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 미술관에서 도난당했다

프랑스 #21 내 마음을

by 조디터 Joditor

고흐와 모네의 작품을 보기 위해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을 찾았다. 센강을 따라 걷다 보면, 한때 기차역이었던 이 웅장한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철제 아치와 유리천장이 어우러진 외관은 묘하게 과거와 현재가 겹쳐 보이는 풍경이었다. 시간을 품은 공간, 그곳에서 예술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조각 작품들이었다. 쥘 카블리에(Jules Cavelier)의 ‘그락쿠스의 어머니 코르넬리(Cornélie, mère des Gracques)’, 앙투안 루이 바리(Antoine-Louis Barye)의 ‘기마상 나폴레옹 1세(Napoléon Ier à cheval)’. 단단한 대리석과 청동의 표면 위로 빛이 흘렀다. 그 빛은 조각의 윤곽을 따라 부드럽게 번져나가며,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듯했다.


지붕 위로 투명한 유리 천장을 통해 파리의 햇살이 쏟아졌다. 시간을 잊게 만드는 빛의 향연이었다. 그 한가운데, 황금빛을 내는 거대한 시계가 걸려 있었다. 한때 열차의 도착을 알리던 시계는 이제는 예술의 시간을 고요히 지키고 있다. 사람들은 그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 그 순간을 남긴다. 시계는 멈추지 않았지만, 그 아래에 선 사람들의 시간은 잠시 멈춘다.


한쪽 전시실에서는 샛노란 루이비통 티셔츠를 입은 인물이 눈길을 끌었다. 기괴한 포즈로 누워 있는 여성의 모습. 케힌데 와일리(Kehinde Wiley)의 ‘뱀에게 물린 여인(Femme piquée par un serpent)’이었다. 고전 회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오르세의 전통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어울렸다. 화려한 색감과 자신감 넘치는 인물의 시선은, 예술이 시대를 넘어 계속 변주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듯했다.


조각 작품들 앞에는 스케치북을 들고 앉아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각자의 시선으로 예술을 해석하며, 손끝으로 형태를 좇았다. 그들의 눈빛은 작품보다 더 진지했다. 예술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사람의 눈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잠시 그들의 시간에 머물렀다.


근처에는 빅토르 나블레(Victor Navlet)의 ‘파리 천문대에서 바라본 도시 전경(Vue générale de Paris depuis l’observatoire)’이 걸려 있었다. 거대한 캔버스 속에 펼쳐진 19세기의 파리는 지금보다 훨씬 평온하고, 인간적인 스케일을 가진 도시였다. 발밑으로 흐르는 파리의 골목과 강이 마치 그림 밖으로 이어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세계의 네 부분(Les Quatre Parties du Monde)’이라는 조각 작품은 그 규모와 구성으로 관람객을 압도했다. 조반니 지아네세(Giovanni Gianese), 에르콜레 보르사니(Ercole Borsani), 아메데오 브로글리(Amedeo Brogli)가 제작하고, 리샤르 페뒤지(Richard Peduzzi)가 예술감독으로 참여한 작품이었다. 그 정교한 디테일 앞에서 인간의 손이 만들어낸 예술의 위대함을 실감했다.


한참을 걷다가, 드디어 눈앞에 나타났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의 ‘풀밭 위의 점심(Le Déjeuner sur l’herbe)’. 수없이 책과 영상으로만 봤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마주하니 전혀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그림 속 나체의 여인은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관람객인 나를 향하고 있었다. “당신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녀의 눈빛은 그렇게 묻고 있는 듯했다. 마네의 혁신적인 시도는 당시의 사회에 충격을 주었지만, 지금은 그 용기와 시선이 새로운 미학의 시작으로 평가받는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앞을 떠나지 못했다.


모네(Claude Monet)의 작품들이 이어졌다. ‘아르장퇴유의 보트 경기(Régates à Argenteuil)’, ‘야외 인물화의 습작(Esquisses préparatoires pour les figures en plein air)’, ‘아르장퇴유의 다리와 배들(Le Pont d’Argenteuil et les barques)’. 그의 그림 속 빛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을 머금고 있었다. 햇살이 물결 위에 부서지는 순간, 그 흔들림마저 하나의 색으로 포착해 냈다. 화면을 가득 채운 푸른빛과 노란빛은 파리의 여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아르망 기요맹(Armand Guillaumin)의 ‘발위베르 광장(La Place Valhubert)’ 역시 인상적이었다. 붓질이 거칠지만, 그 안에 담긴 리듬은 도시의 숨결 같았다. 그의 색은 모네보다 강렬했고, 세잔보다 따뜻했다.


미술관의 레스토랑조차 예술적이었다. 높은 천장, 부드럽게 반사되는 조명, 금빛 장식. 그곳에서 스테이크와 와인을 천천히 즐기며, 프랑스 사람들이 왜 식사에 그렇게 정성을 쏟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디저트 — 프랑스에서는 이를 생략하면 식사가 완성되지 않는다고 했다. 케이크 한 입, 커피 한 모금. 그 순간만큼은 예술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맛보는’ 기분이었다.


다음 전시관으로 향하는 길목, 유리창 너머로 센강 건너편의 그랑 팔레(Grand Palais)가 보였다. 야트막한 파리의 스카이라인이 여유롭게 펼쳐져 있었다. 하늘은 부드럽고, 바람은 느리게 흘렀다. 이 도시에서는 시간조차도 예술의 일부처럼 흐른다. 이윽고 폴 고갱(Paul Gauguin)의 세계로 들어섰다. ‘알리스크의 묘지(Les Alyscamps)’, ‘그들의 몸의 황금빛(Et l’or de leur corps)’. 남태평양의 강렬한 색감, 원시적이지만 순수한 인간의 형태.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현실과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폴 세뤼지에(Paul Sérusier)의 ‘소나기(L’Averse)’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짧은 붓 터치로 표현된 빗줄기 속에는 고요와 생명의 에너지가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방으로 향했다. 작은 공간 안에 그의 삶과 고통, 그리고 열정이 뒤섞여 있었다. ‘프리틸라리 꽃, 황제관이 꽂힌 구리 꽃병(Fritillaires, couronne impériale dans un vase de cuivre)’, ‘예술가의 초상(Portrait de l’artiste)’,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교회(The Church in Auvers-sur-Oise)’. 그의 붓질은 언제나 격정적이었지만, 그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이 있었다. 삶의 고통을 안고서도 그는 세상을 사랑했다. 그의 노란색은 태양의 색이 아니라, 희망의 색이었다. 그 앞에 서 있자, 그의 고독이 내 안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한 세기가 넘었지만, 그의 붓끝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미술관을 나서는 길, 기념품숍에서 파리의 명소를 일러스트로 그린 책 한 권을 샀다. 모두 불어로 적혀 있었지만, 이제는 구글 렌즈가 통역사가 되어준다. 언어의 장벽은 사라지고, 이미지는 다시 언어가 된다. 밖으로 나왔을 때, 센강 위로 해가 지고 있었다. 강물에 반사된 노을빛이 오르세의 유리 벽면에 부딪혀 잠시 동안 미술관 전체가 빛나는 듯했다. 예술은 결코 박물관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빛과 바람, 사람의 시선과 시간 속에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담아내는 우리 자신의 ‘감상’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예술이다.


2022,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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