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12 파리를 떠났다
파리에서 한 달가량 거의 쉬지 않고 일한 우리는 귀국을 앞두고 휴가를 가기로 했다. 우선 파리를 뜨기로 했다. 카메라도, 노트북도 켜지 않기로 했다. 이메일은 열어보되 급한 건이 아니면 답장을 미루기로 했다. 그렇게 파업 같은 휴가를 즐기기 위해 우리는 노르망디로 떠났다.
어디로 갈까 하다 파리지앵의 휴양지로 손꼽는 도빌(Deauville)로 향했다. 도빌은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파리에서 서쪽으로 약 200㎞ 거리에 있는 휴양 도시다. 19세기 후반 파리 상류층이 바다 휴양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개발된 곳. ‘파리지앵의 바닷가 정원’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고급스러운 리조트와 카지노, 경마장, 요트 등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많은 프랑스인들이 주말과 휴가철에 많이 찾는다.
해안가로 들어서자 길게 뻗은 모래사장과 알록달록한 파라솔이 한눈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플랑슈(Les Planches)라고 불리는 목조 덱 산책로가 해안을 따라 길게 늘어져 있다. 이 판자 산책로는 1860년부터 이어온 도빌의 명물 중 하나다. 모든 해변에는 풍경을 편안하게 감상하며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산책로가 필요하다. 그 길은 그 해변의 동맥과 같다. 플랑슈는 이러한 해변 산책로의 목적을 적확하게 수행 중이다. 나치 독일이 노르망디에 상륙할 당시 산책로의 판자들은 뜯겨 참호를 만드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이후에는 ‘철목’이라고 부를 정도로 튼튼한, 카메룬산 아조베 나무로 다시 길을 조성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벨 에포크 양식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도빌 카지노는 이곳의 랜드마크다. 벨 에포크(Belle Époque)란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을 뜻한다. 대략 1871년(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이후)부터 제1차 세계대전(1914년) 직전까지 40여 년의 기간이다. 유럽, 특히 프랑스가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안정되고 번영했던 시기다. 예술·건축·패션·과학도 활발하게 발전했다. 파리 만국박람회, 에펠탑 완공, 영화·자동차·비행기 발명 등이 모두 이때 이뤄졌다. 양식 자체가 매우 낙관적이고 풍요롭고 화려하다. 당시의 번영을 짐작할 수 있다.
도심의 분위기를 이루는 벨 에포크 양식 덕에 거리는 부촌에 온 듯한 느낌이다. 시골인 줄 알았는데, 샤넬·루이비통·에르메스 같은 브랜드의 쇼윈도가 해안 도시 특유의 밝은 햇살을 받아 더욱 빛나고, 그 앞을 걷는 사람들조차 하나의 패션 화보처럼 보인다. 실제로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도빌에 첫 부티크를 열었다. 해변과 이어지는 산책로에서부터 도심의 골목까지, 곳곳에는 카페 테라스가 자리 잡고 있는데, 파리지앵과 휴양객들은 바닷빛 칵테일이나 진한 에스프레소를 즐기며 한껏 여유를 만끽 중이었다. 은은한 재즈 선율이 들려오는 카페 앞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하고, 바다와 도시가 만나는 경계에서 도빌만의 낭만과 품격이 함께 어우러진다.
며칠 동안의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까르푸로 갔다. 지역이 달라서인지 파리의 디스플레이와 사뭇 달랐다. 카망베르·브리·리바롤 등 크리미한 치즈와 홍합·굴 같은 해산물, 칼바도스·시드르 같은 사과 베이스의 술들이 보였다. 모두 이 지역 특산품이다. 그만큼 신선하리라 믿고 몽땅 카트에 쓸어 담았다.
우리는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 널찍한 집을 한 채 빌렸다. 3층 다락방에 정원까지 쓸 수 있는 집이었다. 단언컨대, 이 집은 내가 여행하며 머물렀던 숙소 중 여러모로 으뜸이다. 어쩌면 그 공간보다 그 집을 둘러싼 노르망디의 정취가 좋았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때 같이 머물던 동료들과의 추억이 좋았을 수도 있다. 이 집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장에.
Sep,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