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
혁신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고, 낯선 것을 익숙하게 하면 된다는 말이 있다. 영화 <천문>은 익숙한 것에 대해 의문을 갖고, 사회 혁신과 역사를 만들어 낸 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다룬다. 역사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에 식상하기 쉬운 소재를, 같은 시대에 서로 다른 위치와 분야에서 활동했던 두 인물의 화합과 갈등을 중심으로 새롭게 재해석해서 풀어 나간다. 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는 인문과 과학의 만남이자 한국의 대표 배우 한석규와 최민식의 1999년도의 영화 <쉬리> 이후 20년 만의 만남이기도 하다.
세종이 당대 모든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가장 큰 업적인 훈민정음 창제 때문에 오히려 다른 분야에 대한 세종의 이야기를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천문>에서는 세종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업적을 확인해볼 수 있다.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계절의 정보를 정확하게 아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세종은 장영실에게 천문 의기 제작을 부탁한다. 그리고 중국 식으로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날짜가 아닌, 조선에 맞는 제대로 된 시간으로 찾아낸다. 마땅한 것을 새롭고 혁신적인 내용으로 발전시키는 세종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다. 장영실의 기술적인 천재성도 놀랍지만, 그것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한 세종의 힘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위대한 업적에 대해 결과론적으로만 아는 경우가 많다. 영화 <천문>은 기존 프레임에 대해 도전하는 자들이 용기와 열정을 통해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을 다룬다.
역사적으로는 세종과 장영실의 기록은 많지 않다. 장영실이 안여(임금이 타는 가마) 만드는 것을 감독하였는데, 튼튼하지 못하여 부러지고 허물어져 곤장형에 처하게 되고, 이후 장영실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영화에서 보이는 두 인물의 만남과 우정, 갈등에 대한 섬세한 상상력이 흥미로웠다. 창호지에다 별을 그리며 우정을 쌓는 장면, 호기로움부터 병약하고 노쇠한 모습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세종, 브로맨스가 떠오를 정도로 자신에게 신뢰를 보여준 세종에게 때로는 잔망스러울 정도로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는 장영실의 캐릭터 등 배우들의 열연과 감독의 연출로 기존 사극과의 차별화된 극 전개를 보여준다. 조연 배우들이 보여주는 탄탄한 연기도 극에 대한 긴장과 재미를 더욱 증가시킨다.
두 배우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과거 다른 사극에서 보여주었던 캐릭터의 모습이 천문에서도 비슷하게 보이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천문>에서만 볼 수 있는 캐릭터와 스토리의 매력이 있다. 수많은 혁신의 결과물 바탕에는 세종과 영실의 신뢰와 애정이 기반되어 있었다. 점점 불신이 깊어가는 시대에 업무적으로 만나는 수많은 관계들 속에 얼마나 우리는 서로 믿어 왔는지 자문해본다. <천문>을 통해 기존 프레임 밖을 향해 도전했던 혁신에 대한 용기와 관계에 대한 믿음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