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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소리 May 21. 2018

영국식 코메디의 스패니쉬 만찬

영화 <트립 투 스페인> 리뷰


여행에서 음식은 놓쳐서는 안 되는 즐거움이다. 스페인 레스트랑을 탐방하는 두 남자의 여행기라는 소재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화려하다. 하지만 음식과 여행만을 기대했던 내게 이 영화는 패러디를 통한 코메디라는 예상밖의 즐거움을 주었다. 코메디가 메인이고 음식은 서브라고 느낄 정도로 천천히 맛을 음미하는 장면보다 두 사람이 수십명의 인물로 변신하면서 치고 받는 대화의 재미가 솔솔하다. 영화 속에서 음식은 문화의 일부라는 언급대로, 트립 투 스페인은 스페인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페인 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와 음악가, 문화 예술 인물에 대한 패러디와 농담이 식사자리에서 한가득 쏟아져나온다. 여행과 음식 이상의 수많은 콘텐츠를 다루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있겠지만 나는 음식 이상의 다채로운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낸 두 남자의 만담에 푹 빠져 버렸다. 중년 남성 둘이서 떠나는 여행의 대화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여행은 현실에서의 일탈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돌아가야 하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우리는 여행을 하는 동안 현실에서 완전 분리될 수 있을까? 여행을 하는 동안 주인공의 가족, 동료, 업무와 관련되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보여주면서 여행은 낭만적일 수 있지만, 삶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여행,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업무에 대한 동료와의 문제 등 어쩔수 없이 커넥션되는 일상 생활의 단편들이 이 영화를 마냥 가볍고 낭만적인 코메디 영화로 만들지 않는다. 여행 말미에 나오는 어쩔수 없이 혼자하는 여행은 전반부 친구와 함께 교감하는 여행과 대비되어 여행의 고독하고 쓸쓸한 모습을 보여준다. 


낯선 곳에서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간다. 영화 <트립 투 스페인>을 통해 새로운 풍경을 보며 놀라워하고, 정성스럽게 요리되는 스페인 요리들을 감상하고, 영국인 두 남자의 문화예술 관련된 만담에 즐겁게 듣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여행에 대한 욕망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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