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봄소리 Jun 12. 2017

브람스 박물관에서의 특별한 연주

Hamburg - Brahms Museum

4월 말 함부르크의 날씨는 늦가을 날씨처럼 서늘하고 흐렸다. 음악을 좋아하는 독일 친구의 추천으로 방문하게 된 함부르크는 항구 도시 특유의 자유분방함이 느껴졌다. 함부르크는 멘델스존과 브람스의 고향이자, 비틀즈가 무명시절 함부르크의 클럽에서 활동을 하면서 연주 기량을 키웠던 곳이다. 좋아하는 음악가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도시를 걸어 보는 일은 그 사실만으로도 팬의 입장에서 오마쥬의 의미를 갖는다.


함부르크의 지도를 살펴보다 '브람스 박물관'을 발견하고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보수 중인듯한 건물 외벽 사이로 브람스 박물관 표지판이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가 안내데스크에 앉아계셨는데, 브람스 박물관의 안내를 자원봉사 하시는 듯 했다.


"학생이에요? 음악을 전공하나요?"


나를 어리게 봐주시고 학생이라고 생각해주신것은 감사했으나, 다짜고짜 음악을 공부하냐는 질문은 좀 당황스러웠다. 우물주물 피아노를 조금 친다고 얘기하고 표를 구매해서 1층부터 둘러보기 시작했다.


브람스 박물관의 입구


벽면 가득히 편지와 사진, 악보와 같은 자료로 가득했다. 시디 플레이어도 벽면에 매달려있어서 몇몇 곡들을 직접 들어볼 수도 있었다. 특히 자필 악보를 볼때마다 펜으로 한음 한음을 고민하면서 그려나갔을 브람스를 상상해볼 수 있었다.



브람스의 사진도 여러장 만나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 유명한 브람스의 사진은 수염이 얼굴을 덮고 있는 중년 이후의 모습이라서 그런지 수염도 없고 머리도 단정하게 정돈한 청년의 모습을 한 브람스는 왠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졌다.



전시장에서 브람스의 데스마스크도 발견했다. 잠을 자고 있는 듯 눈을 감은 얼굴을 마주하자, 이제는 행복한 곳에서 평안과 사랑을 마음껏 누리시고 있으시길 기원다.



2층 전시장에 피아노가 한대 있었는데, 1859년 함부르크에서 제작된 피아노로 1861~1862년에 브람스가 이 악기를 사용해서 피아노 레슨을 했었다는 설명이 적혀져 있었다. 아, 이것이 바로 브람스가 사용한 피아노구나 하고 찬찬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1층에 있었던 할머니가 어느새 올라오셔서 피아노를 한번 연주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보신다. 브람스의 모든 악보가 이곳에 있으니 필요한 악보를 찾아주시겠다고 한다.


"네? 정말 제가 이 피아노를 연주해도 되요?"


우리나라였다면 귀중한 피아노일수록 뚜껑도 만져보지 못하게 접근금지를 했을텐데, 방문객에게 직접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이 놀라웠다. 제대로 브람스의 곡을 연주해 본 적이 없고 민망한 수준의 피아노 실력이었지만 이런 소중한 기회는 놓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람스의 음악 중 멜로디를 무척 좋아했던 Theme and Variations in D minor Op.18 번을 연주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박물관에는 한명 밖에 더 관람객이 없었다. 두근거리는 손으로 악보를 펼치고 더듬더듬 연주를 시작했다. 피아노 상태는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브람스가 연주했던 피아노를 연주해보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멋진 경험이었다. 이 곡을 평소에 연습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한 두장 조금 연주하다가 말 수 밖에 없었다. 옆에서 관심을 갖고 귀울여주신 관람객분께 잘 못쳐서 죄송하다고 말하니, 그 분의 답변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괜찮아요. 당신은 지금 악기 6대가 연주해야 하는 것을 혼자 연주했잖아요."


이 곡은 사실 현악 6중주 곡을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한 것인데, 그 분은 내가 연주한 곡의 원곡이 무엇인지도 바로 알고 계셨던 것이다. 브람스의 박물관에서 브람스의 팬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sPwvbKkzSM

브람스 박물관에서 내가 연주했던 곡 - Theme and Variations in D minor


브람스 박물관에서 브람스를 연주한 특별한 기억과 감동을 간직한 채 들뜬 마음으로 함부르크의 거리를 계속 걸어다녔다.


브람스처럼 가을에 어울리는 음악이 또 있을까? 브람스의 음악은 마른 낙엽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 홀연히 사라져가는 장작태우는 연기, 차가운 공기의 속살거림과도 같다. 브람스의 음악 이면에 짙게 드리워져있는 고독은 슈만의 부인 클라라에 대한 혼자만의 사랑 때문일까. 브람스, 그의 음악과 함께라면 한없이 센티멘탈해져도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국에 대한 그리움, 쇼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