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
아저씨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호안끼엠 호수로 가는 길은 유쾌했다.
그는 한국에서 석탄 관련 사업을 하다 한국이 더이상 석탄을 사용하지 않게 되자 석탄으로 사업할 곳을 찾다가 베트남을 오게 되었다고 했다. 어떤 사업인지 자세히 이야기 해주지는 않았지만, 공부와 진료 그리고 회사만을 다녀본 나에게 그의 사업 이야기는 멀고도 낯선 재미있는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한참 이야기 하던 아저씨가 갑자기 나에게 "삼겹살에 소주"가 어떠냐고 물어본다. 자신이 자주 가는 한인타운에 김치가 무척 맛있는 삼겹살집이 있어 가려고 하는데 자기가 사주겠다고 하신다. 늘 여행을 할 때는 최소의 비용으로 다니고 있어 한국음식은 먹지 못한 일주일... 한국에서는 삼겹살에 소주를 자주 먹지 않았고 그다지 목말라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김치와 삼겹살 그리고 소주가 너무나 그리워진다. 호안끼엠 호수 근처에 가서 숙소도 찾아봐야하는데... 아저씨의 제안에 고민을 하다 솔직히 이야기를 했다. 우선 숙소를 잡지 못한 상황이라 늦으면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했고, 한인타운에서 호안끼엠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하는데 비용이 많이 나오면 부담이 된다고 했다.
아저씨는 우선 오후 4시경 도착하니 딱 한시간만 먹고 나와서 택시를 타면 호안끼엠까지 30~40분이면 간다고 하였고, 택시비도 그리 비싸지 않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모험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왠지 이번은 끌린다. 나는 아저씨를 따라 한인타운에 가기로 했다.
기대보다 무척 소박한 한국음식점에 도착했다. 삼겹살과 소주를 시키고 공기밥도 시켜서 먹기 시작했다. 삼겹살 맛이 잘 기억 안나는 걸 보면, 아저씨의 표현만큼 맛있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밑반찬과 김치가 맛있었고 가게의 주인이라고 하는 아주머님의 딸은 내 또래쯤으로 보였다. 이것 저것 서빙해주던 주인집 따님이 우리 자리에 와서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도 내가 자신과 비슷한 또래라고 생각이 들어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다. 그녀는 나에게 여기에서 뭘 하는지 물었다. 당연히 "잠깐 여행중"인 한국인이라고 했다.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을 들어보니 참 재미있다. 베트남 하노이에 사는 한인 사회는 작은 부락처럼 한 사람의 이야기를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다. 어디사는 누가 바람을 피우고 있고, 누구와 결혼한 누구는 재산이 얼마 정도 되고... 그녀는 최근 선을 본 남자와 몇 번 만났는데 아직 확신은 안든다고 하고... 하지만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아 행동은 늘 조심하고 있다는 이야기들을 해준다.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요즘 서울과는 참 많이 달랐다. 이야기를 들으며 필리핀에서 1년 지낼 때의 한인 사회 생각이 났다. 어딘지 자유분방하고 거침없을 것 같은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여기에서 사는 걸까? 나는 궁금해서 물어봤다.
" 한동안 여기서 가게를 하다 원래 고향인 대구로 돌아가서 살았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지내니 너무 답답하더라구요. 그리고 같은 비용으로 이곳 하노이에서는 좋은 아파트에 내니도 두고 살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빠듯하게 생활해야만 했죠. 결국 엄마랑 저는 다시 하노이로 돌아왔어요. 그냥 여기서 사는게 저는 좋은 것 같아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당신은 자꾸 어딘가를 떠도는가? 에 대한 질문을 누군가에게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나 나나 헤메는 인생은 매한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