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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소리 Nov 25. 2017

이미지와 언어의 교집합

영화 <빛나는> 리뷰

햇살이 잔잔한 물결에 비추자 빛의 형상이 부서진 채로 그대로 물의 움직임에 따라 반짝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그런 자연의 풍경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감정의 하나일 수도 있지만, 그 당시 나는 이 풍경과 나의 감정을 어떻게 말로, 글로, 시로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었다. 시각으로 보여지는 그 모든 이미지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경이로움과 감동에 대한 예찬을 언어라는 그릇에 담으려고 하니 온전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의 프레임을 말과 글에 대한 언어로 변환시킬때의 한계점, 하지만 그것을 연금술사처럼 더 멋진 표현으로 또 다른 감각의 확장을 불러일으키는 시인들의 표현에 대한 또 다른 놀라움. 영화 '빛나는'을 보면서 이미지와 언어의 교집함에 대한 생각을 다시한번 떠올렸다. 


시각장애인들도 영화를 느낄 수 있도록 영화에 대한 음성 해설을 쓰는 작가 미사코가 모니터 모임에서 시력을 잃어가는 사진작가 나카모리를 만난다. 그를 통해 '본다'라는 절대적이고 소중한 감각의 세계가 배제되어 있는 시각 장애인들의 삶을 조금씩 이해하면서, 그토록 고민하던 영화의 라스트씬에 대한 음성 해설을 완성해간다. 영화를 통해 장벽이 없음을 의미하는 '배리어 프리 영화', 즉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자막과 화면해설이 포함되어 있는 영화의 제작과정을 알게 되었다. 영화 화면에 대해 너무 주관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설명으로 보이지 않는 이들이 상상력으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음성해설만을 듣고나서 그것을 이미지로 보는 것처럼 상상하기 어렵다면, 해설자 상상력의 부족때문일까 아니면 관람객의 상상력 문제일까. 


“우리는 영화를 볼 때 화면을 감상한다기보다는 광대한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으로 작품을 감상해요.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 안에 들어가 있죠. 영화는 거대한 세계를 경험하는 거예요. 그 거대한 세계를 말로써 작게 만들어 버리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죠.” 

 

사진작가는 보여지는 이미지 하나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직업인데, 너무나 비극적인 운명처럼 사진작가 나카모리에게 앞이 점점 보이지 않는 비극이 찾아온다. 영화 중반부까지 나카모리는 저시력 상태에서 세상을 더듬거리면서 만져가며 어렵게 생활한다. 흐릿하게 일부분밖에 보이지 않는 시력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도 사진찍기를 멈추지 않는데, 어느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눈치챈 괴한한테 카메라를 빼앗겼다가 힘들게 다시 찾으며 그는 말한다. "사진기는 나의 심장입니다. 비록 움직이지는 않지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과정에 대한 어려움과 절망감에 대해 나카모리역의 나가세 마사토시의 호연이 돋보인다. 


'빛나는'이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영화는 빛에 대한 이미지와 영상에 대해 여러모로 세심하게 촬영하였다. 자연광이 가장 근사할 때는 해질 무렵 세상이 황혼에 물들기 시작했을 때이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색의 온도가 부드럽고 따스하게 피사체의 모습을 비추어 준다. 자연적으로 햇빛이 만들어가는 조명의 밝기를 타이밍에 따른 순간 포착을 잘 잡아낸 화면들이 많다. 또한 선명하지 않고 뿌옇고 아른거리는 시각장애인 나카모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도 관객들이 직접 체험하 듯 실감할 수 있도록 카메라를 통해 보여준다. 


로맨스 영화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 남녀 주인공의 감정관계가 발전하는 스토리가 갑작스럽고 낯설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관계가 빛을 잃었던 남자 주인공에게는 또 다른 빛을 찾은 희망이 되긴 하지만 여자 주인공에게는 아빠와의 관계에 대한 그리움이 갑자기 사랑처럼 변이 된듯하여 정말 사랑이라는 감정이 맞는지 자연스럽지 않다. 어쨋거나'빛나는'순간에 대한 상실, 공감, 이해에 대해서 영상 언어로 잘 풀어낸, 말 그대로 반짝반짝 빛나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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