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작가 미상> 리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림은 관찰에서 시작된다. 손으로 표현하기 전 우선 대상을 바라보거나 떠올려야한다. 프레임에 재현하기 전, 화가가 바라보던 실제의 진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그 순간에 대해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바라보고 있었을까.
영화 <작가 미상>은 나치 정권 시절에 유년기를 보냈던 쿠르트가 동독에서 미술 교육을 받고 활동을 하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서독으로 건너가 자신만의 예술 스타일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예술이라는 주제가 나치즘, 공산주의, 민주주의라는 독일의 이념적 시대 흐름과 함께 어떻게 변형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 189분이라는 러닝타임 속에서 시대와 예술, 진실과 자유에 대한 복합적인 질문들을 우리에게 던진다.
진실한 것은 모두 아름다워. 절대 눈 돌리지 마
<작가 미상>의 영어 제목은 'Don't look away' 이다. 쿠르트의 이모인 엘리자베스가 유년기 시절의 쿠르트에게 한 말이다. 하지만 진실은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비극적인 일들도 있기 나름이다. 권력의 잔인한 폭력 앞에서도 쿠르트는 이모의 말을 기억했는지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 대신 얼굴 앞에 손을 들어 흐릿하게 보이도록 가린다.
자신만의 예술을 찾기 위한 여정 속에서 예술에 대한 여러 가지 담론들을 만난다. "예술은 광기일까." 미술에 대해 특별한 감각이 있지만 여러 대의 버스가 한꺼번에 경적 소리 듣는 것을 좋아하고, 누드로 피아노 치기도 하는 엘리자베스 이모는 쿠르트의 유년기 시절에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뮤즈와 같다. "예술은 사회를 위한 것일까." 동독 공산주의에서는 대중에게 전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사실주의 예술을 지향한다. 피카소의 추상화처럼 나, 나, 나가 중심이 된 예술은 천박하다고 말한다. "예술은 자유로움일까." 예술만이 대중에게 자유에 대한 감각을 줄 수 있다며 교실에서 그림을 불태우는 안토니우스 교수처럼 형식과 내용을 탈피한 자유로움이 예술의 개성으로 존중받는 시대가 된다.
광기, 사회, 자유의 키워드를 체험한 쿠르크는 전통 회화양식 안에서 혁신적인 것을 모방하며 그림 안에서 '나'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진실한 것은 아름답다'라는 본인의 신념을 회화에 담는 방식을 조금씩 깨달아 가며 스스로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간다. 그것은 엘리자베스 이모와의 아름답고 슬펐던 강렬한 기억이기도 했고, 부인 엘리와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의 순간이기도 했다. 또한 이데올로기 속에서 영웅이 되기도, 괴물이 되기도 했던 사람들의 초상이기도 했다.
<작가 미상>은 독일 출신의 현대 미술 작가인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다. 영화 속의 그림이나 장면도 리히터의 실제 작품을 오마주를 한 내용이 많다. 모자를 항상 쓰고 다니는 안토니우스 교수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를 연상시킨다. 이밖에도 현대 미술의 다양한 실제 작품과 화가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은 현대 미술에 관심이 많은 이에게 즐거운 퍼즐 맞추기처럼 느껴진다.
최근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드로잉을 하며 나만의 스타일을 찾고 싶어 하는 내게 <작가 미상>은 많은 영감을 주었다. 막스 리히터(Max Richter)의 영화 음악 또한 섬세하게 영상과 잘 어우러지며 감동의 깊이를 더한다. <작가 미상>에서 탐구하는 진실과 자유는 예술의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진실은 밖이 아니라 오히려 내 안에 있다. 수많은 기억과 경험이 축적되어 존재하고 있는 나만의 진실한 울림에 귀를 기울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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