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가 난다, 바람이 분다

에너지를 잇다

by 한봄소리

어릴 때 저는 하늘을 나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도록 상상하는 법이라고 할까요.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져서 6개월간 입원해 누워 있었던 때, 몸이 제약을 받으면 상상을 통해서라도 날아다니고 싶었어요. 언젠가부터인지 엉뚱한 상상에 대한 필요성과 여유가 없어졌습니다. 오늘 무엇을 먹지, 내일은 어떤 일을 해야 하지 와 같은 의식주에 대한 현실적 질문이 머릿속에 가득 차기 시작했죠. 미로코마치코의 <늑대가 난다>를 읽으면, 잊고 있었던 엉뚱한 상상의 세계가 떠오릅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원초적 본능의 에너지도 쏟아납니다. 거침없이 자유롭게 감정을 내뱉고 싶어 집니다. 야생적이기에 다듬어지지 않은 순수함과 날 것의 생동감과 뜨거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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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바람이 세다. 휘잉 휘잉 세차게 분다. 하늘에서 늑대가 뛰어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서 천둥이 친다. 우르릉 쾅쾅 천둥이 친다. 아, 고릴라가 가슴을 치고 있다.
바람에 날려서 머리카락이 치솟았다. 삐죽삐죽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머리에 고슴도치가 올라앉았다.


<늑대가 나는 날>에서 소년은 상상을 통해 시간과 현상에 대해 인과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수많은 동물들이 현실 속에 나타납니다. 일상이 환상이 될 때, 상식과 관련된 모든 경계가 없어집니다. 화면을 휘갈르는 거친 붓질과 시선을 압도하는 화면을 꽉 채운 색과 형상들이 그림책을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따라 읽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토록 강렬한 울림이 바로 일상 속 작은 상상에서 시작됩니다.


38826727 (1).jpg <늑대가 나는 날>


<짐승의 냄새가 난다>에서는 의성어와 의태어를 활용해서 원초적 자연의 길을 표현합니다. 이 책에서 자연은 온화하고 따뜻한 초록색이 아닙니다. 짐승이 다니는 길, 짐승의 냄새가 나고 풀이 떠들고 바위가 구르는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대지의 힘이 녹여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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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2.JPG <짐승의 냄새가 난다>


<짐승의 냄새가 난다>가 동식물이 만들어 낸 길과 대지에 대한 에너지의 힘을 느끼게 한다면 <흙이야>에서는 흙의 알갱이를 세부적으로 표현하면서 동식물이 있기 전 태고에서부터 존재해왔던 흙의 생명과 시간을 느끼게 합니다. 미로코마치코는 호주 에이즈락에서 빨간 흙을 보고 마치 지구의 속살을 본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을 가졌다고 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신고 있던 신발에 붉은 흙을 발견하고, 흙과 함께 돌아온 경험에 강렬한 인상을 느끼고 난 후 주변의 흙에 대한 관찰과 연구를 통해 <흙이야>라는 작품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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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2.JPG <흙이야>


<내 이불은 바다야>에서는 잠자는 침대 위 일상에 대한 다채로운 상상력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불은 바다가 되기도 하고, 꼬물꼬물 움직이는 고양이가 되기도 하고, 폭신폭신 따끈따끈 좋은 냄새가 나는 빵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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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코마치코의 작품 전체에서 공통적으로 커다란 에너지가 있습니다. 원초적 야생의 동식물을 표현해도, 일상에서 함께 생활한 고양이와의 추억을 담아도, 덜그럭 소리 날 정도로 큰 감정의 움직임을 동요시킬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은 섬세하게 관찰하고 감정을 토하듯 표현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요. 고양이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작가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말이죠.


아프리카 다녀 온 친구가 보내 준 치타의 사진이 인상적이어서 한 때 치타를 계속 그려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눈에 치타는 그저 빠르고 멋지게 달리는 동물로 보이지만, 실은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쫓고 쫓겨야 하는 치열한 몸부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에너지를 얻고, 어떤 에너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동화시킬 수 있을까요. 밝고 기분좋은 에너지를 나눠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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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irocomachik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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