도 쌓았다. 특히 헤이즐번(Hazelburn Distillery)에서 몰트위스키 제조 기술도 배웠다. 다케츠루 집안은 일본 전통주 양조업을 했다. 그래서 그는 어려서부터 술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풍부했고, 꿈이 있었다. 그 뜨거움과 간절함은 캠벨타운에 사는 한 여성의 마음을 녹였다.


리타 코완(Rita Cowan)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생계를 위해 하숙집을 운영했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한 유학생이 왔다. 그는 진짜 스카치위스키를 만들어 보겠다고 이곳 멀리 왔다고 했다. 두 사람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남녀가 가까워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고, 비밀 결혼식을 올리고, 비극을 맞이하기까지 총닷새가 걸렸다. 마사타카와 리타는 1920년 가족과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일본은 국제결혼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여성의 해외 이주는 더욱 그러했다. 파격에 파격을 더한 사건이었다.


둘은 오사카로 돌아왔다. 마사타카는 지금의 산토리 전신인 고토부키야(壽屋)에서 공장장 겸 엔지니어로 일하기 시작했다. 1924년, 일본 최초의 위스키 증류소가 지어졌다. 그게 지금의 야마자키 증류소다. 10년 뒤 둘은 홋카이도로 이주했다. 스코틀랜드와 기후가 비슷해 진짜 스카치 위스키를 만들기에 적당하기도 했다. 또한 리타의 향수를 달래기에도 좋았다. 1934년 홋카이도 요이치에 대일본과즙(大日本果汁) 주식회사가 설립됐고, 위스키 증류소가 만들어졌다. 니카 위스키는 이 회사명(다이닛폰카주)에서 따왔다. 애초 주류 회사가 아니라 주스 회사처럼 이름을 지은 건 당시 일본 정부가 위스키 산업을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 그리고 위스키가 숙성될 동안 실제로 그 지역 사과를 활용한 주스와 잼, 사이다 등을 팔며 버티기도 했다.


눈이 모든 세상을 지배했던 어느 날, 홋카이도 요이치 증류소를 찾았다. 스코틀랜드 증류소와 비슷하게 석조 건물들이 여럿 보였다. 이제 저 건물들도 곧 100살이 다 되어 갈 터. 증류는 전통 방식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석탄을 보았다. 니카 위스키는 석탄 직화 증류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화력을 조절하는 게 만만치 않다. 삽으로 불 조절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숙련된 장인이 필요하다. 이는 니카 위스키 특유의 중후한 맛과 향을 내는 비결이기도 하다. 마사타카는 스코틀랜드 롱몬(Longmorn) 증류소에서 처음으로 실습했는데, 그곳의 시스템을 그대로 본떴다. 술은 어디에 어떻게 담아두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요이치 증류소에선 오크통 안쪽을 불로 한 번 태운다. 그러고 술을 담으면 나무의 향이 위스키 안으로 은은하게 스며든다. 위스키의 스모키한 맛이 이때 배어든다. 나무판 사이는 부들잎을 끼워 넣어서 통의 견고함을 더한다. 위스키가 새는 걸 막아준다. 이 모든 걸 다 수작업으로 만든다. 위스키는 오랜 기다림의 산물이다. 이제 막 증류된 투명한 액체는 오크통 안에서 오랫동안 영혼을 키운다. 잡내를 없애고 맛과 향에 원숙미를 더한다. 이때 중요한 게 바로 온도와 습도다. 기온이 높고 건조하면 수분 증발이 많고 숙성 속도가 빠르다. 블라디보스토크와 비슷한 위도에 있는 요이치는 사계절 내내 춥거나 서늘해서 위스키를 천천히 숙성하는 데 아주 최적이다. 창문이 없는 저장고는 여름에도 서늘한 공기로 채워져 몰트위스키는 서서히 중후하게 익어간다.


‘몰트’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몰트(Molt)는 발아시킨 보리를 말한다. ‘맥아’라고도 한다. 술의 기본은 알코올이다. 알코올은 당분을 발효시켜 만든다. 그런데 주원료인 곡물(주로 보리나 쌀)은 대부분 전분이다. 이 전분을 당분으로 바꿔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보리를 물에 불려 싹을 틔운 다음, 다시 말린다. 이때 아밀라아제가 활성화된다. 이 효소 덕에 보리 속 전분이 당분으로 분해된다. 이 당분을 효모가 먹고 알코올로 바꿔준다. 위스키와 맥주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막걸리는 보리 대신 쌀과 누룩을 쓴다. 와인은 포도가 주원료인데 원체 당이 많아 몰트나 효소 같은 게 필요 없다.


‘싱글 몰트’라는 단어도 들어봤을 것이다. 단일 국가, 단일 증류소에서 100% 몰트 보리를 사용한 위스키를 말한다. 하나의 숙성 통에서 뽑은 건 ‘싱글 캐스크’라고 따로 부른다. 싱글 몰트는 대량 생산이 어렵고, 효율도 낮고, 숙련된 인력이 필요하다. 몰트 보리는 생산, 저장, 취급도 까다롭다. 숙성 기간도 길고, 숙성 손실(엔젤스 셰어, Angel’s Share)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기술력과 철학이 제대로 갖춰진 증류소만 도전할 수 있다. 니카 위스키의 ‘싱글 몰트’ 시리즈에는 이러한 가치가 응축된 엑기스가 담겨 있다.


저장소 맞은편엔 박물관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선 다케츠루 부부의 발자취와 니카 위스키의 역사, 세계의 증류소 종류 등을 전시 중이다. 거의 니카 위스키의 홍보 전시물로 가득하다. 바에선 다양한 위스키를 유로로 맛볼 수도 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2001년 영국의 <위스키 매거진>이 주최하는 위스키 테이스팅 대회에서 '싱글 카스크 요이치 10년'이 전 세계 47개 브랜드 중 최고 득점을 얻었다는 것. 일본 위스키가 세계 대회에서 1등을 한 건 이때가 최초라고 한다. 종주국을 제치고 아시아에서 최고점이 나왔다는 점은 박수!


리타는 1961년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마사타카의 사업을 내조했다. 니카 위스키 초창기의 숨은 원동력이었다. 지역 주민들은 그녀를 ‘리타상’이라고 부르며 따뜻하게 대했다. 리타는 마사타카를 ‘마사상’이라고 불렀다. 2014년 NHK의 아침 드라마 <마사상(マッサン)>은 이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마사타카는 리타가 떠나고 남은 생애 동안 그녀를 그리워하며 살았다. 1979년, 마사타카도 그녀의 곁으로 갔다. 두 부부는 현재 증류소 근처에 함께 잠들어 있다.


위스키가 본격적으로 좋아진 게 아마도 이때부터였다. 그전까지는 접할 기회도 별로 없었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어떻게 마시는지도 몰랐다. 그저 소주였지. 니카 위스키를 시작으로 면세점에 들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습관처럼 한 병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싼 것도 마셔보고, 비싼 것도 마셔보고. 마시는 행위 자체가 술이 품어온 시간을 여행하는 것과 같다. 각각의 위스키는 서로 다른 미각과 향을 선사한다. 혼자 마셔도 좋고, 좋은 사람들과 같이 나눠도 좋다. 집에 귀한 손님이 오게 되면 꼭 새것을 딴다. 한 병을 다 비워야 갈 수 있다. 바에서 마시게 되면 말수가 적어지지만, 깊이 있는 대화의 문을 열어준다. 이야기의 농도가 짙다. 고등학생 때 멋모르고 마셨던 캪틴큐도, 대학생 때 겉멋에 마셨던 J&B도 그러했다.


Jan,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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