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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소리 Jul 22. 2017

하루의 끝에는 시작이 있기마련  

영화 <멋진 하루> 리뷰


돈으로 시작해 관계로 이어가고 새로운 시작으로 끝맺는 영화 


빌린 돈을 받기 위해 옛 남자친구인 병운을 찾아온 희수는 병운과 함께 돈을 구하기 위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돈을 갚기 위해 주변 지인에게 다시 돈을 빌리러다니는 병운의 넉살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이런저런 정황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병운이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병운이 그동안 겪었던 일들과 사람들간의 관계를 알게 된다. 그러면서 희수도 결국 결혼하지 못하고 직장을 구하지도 못한 본인의 어려운 처지를 독백처럼 얘기하게 된다. 불편하고 이상했던 하루,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래도 멋진 하루.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시나리오의 구성 자체가 참 흥미로웠다.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과거연인사이가 현재의 채무자와 채권자로 만나게 되는 정 반대의 상황도 그렇고, 돈을 갚기 위해 또 빌리러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스토리가 독특한 전개를 이끌어 나간다. 


2008년도 작품이고, 그 당시 하정우가 유명하지 않았던 시절인데도 하정우만의 매력이 너무나 잘 느껴지는 영화다. 건들거리면서 잘난 부분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특유의 친절함과 농담과 정 많은 캐릭터로, 수 많은 여성들에게 그래도 괜찮은 녀석으로 인식된다. 


영화는 서울 곳곳을 자동차로, 발로 걸어다니며 로드트립의 형식을 갖는다. 서울 도시 곳곳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오토바이 라이더들의 성지처럼 보이는 한남동 인근의 조촐한 건물의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곳곳에 녹아드는 재즈 선율도 잘 어우러지고 영화를 한결 더 빛나게 만든다. 푸디토리움 김정범이 시간별로 ost의 곡의 이름을 지었다. 재즈 밴드 푸딩의 음악을 참 좋아했었는데, 그의 이름을 다시 영화에서 만나보게 되니 반갑다. 


처음에 너무나 일상적인 대화로 시작되면서 지극히 영화가 아닌 현실처럼 느껴지는 구성들, 남자친구인 병운을 스크린 경마장에서 쫓는 희수의 마음을 대변하듯 헨드핼드 카메라가 어지러이 쫓아다니고, 병운의 얼굴도 바로 등장하는게 아니라 대화하는 상대의 얼굴을 먼저 보여주고 병운의 얼굴을 보일듯 말듯 보여주는 장면, 그리고 타워팰리스에 도착했을때 자동차 유리창에 압도적으로 주인공들의 얼굴을 덮어버릴듯 교차시켜 보여지는 빌딩의 그림자.. 세부적인 연출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 느껴졌다. 세심한 디테일이 좋은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 


이 영화는 지극히 '현재'에 관심을 맞춘다. 과거에 남녀주인공이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아주 적은 대화속의 정황으로만 상황을 유추해볼 수 있다. 하루가 끝나고, 저녁을 먹자는 병운의 제안을 희수는 한번에 거절한다. 하지만 하루 동안에 생긴 복잡한 감정에 병운을 다시 찾아가볼까 고민을 한다. 멀리서 그의 모습을 확인하지만 더 무언가 행동을 취하지는 않고 미소를 띄며 영화는 마무리 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났다고 느껴질 무렵, 그들의 첫만남으로 느껴지는 짧은 영상을 보여준다. 현재와 달리 대기업 사옥에서 정장을 입은 병운과 희수가 서로 처음으로 대화 하는 장면. 그리고 병운이 마지막으로 남긴 채무서가 냉장고에서 펄럭이는 장면, 병운의 꿈이었던 스페인 음식점의 간판 화면. 그리고 영화는 정말로 마무리 된다. 현재가 끝나고, 과거의 짧은 첫만남이 그들의 행복했던 순간의 그 모든것을 집약적으로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냉장고와 스페인 음식점이라는 사물의 장면은 그들의 미래를 관객이 상상하게 만든다. 현실에 입각한 아주 길었던 하루, 하지만 짧고 강렬했던 과거의 장면, 그리고 미래에의 여운. 소설을 읽다가 마지막에 시를 만난 느낌이다. 


우리는 수 많은 하루 하루를, 그리고 여러 관계를 통해 삶을 만들어 간다. 과거의 사랑이 현재의 미움으로, 또한 미래의 그리움이 될 수도 있다. 영화의 스토리와 어찌보면 대비되는 '멋진 하루'라는 제목으로 부터 느껴지는 것은 '희망'이다. 현실의 척박함, 어이없는 농담처럼 지나갈지어도 놓지 않는 희망의 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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