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를 잇다
한참 동안, 하염없이 하루가 넘게 버스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힘들게 기다린 버스가 손님이 너무 꽉 차 있다며 태워주지 않고 떠납니다. 어이 없고 화가 나는 상황이죠. 하지만 아라이 료지의 <버스를 타고>의 주인공은 다릅니다. 우선 기다리는 시간을 즐깁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을 느끼고, 음악을 들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합니다. '룸룸파룸 룸파룸' 노래 같은 말을 계속 흥얼거리며 말이죠. 기다리고 기다리던 버스를 못 타는 상황이 되자 마음을 바꿔 걸어가는 길을 택합니다.
이 책에서 '룸룸파룸 룸파룸'은 마치 라이온 킹의 하쿠나 마타다와 같습니다. 걱정해서 뭘 하리, 그냥 순간을 즐기게 되는 마법의 주문입니다. 마치 어린이가 그린 것 같은 천진난만하고 삐뚤빼뚤한 그림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야기입니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할까요. 우리는 소망하는 일이 이뤄지지 않으면 절망하고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자 했던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자, 아예 소망을 걸어서 가는 것으로 바꿔버리는 주인공은 바보일까요, 현자일까요. 마음의 욕심과 집착 없이 자유로운 삶이 <버스를 타고> 책에서 느껴집니다.
아라이 료지의 다른 작품 <해피 아저씨>의 내용도 <버스를 타고>와 비슷합니다. 산꼭대기 커다란 바위에서 소원을 들어준다는 해피 아저씨를 만나러 떠난 느림보와 덜렁이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게 됩니다. 그리고 커다란 해를 보며 해피 아저씨를 만난 기분을 느낍니다. <해피 아저씨>에서는 주인공이 작게 표현됩니다. 때문에 주변 환경에 여러 요소를 찬찬히 살펴보게 되는데, 낙서와 같은 연필 드로잉 선, 물감 자욱과 같은 표현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탱크, 바구니의 곰돌이 등 그림 속 등장하는 주인공 외 숨어 있는 요소들을 찾는 재미가 있습니다. 특히 연필 드로잉은 실제 어린이의 그림이거나, 그것을 바탕으로 작가가 창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아라이 료지 그림책의 캐릭터는 우리들의 잃어버린 순수를 다시 느끼게 합니다. <오늘도 재미있게 놀았습니다>는 곰인형 곰돌이가 진짜 곰인 곰곰이 한 테 초대를 받아 놀러 가게 되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잠시 등장하는 친절한 케이블카 누나는 일본 순정만화의 캐릭터를 어린이가 그린 것 같습니다. 밤새도록 맛있게 먹고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해가 떠오르자, '오늘도 참 좋은 날. 재미있게 놀 거야'라고 곰돌이는 외칩니다. 마치 '노는 게 제일 좋아'라고 노래하던 뽀로로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매일매일 신나고 재미있는 오늘, 모든 어린이가 느껴야 할 하루하루가 아닐까요.
주인공의 모험을 중심인 위의 작품과는 다르게, 풍경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작품도 있습니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은 아침을 밝자, 창을 열었을 때의 여러 마을과 도시의 서로 다른 풍경이 계속 펼쳐집니다. 아침이라는 시작, 밝고 평화로운 빛,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의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우러집니다. 어린 꼬마 소녀가 의자 위에 올라가 창 밖을 바라보는 장면이 유일하게 이 책에서 사람이 나오는 장면입니다. 따라서 이 책의 화자가 어른이 아니라 어린이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책은 작년에 서초 그림책 도서관에서 강연을 들으면서 강사님이 소개를 하시며 '어떤 풍경을 가장 바라보고 싶나요'라고 질문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 내가 살고 있는 장소일 수도 있지만, 내가 살고 싶은 장소에 감정을 이입할 수도 있는 책이죠.
<오늘도 재미있게 놀았습니다>처럼 오늘 하루의 일기를 만화로 그려 보았습니다. 그 어떤 일을 했어도 '오늘도 재미있게 놀았습니다'라는 제목의 힘은 하루를 무조건 재미있게 만들어 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루를 마무리 질 때 '오늘도 재미있게 놀았습니다'를 항상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