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and - Lazienki Park
피아노 치는 즐거움을 알게 해준 쇼팽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 가는 것이 왜 그렇게 싫었을까? 지루한 것을 반복하는 연습에서 통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특히 손가락 연습곡인 하농은! - 오, 그 초록색 표지만 상상해도 떠오르는 잠수해버릴 것 같은 숨막힘 - 지금 생각해도 일꾼들의 노동가스럽다. 왼손과 오른손이 줄줄이 저음부에서부터 고음부까지 기차놀이를 하듯 차렷자세를 하고 오르락 내리락거린다. 숫자 놀이를 좋아하던 체르니 교본은 어떠한가. 나 피아노 잘친다의 상징은 체르니 몇번을 치고 있느냐로 설명이 가능했다. 체르니 100번? 음 아직 초보이군. 체르니 30번? 그럭저럭 보통정도는 하겠네. 체르니 40번? 쇼팽은 쳐보셨나요, 베토벤은요. 체르니 50번? 자, 우리 앞에서 연주를 좀 해주시지요. 하지만 수많은 체르니 곡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곡이 없다. 그 것은 체르니가 감성적인것 보다는 테크닉을 연마하는데 중점을 두고 곡이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피아노를 연주할 때 오른손에 비해 왼손이 둔탁하다고 느끼고, 샵이나 플랫이 여러개 나오면 긴장한다. 그 원인제공자가 왼손은 반주 위주로, 다장조부터 연습을 시키는 체르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남의 탓. 미안해요 체르니)
피아노 학원을 땡땡이치고 피아노 선생님과 마주칠까 두려워 일부러 먼 길을 돌아 가던 내게 피아노 치는 재미를 안겨준 사람이 바로 쇼팽이다. 클래식 라디오 방송에서 어느날 쇼팽의 즉흥 환상곡을 들었다. 광고에서도 들었던 낯익은 음악이었지만 한 곡을 전부 다 들은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마치 쏟아지는 빗방울처럼 수많은 음표들이 너울거렸는데, 열정적이면서도 아름답고,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했다. 이 곡을 연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아노 학원에 있는 악보를 뒤적거려서 찾아내고 연습을 시작했다. 천천히 떠듬떠듬 연주를 하니 빠르게 제 속도로 연주할 때의 그 멋과 맛이 전혀 안느껴졌다. 과연 같은 곡이 맞는지 내 눈과 귀가 의심스러웠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오른손과 왼손이 한 마디 안에서 따로 놀아야 한다는거! 이 곡은 왼손이 음표 3개 칠 때, 오른손은 음표를 4개 쳐야 했다. 어쨋거나 거북이 걸음걷듯이 천천히 연습하던것이 손에 익숙해지니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한 페이지를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게 되니 혼자 만족하게 되서 더 이상 이 곡을 더 연습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곡을 나 스스로 연습해서 연주를 할 수 있는 기쁨을 알게되었다. 더이상 누군가가 시켜서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피아노 음악을 듣다가 자연스럽게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로망을 갖고 한 곡씩 연습하게 되는 게 현재까지 피아노를 치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HosIOod_A
쇼팽은 내게 피아노 치는 즐거움을 알려준 사람이다. 기교적으로 많이 어렵지 않아도 피아노 선율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곡들이 많다.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별명처럼 쇼팽을 대변하는 말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서질듯 섬세하고 유려한 아름다움의 곡들 말고도 역동적이고 힘찬 곡들도 은근 많다. 물론 한 곡 내에서 부드러움과 강함, 아름다움과 열정이 묘하게 뒤섞여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 더 다이나믹한 느낌을 준다.
쇼팽의 고향 폴란드
쇼팽은 1810년 3월 1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고 조국 폴란드와 연계 깊은 곡을 많이 작곡했다. 폴란드의 전통 춤곡인 마주르카, 폴란드 귀족의 무도곡에서 발전한 폴로네이즈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폴로네이즈는 16세기 후반에 프랑스의 헨리 3세가 폴란드 왕위에 즉위한 후 귀족들이 왕 옆에서 규칙적 음악에 맞춰 행진 하면서 형태를 갖춘 음악이다. 그 후 의식용 음악으로 쓰이다가 정치적 모임의 무도용으로 발전하였다. 리스트는 "이 곡은 본래 폴란드 귀족 사회의 전통적인 감정을 나타냈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정치적인 것에서 폴란드 국민성이 가미된, 가장 순수한 국민음악의 전향이다"라고 했다. 바르샤바 근교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폴란드 농민들의 무곡에 깊이 동화했던 쇼팽은, 궁정 무도회에서 사용되었던 것과 같은 느긋하고 장엄한 무곡으로부터 진실로 위대한 숨결과 힘을 담아낼 수 있는 서사적이고 리드미컬한 시의 형식으로 폴로네이즈를 발전시켰다.
1842년에 작곡된 Op.53은 구성의 웅대한 표현으로 인해 '영웅 폴로네이즈'라고도 불리운다. 고난을 헤치고 점차 고양되는 흥분감과 이에 대한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해결, 종국에 이르러서는 승리에 대한 도취가 터져나오는 압도적인 작품이다.
https://youtu.be/d3IKMiv8AHw?list=PLqE8ia1hWiYl5yQQ8SMVwfS-SgIGoGDuF
1831년 조국을 떠난 쇼팽이 러시아군이 폴란드 혁명운동을 탄압하고 무력으로 바르샤바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해 9월 독일에서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곡이 바로 ‘혁명’으로 불리우는 쇼팽의 연습곡 Op. 10, 12번이다. 내려치는 듯한 옥타브 선율로 인해 격렬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곡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Gi5VTBdKbFM
와젠키 공원에서 만난 쇼팽의 동상
폴란드에 출장을 떠났을 때 나는 쇼팽의 고향땅을 밟아보게되어 감회가 남달랐다. 폴란드의 마지막 날, 오후 출국 예정이라 오전에 호텔 근처인 와젠키 공원을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와젠키 공원은 18세기 후반 폴란드 최후의 왕이었던 스타이스와프에 의해 만들어졌다. 와젠키는 '목욕탕'이라는 뜻으로 당시 이 지역은 귀족들의 사냥터였는데 사냥을 마친 후 이곳에서 목욕을 했다고 한다. 나무, 풀, 동물, 조형물이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재잘거리는 생기가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산책하는 걸음걸음마다 더 없는 푸르름의 향취가 느껴졌다. 쇼팽의 마주르카와 폴로네이즈를 이어폰으로 들으며 산책하니 수백년전 쇼팽이 그리워했던 바로 그 폴란드와 직접 마주하는 듯 했다.
쇼팽의 동상이 공원 어딘가에 있다고 들었는데 공원이 너무 커서 과연 어디에 있는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안내표지도 발견할 수 없었다. 지도 없이 발걸음 닿는 대로 오솔길들과 마주하고, 공작을 만나고, 수상궁전을 보았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것 같다고 생각하던 즈음, 저 멀리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나무 위에 앉아있는 사람의 모습! 바로 저 동상이 쇼팽인가 보다. 공원을 산책하면서 듣던 쇼팽의 음악이 결국 쇼팽이 있는 곳까지 인도해주었구나. 처음 보았을 때는 얼굴 옆 모습 밖에 안보여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사선적인 구도에서 느껴지는 바람이 조각한듯한 자유로운 기풍, 금방이라도 흘러가는 악상을 흑백의 피아노위에 쏟아낼 듯한 저 손동작, 꿈 꾸는 듯이 사색에 잠긴 쇼팽의 표정.
아, 드디어 만났습니다. 항상 조국 폴란드에 대해 애잔한 그리움을 갖고 있던 쇼팽, 당신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