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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위에 주먹을 날려라

자연을 잇다

by 한봄소리

개나리가 피어 봄인가 싶었는데, 진달래의 분홍 수줍음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다시 새하얀 벚꽃들, 진홍빛 철쭉들을 반갑게 맞이했는데 어느덧 청록의 여름이네요. 자연의 변화와 아름다움은 언제나 경이롭습니다. 숲과 나무, 꽃, 자연을 담고 있는 그림책이 주는 싱그러움은 작가의 심상이 담겨 있어서인지 언제나 더 환상적입니다.


비올레타 로피즈가 그린 섬세하고 생동감 넘치는 자연을 느껴볼 수 있는 <섬 위의 주먹>은 정원에서 과일과 채소를 키우는 루이 할아버지와 여덟 살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년이 보고 들은 루이 할아버지에 대해 모놀로그를 하는 형식으로 스토리가 구성됩니다. 무슨 식물이든 쑥쑥 잘 키우는 할아버지, 새와 말할 수 있는 할아버지, 전쟁과 가난으로 특이한 억양을 가진 할아버지, 최고의 요리사인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글을 모르고, 몸에 문신이 가득하며 집이 없어서 카라반에서 생활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에게는 글대심 그림을 멋지게 그리고 추억을 문신으로 표현하며 카라반 생활은 맨날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할아버지가 부럽습니다.


"섬 위에 주먹을 날려라!"

루이 할아버지가 만들어 낸 서로 솔직하게 말하자는 뜻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 유래된 말이기도 하죠. '섬 위의 주먹'을 형태 그대로 연상시킬 수 있는 내용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다가 아닌 온통 숲의 이미지가 가득하고, 주먹이 아닌 펼쳐진 손으로 할아버지로부터 기타를 선물 받습니다. 기타를 치기에 아직 소년의 손은 작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걱정 말라는 얘기처럼 우린 책을 덮기 전 알게 됩니다. 정원의 식물처럼, 약동하는 나무처럼 소년 또한 자연과 사람을 관찰하고 배우면서 성큼 성장하고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요.



비올레타 로피즈의 수많은 레이어로 구성된 싱그러운 자연의 이미지는 볼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게 만듭니다. 수많은 나무가 어우러져 숲이 되는 것처럼 하나하나의 개성 있는 오브제를 관찰할 수도 있고, 전체가 어우러진 풍경의 조화도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지 곳곳에 빨간색 동그라미와 노란색 동그라미를 찾아볼 수 있는데, 저는 빨간색 큰 동그라미는 루이 할아버지를, 노란색 작은 동그라미는 소년을 상징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들의 마음이나 생각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고요. 초록색의 자연의 이미지로 가득한 할아버지의 모습과 달리, 소년은 하얀색입니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변화될 수 있는 소년의 가능성과 순수함이 흰색과 잘 어울립니다. 소년의 작고 하얀 손은 어떤 형태와 색으로 변하게 될까요.



비올레타 로피즈의 다른 그림책으로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은 <FOREST>입니다. 리카르도 보치(Riccardo Bozzi)가 글을 쓰고 비올레타 로피즈(Violeta Lopiz), 발레리오 비달리(Valerio Vidali)가 함께 일러스터 작업한 책입니다. 번역본이 아직 있지 않고 원서로 볼 수 있는 책인데, 트레싱지를 사용해서 레이어드 된 효과를 커버로서도 표현하고, 책 안에 구멍을 뚫고, 엠보싱 효과를 주어 책의 물리적 효과와 내용의 어우러짐이 조화를 이룹니다. 땅에서 태어나 땅으로 다시 돌아가는 인간 삶의 일생을 자연의 일러스트와 함께 볼 수 있어요. 저는 이 책을 <섬 위의 주먹> 보다 먼저 보았는데 <섬 위의 주먹>에서도 <FOREST>와 같은 물리적인 실험이 책의 인쇄 형태에서도 더 담겨 있었으면 어떨까 아쉬움이 느껴졌습니다. 그림에서 투명성을 더 활용하고, 같은 이미지를 조금씩 변형하고 있어서 작가가 원화를 그릴 때는 종이 위에서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면서 표현을 만들어 간 느낌을 받았거든요.


<FOREST> 책 표지


<섬 위의 주먹>은 2011년 CJ 그림책 어워드를 수상하고 영상으로도 제작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 꼬마 아이의 목소리로 내레이션과 함께 움직이는 그림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https://vimeo.com/108714862


소년이 할아버지에게 읽어 준 시 '고양이와 새'가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시를 읽으며 소년은 왜 이 시를 할아버지에게 읽어주었고, 할아버지는 들으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생각해봅니다.


고양이와 새

- 자크 프레베르


온 마을 사람들이 슬픔에 잠겨

상처 입은 새의 노래를 듣네.

마을에 한 마리뿐인 고양이

고양이가 새를 반이나 먹어 치워 버렸다네.

새는 노래를 그치고,

고양이는 가르랑거리지도,

콧등을 핥지도 않는다네,

마을 사람들은 새에게

훌륭한 장례식을 치러 주고

고양이도 초대받아

지푸라기 작은 관 뒤를 따라가네.

죽은 새가 누워 있는 관을 멘

작은 소녀는 눈물을 그칠 줄 모르네.

고양이가 소녀에게 말했네.

이런 일로 네가 그토록 가슴 아플 줄 알았다면

새를 통째로 다 먹어 치워 버릴 걸,

그런 다음 얘기해 줄 걸.

새가 훨훨 날아가는 걸 봤다고,

세상 끝까지 날아가더라고,

너무도 먼 그곳으로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러면 네 슬픔도 덜어 줄 수 있었을 걸.

그저 섭섭하고 아쉽기만 했을 걸.


집에서 작은 화분을 키우며 식물의 섬세한 변화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낍니다. 자연과 인간 모두 변화하기 때문에 밀접한 연계성을 갖는 것이겠죠. 변화는 아쉽기도 합니다. 지금 활짝 핀 꽃이 영원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림이나 사진의 힘은 이런 찬라의 아쉬움을 간직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최근에 꽃이나 나무를 그려보곤 합니다. 눈으로 본 나무는 자연이 만든 나무이고, 사진으로 찍은 나무는 촬영된 순간에 정지되지만, 손으로 표현한 나무는 오롯이 내가 심어서 키운 나무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자연과 자신을 잇고 계시나요?


나무로 나무를 표현해보고 싶어서 목판화로 찍어본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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